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부실 논란…‘소비자 안전핀’ 없었다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 판매가 갈수록 위축되는 가운데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의 직접투자는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설익은 금융정책과 관리감독 부실에 기인한 각종 금융사고가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판매된 사모펀드 잔액은 11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며 20조7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 7월 말(20조8000억 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7월 기준 사모펀드 잔액은 이미 20조 원을 하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사모펀드 판매 잔액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쪼그라들어 지난해 6∼7%대에서 올해 5월 말 5%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대규모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에 이어 라임, 옵티머스 등의 사모펀드 사태가 잇따르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기존 사모펀드 역시 줄줄이 분쟁조정 절차를 앞두고 있어 사모펀드 부실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공산이 커 보인다.


5조6000억 원 부실 가능성…논란 반복될 듯
지난 7월 초 기준 분쟁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된 환매 중단 사모펀드는 총 22개, 판매 규모는 무려 5조6000억 원에 달한다. 라임자산운용 펀드가 1조6600억 원으로 가장 컸고, 이어 홍콩계 사모펀드인 젠투파트너스 펀드(1조900억 원), 알펜루트자산운용 펀드(8800억 원),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5500억 원), 독일 헤리티지 DLS신탁(4500억 원) 순이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건강보험채권펀드(1600억 원), 디스커버리US핀테크 글로벌 펀드(1600억 원), 디스커버리US부동산 선순위 펀드(1100억 원), KB able DLS(1000억 원) 등도 1000억 원이 넘는 규모다. 개인 간 거래(P2P)대출업체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인 자비스 펀드와 헤이스팅스 펀드의 판매 규모는 각각 140억 원, 250억 원이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22개 펀드와 관련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1000여 건으로, 라임펀드가 절반 이상인 672건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라임 모펀드 4개 가운데 하나인 플루토 TF-1호에 대해 ‘원금 전액 반환’이라는 분쟁조정안이 나왔지만, 나머지 펀드의 경우 100% 반환이 가능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플루토 TF-1호의 경우 계약 체결 시점에 문제 소지가 있었던 만큼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적용됐는데, 이와 달리 분쟁조정을 앞두고 있는 옵티머스 펀드는 투자자 모집 이후 운용사가 계약과 다른 부실 사모사채를 펀드에 대거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운용사의 사기 행위가 문제가 된 만큼 옵티머스운용 측에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책임이 있다.


문제는 옵티머스운용이 투자금을 돌려 줄 만한 자금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해당 펀드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따져 분쟁조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돼 주요 시중은행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한편, 투자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대다수 펀드의 경우 분쟁조정안이 나오려면 적어도 5~6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사모펀드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기 힘들어 보인다.

사모펀드 부실 논란…‘소비자 안전핀’ 없었다

5억→1억→3억 고무줄 한도…‘소비자 보호’ 뒷전
대규모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핵심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오락가락한 금융정책과 관리감독 부실이 사태를 키웠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금융당국의 존립 이유인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린 채 자본시장 육성에 초점을 둔 과도한 규제 완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사모펀드의 최소 투자금액을 5억 원에서 1억 원 한도로 대폭 낮췄다. 기존에는 거액의 자금을 굴리는 전문 투자자나 기관투자가의 전유물이었던 사모펀드가 일반 투자자로 확대되면서 사모운용사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결국 5조 원대의 사모펀드 부실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 금융위는 사모펀드 투자금액을 최소 3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늦어도 8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일반 투자자가 전문 투자형 사모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최소 3억 원, 레버리지 200% 이상 투자에는 5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투자자뿐 아니라 사모펀드 운용사의 진입 규제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전문 사모운용사의 최소자본금 요건을 기존 6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낮추면서 불안정한 소규모 운용사가 난립했다는 이유에서다.

사모펀드 부실 논란…‘소비자 안전핀’ 없었다
아울러 사모펀드뿐 아니라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핀테크업체들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보다 선진화된 금융 선진국에서조차 부실 논란이 반복되는 주가연계증권(ELS)과 사모펀드처럼 고위험 상품에 대해서는 손실 감내가 어려운 일반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며 “최근 잇따르는 지급결제 사고 및 P2P대출 부실을 비롯해 소비자 보호보다는 양적 성장에 금융정책 초점이 맞춰진다면 언제든 유사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우리나라보다 P2P금융 육성에 더 적극적이었던 중국 정부의 경우 최근 투자자 피해가 급증하자 지난해 말 모든 P2P대출업체를 소규모 대출업체로 전환하도록 지시했으며, 핀테크 선두국가인 영국에서도 P2P업체의 영업 종료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뒤늦게 관리감독 강화…“한계 분명”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금융당국이 뒤늦게나마 소비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금융위와 금감원은 오는 2023년까지 사모펀드 및 사모운용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 전수조사는 전체 사모펀드 1만304개에 대한 판매사 등의 자체 전수점검과 전체 사모운용사 233개에 대한 현장점검의 이원화(two track)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모펀드 사태의 발단을 제공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우선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고강도 현장 점검을 위해 별도의 사모펀드 전담 검사조직도 향후 3년간 운영하기로 했으며, 예금보험공사, 예탁결제원 등의 인력 파견을 통해 30명 내외의 검사반도 꾸린다는 방침이다. 사모펀드 외에도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P2P대출업체 등에 대한 집중 점검도 함께 이뤄진다.


더불어 금감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미뤄졌던 금융권 종합검사 역시 하반기부터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급격한 대출 증가로 인한 은행권의 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소비자 보호 체계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검사는 사모펀드와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 사례와 함께 급격히 확산되는 핀테크 부문에 대한 검사도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회성 전수조사와는 별개로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모펀드 사태를 둘러싸고 금융당국 내 책임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지적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실제 금융위와 금감원은 사모펀드의 근본 원인을 놓고 극명한 시각차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위 측은 ‘관리감독의 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반면, 금감원은 정책의 실패, 즉 ‘규제 완화’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국 내에서조차 책임 규명보다는 네 탓 공방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감독 체계상 이런 논란은 앞 으로도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머리’(정책 입안)와 ‘손발’(관리감독)이 분리돼 있다 보니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것. 결국 이는 소비자 피해가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에 따른 규제 완화로 지목하며, 민관 공동 토론회를 제안해 개최하기도 했다. 사모펀드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금융감독 체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정책에 대한 정부 기조가 무차별적 규제 완화에서 소비자 보호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며 “다만 사모펀드 사례와 같은 책임 공방을 막기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법안 정비와 함께 금융감독 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부실 논란…‘소비자 안전핀’ 없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