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바캉스의 어원이 ‘자유’라고 한다. 하루에 20, 30분이라도 꾸준하게 내 마음을 지친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탈출시켜 자유를 느끼게 하는 바캉스 활동이 마음에는 더 좋을 수 있다.

일상 탈출, 마음을 충전시켜라
신나는 바캉스 시즌인 여름과 우울증은 먼 듯한데 의외로 계절성 우울증이 겨울 다음으로 많은 계절이 여름이다. 왜 여름에 우울해질까. 우선 햇빛이다. 뇌 안에는 수면과 호르몬 분비 등을 시간에 따라 적절하게 조정하는 ‘생체(生體)리듬’ 시계가 있는데 해시계처럼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겨울엔 햇빛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겨울 우울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어 빛을 쬐는 광선 치료도 사용된다. 반대로 여름에는 과도한 햇빛이 생체시계를 오작동시키고 뇌신경의 정보 흐름에 혼란을 주어 불면, 식욕 부진, 불안감 같은 우울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고온 다습한 날씨도 뇌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피로 현상으로 우울이 찾아올 수 있다.


심리적 요인도 여름 우울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돼 있다. 남들은 여름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데 나만 땀 흘리며 일한다는 박탈감, 드디어 여름휴가를 떠났더니 무더운 날씨와 붐비는 피서객에 지치고 놀아 달라고 보채는 자녀에게 더 지쳐 버리는, 환상적인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에선 한참 벗어난 현실 휴가에 대한 피로감, 거기에 휴가 후 찾아온 카드 청구서가 주는 경제적 위기감, 그리고 노출의 계절이다 보니 나보다 멋진 몸매를 가진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열등감 등이 여름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한다.


여름휴가에 대한 환상이 현실과 괴리가 있어 우울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해도 상상하는 순간에는 그나마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란 녀석이 여름에 대한 기대마저 망가트려 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여름 전에는 사라질 것이라 모두가 간절히 기대했을 텐데, 코로나19 이놈은 더위도 안 타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강해도 끝이 보이면 견디기 쉬운 법인데 코로나19 스트레스는 짜증 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여름 휴식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새로운 시즌인 가을을 맞이하기 전 내 마음을 재충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에게 ‘더위에, 코로나19에 힘들지만 시원하다 생각하며 힘내자’라고 직접 소통해 마음 관리가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설계됐는지 알 수 없으나 내 마음인데 내 말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 관리에 있어 보다 손쉬운 방법이 마음이 담긴 ‘뇌’, 그리고 뇌와 연결된 ‘몸’을 활용해 지친 마음을 재충전해 주는 것이다.


지친 몸, 에너지를 재충전해라

일상 탈출, 마음을 충전시켜라
여름철 마음 보양(保養)을 위해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씨가 덥고 낮이 길어지다 보니 취침 시간이 뒤로 밀려 수면의 양과 질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침실에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최대한 편안하고 조용한 수면 환경을 만들어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것이 삼계탕보다 마음이 담긴 뇌엔 더 좋은 보양식이다. 마음 안에 생체시계가 정상 리듬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경우 자녀가 방학하는 여름은 바캉스 계절이 아닌 집중 근무 기간이 돼 버리기 쉽다. 특히나 올해는 재택 온라인 수업으로 이미 충분히 가족 모두가 지쳐 있는 상태다. 나보다 더 소중한 자녀지만 사랑도 에너지이고, 쓰기만 하다 보면 마음에 피로가 찾아온다. 피로한 마음은 짜증스런 소통을 일으키기 쉽고 가족 갈등마저 만들 수 있다. 바캉스의 어원이 ‘자유로워짐’이라 하는데 행복에 대한 연구는 자유로움을 느낄 때 마음에 행복 반응이 원활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바캉스를 마음 충전 활동으로 본다면 충전은 행복할 때 일어나기에 내 마음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좋은 바캉스라 볼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당일치기라도 좋으니 부부만의 여유로운 데이트를 권한다. 이땐 잠시 부모가 아닌 남녀로서의 대화만을 하는 것이 좋다.


여행지는 어땠는지, 음식은 어땠는지 같은. 서로 사랑하는 남녀이기에 자녀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은 것인데 자녀 출산 후 엄마아빠 동호회처럼 지내다 보면 남녀로서의 느낌이 옅어지고 나중에 자녀가 출가하면 다시 남녀로 남게 되는 것이 어색해 힘들다고 하는 부부들의 고민 상담이 적지 않다.


부부 갈등이 있을 때 여행으로 풀겠다고 시도했다가 더 갈등만 커지는 경우가 많다. 관계라는 것이 이중성이 있어 가까워지면 따뜻해지지만 단점이 보여 부딪히고, 떨어지면 자유롭지만 외로워져 배우자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부부 갈등이 있는 상황이라면 기차 여행을 권하고 싶다.


여행지까지는 각자 좌석을 예약해 내려간다. 혼자만의 자유로움도 느끼고 창에 비쳐 흘러가는 풍경에 내 마음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저녁식사 때 만나는 것도 좋다. 이때 최대한 내 이야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것이 관계 힐링에 도움이 된다.


건강식으로 지친 몸에 에너지를 재충전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먹고 났더니 개운해졌다는 느낌의 음식이 나에겐 마음 영양식인 것이다.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날씨는 덥지만 선선한 시간과 장소를 찾아 산책 등 몸을 움직여 주는 것도 항우울 효과가 분명하다. 사실 멀리 가고 돈 많이 쓴다고 내 마음이 더 좋아하는 바캉스는 꼭 아니다. 배우자가 일이나 육아로 지쳤다면 주말에 반나절 정도는 혼자만의 자유로운 바캉스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훌륭한 여름 선물이라 생각한다.


바캉스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지쳤을수록 더 강한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 먼 해외여행이나 사람 많은 흥겨운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그러면 더 지칠 수 있다. 기대를 낮춘 심심한 여행이 마음 충전엔 더 좋을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