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 참고 도서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 많은 이들이 넓은 집,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1평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우린 얼마나 구슬땀을 흘렸던가. 그런데 정작 보금자리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대했을까. 1평짜리 공간은 버리지 못한 물건들의 창고가 됐다. 정희숙 똑똑한정리 대표는 이제 정리의 개념을 다시 세울 때라고 말한다.
최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홈퍼니싱, 홈인테리어가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쓸고 닦고, 돈을 들여 가구를 바꿔도 무언가 마뜩잖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은 아닐까.
여기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2000여 개의 집을 바꾸고 수많은 스타의 집을 다녀간 정리의 달인 정희숙 똑똑한정리 대표다.
정 대표는 집을 2배로 넓히기 위한 방법으로 값비싼 인테리어나 평수가 넓은 집으로의 이사를 추천하지 않는다. 정리가 곧 최고의 인테리어이자 공간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정리법은 집을 비우는 것이 최고의 정리라고 생각하거나 눈에 안 보이게 물건을 어딘가에 잘 넣어 놓으면 정리가 잘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일침을 날린다.
정 대표에게 진짜 정리는 각 공간의 목적을 묻고, 가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부터 시작한다. 물건이 가야 할 곳을 정해 주는 건 그다음이다. 물건에 집과 주소지를 허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하루 10분으로도,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정 대표를 만나 똑똑한 정리법에 대해 물었다.
최근 ‘정리정돈’이 다시 화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 안에 있을 일이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이전까지 집은 그냥 자는 곳이었는데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그동안은 안 보였던, 몰랐던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고 심지어는 더 이상 물건을 둘 곳이 없어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계획한다. 그럼 전 묻는다. ‘고객님, 인테리어 얼마 주고 하셨어요’, ‘고객님, 여기 1평에 얼마예요’ 25평에서 34평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결국 가도 똑같다. 공간을 정리하지 않았기에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다.”
시대가 바뀌어도, 정리는 ‘주부’의 역할이란 고정관념이 있었다.
“정리가 화두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리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제대로 정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깨끗하게는 할 수 있는데 3일을 못 간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정리를 내 일로 생각하지 않았음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를 엄마의 업무로 생각한다. 왜 정리를 안 하느냐고 물으면 관심이 없다고 한다. 자기 집이 아니라서, 부모의 집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도 남편도 다 같은 생각이다. 초등학교 강연에서 정리는 누가 해야 할 일이냐고 물으면 답안지에 ‘나’는 없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공간에 실내화를 두지만, 집에 오면 그냥 내던진다. 왜? 엄마가 다 해 주니까. 제대로 정리하는 시스템만 갖춰 놓는다면 가족 구성원 각자의 분담이 돼서 생활이 바뀌게 된다. 사람들이 정리의 맛을 알았으면 한다.”
최근 트렌드는 ‘정리=버리는 것’이다.
“정리의 과정 중에 버리는 것이 필요할 순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정리와 관련해 많은 조언이 있다. 하루에 하나씩 버려라, 물건에 인사를 해라, 사진을 찍어서 간직해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등. 글쎄. 이러한 버리기 식 정리로는 사람들이 정리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정리에 대한 오해만 쌓인다. ‘아, 정리는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이나 TV에 나오는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거야. 우리 집은 정리가 필요한 건 아니지. 뭘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대충 살아도 돼’라고. 사실 저장강박증이야말로 정리가 소용이 없다. 정말 바꾸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는 도움을 드릴 순 있지만 심리의 문제다.
정리 컨설턴트가 된 이후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고민을 많이 한다. 정리 컨설턴트는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공간에 ‘이름’을 부여하려고 정리를 한다.
(정리가 되지 않아) 없었던 침실, 드레스룸, 서재를 선물하는 사람이다. 물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공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버리는 것은 과정일 뿐이다.”
그럼 어떤 것을 버려야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물건은 공간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정리가 더 많은 물건을 저장하기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또 정리 컨설턴트가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더 못 집어넣는다. 집어넣는 기술은 고객이 더 뛰어나다.
우리 집에서 전혀 하는 일이 없는 물건. 그냥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 그런 것을 버리자고 하는 거다. 욕실에 가면 샴푸가 8통까지 나온다. 아빠, 엄마, 딸 다 다른 샴푸를 쓰는데 빈 통을 누구 하나 갖다 버리지 않는다. 귀찮아서, 깜박해서. 일회용 죽그릇, 도시락통 쓰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닦아 모아 둔다. 공간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집집마다 작동도 안 되는 옛날 카메라, 삐삐, 폴더폰 다 있다. 전선류가 한가득 쌓여 있는데 뭐에 쓰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둔다. 그리고 이삿날 이삿짐센터에 몇 백만 원 주고 싸간다. 무엇이 중요한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버려야 할까.
“하루에 하나씩 버리려고 해도 죽을 때까지 버릴 수가 없다. 물건이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두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법은 ‘각 방별이 아닌 종류별로 정리하고, 한번에 버려라’는 것이다. 먼저 가방을 정리한다고 하면 베란다, 거실, 옷장 등 집 안에 있는 모든 가방을 다 꺼내 줄지어 놓는다. 그러면 우선순위가 순식간에 정해질 것이다. 들어 보고 만져 보고 비교해서 가장 낡고 오래된, 잘 들지 않는 가방을 버리면 된다. 우리 문화가 유독 버리지 못하는 문화가 있다. ‘알뜰해야 잘 산다’는 인식이 강하게 배어 있어서 그렇다. 물건을 살 때 누구나 디자인, 가격, 목적에 따라 우선순위를 고려한다. 나 역시 물건을 살 때 수백 번 고민한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자리를 차지하고 그 물건의 할 일이 생기니까. 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분류를 하고 우선순위를 생각해서 버리면 후회가 없다.”
‘정희숙의 정리법’은 무엇이 다른가.
“정리의 시스템을 만들어 준다. 정리 컨설팅을 하러 가면 어떤 집을 가도 가장 먼저 ‘이 방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집마다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누가 사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아이들은 몇 살인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건을 보면 안다. 식료품이 많은 집, 의류가 많은 집, 책이 많은 집. 요즘 집(아파트)들은 규격화 돼 있다. 공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구성원의 목적에 맞게 맞춤 분류를 해야 한다. 책이 많은 집은 거실을 서재로 만든다. 의류에 관심이 많다면 드레스룸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를 제대로 하면 공간을 살릴 수 있다. 공간을 살린다는 건 물건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어떤 분들이 의뢰를 하시나.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주로 맞벌이하고 아이 키우는 분들이 많이 의뢰한다. 재력가도 많다. 가사도우미가 있지만 그분들은 시스템을 만드는 게 아니니 공간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청소와 정리는 개념이 다르다. 참 안타까운 게 방송에서 저장강박증 또는 쓰레기 집 위주로 그것도 자극적으로 노출하다 보니 정리 컨설턴트에게 정리를 맡기는 것을 ‘창피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
‘대표님, 문 닫고 하면 안 되나요? 창피해요.’ 아니다. 도배업자에게 도배를 맡기고, 이삿짐센터에 포장이사를 부르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부탁하는 것이다. 정리 역시 전문인의 영역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방식이, 기술이 다르다. 정리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전달하고 싶다.”
2000여 개의 집을 방문하며 에피소드도 많았겠다.
“한번은 정리를 모두 마쳤는데 의뢰인이 막 우셨다. 석·박사도 따고 했는데 이런 건 배운 적이 없었다고 너무 속상하다며 우시더라. 고객과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많다. ‘대표님, 저 우울증이에요. 남편이 바람을 폈어요. 그래서 쇼핑 중독이 됐어요.’ 나도 막 같이 운다. 고객님이 잘못한 거 아니라고, 살려고 한 거니까 괜찮다고 위로한다. 사연을 알면 왜 집이 엉망이 됐는지 알 수 있다. 마음에 감기가 오면 집을 들여다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리라는 게 내 집 살림을 다 보여 주는 거다. 속옷까지 보여 줘야 하는데 이 정도로 밑천을 보여 준 사람이면 나를 이해해 주겠지, 이렇게 더럽게 살아도 욕하지는 않겠지 서로 간에 그런 믿음이 생긴다.”
‘정리’란 무엇인가. 정리가 삶의 많은 것에 연관이 있는 듯하다.
“2000여 개의 집을 정리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정리가 심리와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의뢰인들에게 지금 행복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고객이 많다. ‘빈 벽을 보면 이상해요. 꽉 채워야 마음이 편해요’ 그렇게 말한다. 정리는 지금의 ‘나’를 돌보는 일이다. 물건은 우리 마음과 비슷한 데가 있어서 쓰이지 못하고 집 안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물건들은 심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뭉쳐진 채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집 안을 정리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왜 아이가 태어나거나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할 때, 또는 누군가가 떠났을 때 우리는 그에 관한 정리를 하지 않나. 생과 사 모든 삶에 정리가 연관돼 있다.”
정리 컨설턴트로 이미 유명세를 탔다. 또 다른 목표가 있는가.
“한국식 정리법을 세우고 싶다. 버리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해 ‘정리=버리기’로 굳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상이 된 일본에 맞는 정리법이다. 무조건 버리고 비우는 정리법은 관계와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미니멀 라이프도 좋지만, 가족 문화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실천하기 어렵다. 친가, 시가에서 물건을 막 가져다준다. 가족과 함께 공유하기에 내 뜻과는 달리 맥시멈 라이프가 된다. 보이는 부분도 중요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물건은 부의 상징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맞는 정리법을 알리고 싶다.”
정희숙 대표는…
정리컨설팅업체 정희숙의 똑똑한정리의 대표다.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는 마흔 살에 정리 분야의 일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000여 개의 집을 돌아다니며 정리 노하우를 쌓았다. 인스타 팔로어 11만, 유튜브 구독자는 10만 명이고, 누적 조회 수는 1300만에 달한다. 정희숙의 똑똑한정리 대표와 한국정리컨설팅협회장을 맡고 있다.
정희숙의 똑똑한 정리법 <정리의 3단계>
1단계 밖에서 안으로
정리의 밑그림을 그릴 때 침실이나 아이들 방이 아니라 베란다부터 생각하자. 베란다는 정리가 시작되는 공간, 가장 먼저 꺼내서 봐야 할 곳이다.
2단계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각 공간의 목적을 정하자. 이후 가장 큰 가구부터 작은 가구 순으로 정리하고, 가구 안에 들어갈 물건은 가장 나중에 정리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의 목적에 따라 가구와 물건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다.
3단계 공간보다 물건별로
이제 정리는 공간별이 아니라 물건별로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옷을 정리한다면 모든 옷을 한자리에 모은 후 이 옷이 갈 공간을 결정해야 한다. ‘모두 꺼내기→분류→정리’가 정리의 기본 순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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