하나은행 100년 리빙트러스트센터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신탁은 ‘만능 상품’으로 인식된다. 자산관리라는 금융 본연의 기능은 물론 한 개인의 삶에서 죽음까지, 라이프 사이클 전반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고령화가 심화되는 100세 시대를 맞아 선진 금융서비스인 신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배정식 센터장 “재테크부터 웰다잉까지, 신탁의 시대 올 것”

#1 살아 있는 동안에 발생하는 임대수익은 제 노후자금으로 쓰고, 사후에는 늦둥이 아들에게 건물을 상속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자식들 간 상속 분쟁이 일어날까 걱정입니다.


#2 80대에 접어들면서 치매로 고통을 받는 주변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혹시 모를 질병으로 인한 간병비 등으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네요.


‘웰다잉’은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의 여유로운 삶(웰빙)만큼이나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가파른 고령화 추세로 인해 노인성 질환에 대한 경각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치매의 경우 한 개인과 가족의 비극을 넘어 심각한 사회 불안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치매는 정부 차원의 ‘치매국가책임제’가 추진될 정도로 환자 수가 급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75만 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치매 환자가 2024년에는 100만 명, 2050년에는 전체 노인의 16%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이 같은 불안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신탁은행 활용을 적극 장려해 왔다.


미국 역시 상속재산이 1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억 원을 초과하면 리빙트러스트(유언대용신탁)를 설정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을 수익자로 정해 노후를 준비하고, 사후에는 자신이 지정한 대상에게 남은 재산이 상속될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만약 사후 수익자를 정해놓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이 사망하게 되면 법원의 관리감독 아래 ‘유언검인(Probate) 제도’를 통해 상속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 경우 적지 않은 비용 소모와 함께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신탁의 활용 범위는 비단 고령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홀로 남겨진 미성년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판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또 급증하는 1인 가구 및 재혼가정, 해외 거주자들도 신탁을 활용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은 ‘우리 사회의 큰 선물’이라는 수식어로 신탁의 가치와 유용성을 역설해 왔다. 그는 신탁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형 신탁 발굴에 적극 앞장서 왔다. 개인의 돈 관리 차원을 넘어 2세, 3세로 이어지는 자산관리의 연속성에 대한 고민을 풀어 줄 열쇠가 바로 신탁이라는 믿음이 바탕이 됐다.


이후 하나은행은 2010년 국내 최초로 신탁을 활용한 상속과 자산관리 서비스들을 선보였으며, ‘부동산트러스트’, ‘치매안심신탁’, ‘성년후견지원신탁’ 등 다양한 구조의 신탁 상품을 꾸준히 출시해 왔다. 현재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에는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 출신의 신탁컨설턴트는 물론 법률, 세무, 회계, 부동산 등의 전문가들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내방 고객 응대뿐 아니라 하나은행 영업점 직원들에 대한 신탁 교육도 병행하는 등 신탁 상품의 저변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센터 조직을 확대 개편한 올해 하반기에는 신탁의 가입 한도를 ‘1만 원대’로 대폭 낮춰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신탁의 고정관념을 깨는 실험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배 센터장은 “이미 신탁은 주가연계신탁(ELT), 부동산신탁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는데 신탁 본연의 기능에 집중한 유언대용신탁 등의 경우 선진국과 비교해 활용도가 낮은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인구 고령화와 함께 가족의 형태와 구성이 다양해질수록 신탁의 본질적 가치와 활용도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배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대중들에게 신탁은 여전히 생소한 서비스입니다. 신탁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트러스트(trust) 즉, 신탁(信託)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맡기는 주체는 위탁자가 되고 자산을 맡아 주는 금융회사가 수탁자, 그리고 그로 인해 수익을 얻는 사람은 수익자가 되는 삼자구조인 셈이죠. 저희 부서의 명칭이기도 한 ‘리빙트러스트’는 넓은 의미에서 ‘생전 신탁’을 뜻합니다. 살아 있을 때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모든 신탁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으로 생전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사후에는 자녀 등 제3자를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사람 모두가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듯 100세 시대가 본격화되면 자신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목적의 신탁을 이용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신탁만이 가진 장점을 소개해 주신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만큼 자산관리와 상속에 대한 고민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객들의 상담 내용을 살펴보면, 절세와 관련된 고민부터 상속인이 너무 많거나 직계 상속인이 없어서 생기는 고민, 그리고 혹시 모를 질병과 미성년 자녀의 자산관리에 대한 고민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죠. 신탁의 경우 이런 다양한 사안을 복합적으로 풀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비교적 단순한 상속 건만 하더라도 가족들 간 법적 분쟁은 물론 세금, 부동산 처리 등과 같은 고민거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합니다. 만약 신탁을 활용한다면 이런 다양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 기존 서비스만으로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미 등장한 펫신탁, 고독사보험 등이 이런 경향을 대변하죠. 신탁을 두고 ‘만물상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신탁 가입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내 재산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을까’인 것 같습니다.
“고객들과 신탁에 관해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객이나 금융기관이 파산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신탁재산은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고객이 신탁계약을 맺게 되면 신탁재산의 소유권은 수탁자, 즉 금융기관으로 이전돼 등기부등본에 금융기관의 재산으로 표기됩니다. 따라서 위탁자가 불의의 사고 등으로 파산을 하더라도 신탁재산만큼은 채권자에 의한 강제집행이 금지되는 거죠. 만약 신탁계약을 맺은 금융기관이 파산하더라도 고객이 소유권을 요구하면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독립성’과 ‘분별관리’라는 신탁의 본질적 특성 때문인데, 이를 ‘도산절연’ 혹은 ‘파산절연’이라고 부르죠.
신탁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이라든지, 고위험 상품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이죠. 다만 최근 신탁의 본질에 충실한 유언대용신탁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부분입니다.”

배정식 센터장 “재테크부터 웰다잉까지, 신탁의 시대 올 것”
기존 리빙트러스트센터를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로 확대 개편했습니다. 배경이 궁금하네요.
“하나은행은 지난 12년간 리빙트러스트 업무를 해 오면서 ‘신탁 명가’의 입지를 공고히 해 왔습니다. 기존 리빙트러스트센터 출범 이후인 2016년부터는 신탁 상담에 대한 니즈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왔죠. 한해 200~300명 수준이었던 상담 요청 건수도 2019년에는 500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올 상반기에는 이미 지난 한 해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처럼 상담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고객 대기 시간도 최대 3주 가까이 늘었는데, 변호사와 세무사, 신탁 상담역 등이 동시에 지원하는 신탁 상담의 특성 탓이죠. 이런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기존 12명에서 20여 명으로 확대했는데, 현재는 대기 시간을 1~2주가량으로 줄이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인력 충원와 함께 현장 중심의 지원 체계도 구축했습니다. 기존에는 고객이 신탁 상담을 요청하면 본점 내 인력이 파견을 나갔는데, 이제는 강남에 위치한 ‘클럽원PB센터’를 통해서도 현장 상담이 가능해졌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강남지역 거점을 추가로 확대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도 구축해 나갈 예정입니다.”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탁 문의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고객의 경우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관련 문제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2018년 기준 국내 가구당 총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5%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죠. 물론 신탁 외에도 부동산 관리나 처분, 자문 기능을 수행하는 서비스는 많습니다. 하지만 자문과 컨설팅은 물론 이 과정에서의 보호 장치, 상속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이 신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부동산 매입 이후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부동산 역시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대에 접어들 것입니다. ‘임대차보호법’ 등의 법과 제도 정비로 인해 임차인의 권리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부동산관리신탁의 경우 소유주가 직접 관리하기 힘든 상황에 있는 고객들을 위해 임차관리는 물론 시설 관리, 자금 관리, 법률 및 세무 처리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은 매월 받는 관리보고서를 통해 전반적인 현황도 파악할 수 있죠. 여기에 유언대용신탁이 결합되면 상속 고민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최소 가입 기준을 대폭 낮췄는데 신탁 대중화에 대한 고민이 엿보입니다. 소액 가입자들은 어떤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신탁 상품들이 출시됐습니다. 우선 ‘가족배려신탁’은 최저 1만 원에서 1억 원까지 가입 할 수 있는데, 자유적립식이나 일정거치형으로 입금한 뒤 각자 목적에 맞게 사후수익자를 정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마찬가지로 1만 원부터 가입할 수 있는 ‘상조신탁’은 고객 스스로 셀프 장례를 준비하거나 자녀 세대들이 부모의 갑작스런 임종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 상품으로, 상조회사가 장례를 치른 후 자금 인출을 요청할 경우에 한해 지급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이외에도 49재를 준비할 수 있는 ‘49재 신탁’, ‘미사예물신탁’ 등도 소액으로 신탁을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이죠.
생활비는 물론 상속 등의 종합적인 자산관리 기능을 갖춘 상품으로는 ‘100년 안심신탁’이 있는데, 안전한 자금관리가 필요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상품은 치매 등의 노인성 질환을 앓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사기 등을 예방할 수 있도록 지정된 지급청구인만 자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습니다.
하나의 신탁 계좌로 몇 개의 상품을 운용할 수 있는 ‘100년 운용종합신탁’은 자금관리보다는 적절한 금전 운용을 통한 사후 수익 배분에 초점을 맞춘 상품입니다. 이들 상품의 경우 상속 기능을 갖고 있어 최저 가입금액이 5000만 원 이상으로 책정됐습니다.”


여타 선진국에 비해 신탁 활용도가 미흡한 실정입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까요.
“더딘 성장의 가장 큰 원인은 신탁 상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현행 ‘자본시장법’은 문자메시지 등의 방법으로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불특정다수에게 홍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예금이나 펀드처럼 신탁 역시 비대면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신탁의 장점이 많이 부각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금전신탁 상품이라 하더라도 장기적 관리가 목적이거나 미성년자 재산 관리, 장애인신탁 등의 경우에는 이런 규제를 좀 더 완화해 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신탁의 경우 마케팅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 생활형 신탁으로 보급될 수 있겠죠. 또 치매 관리 등과 같이 정부 차원의 정책적 목적에 부합하는 신탁의 경우 일정 범위의 세제 혜택이 부여된다면 신탁이 국민들의 노후 안전판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끝으로 신탁 가입을 망설이는 분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 신탁은 자산가들만을 위한 제도가 결코 아닙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 안전판이자 스스로 상속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금융 플랫폼 정도로 이해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 당장 어린 자녀들의 학비나 양육비에 대한 고민이 크다거나,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 갈등을 겪고 있다면 신탁이 최상의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또 예금과 마찬가지로 언제든 자유로운 인출과 추가 설정도 가능한 만큼 언제든 부담 없이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배정식 센터장은…
서강대 MBA,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등을 거쳤으며, 지난 1993년 하나은행에 입행했다. 지난 2010년 금융권 최초로 리빙트러스트를 론칭했으며, 이후 부동산트러스트, 치매안심신탁, 성년후견지원신탁 등 생활형 신탁 상품 설계를 주도했다. 최근에는 여러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그룹홈 입소자들을 위한 지킴이 신탁’, ‘범죄 피해자 구조금 후견 신탁’ 등을 론칭하며 신탁의 사회적 역할 확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