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6월은 딸기가 제철을 맞는 계절이다. 언제부턴가 겨울에도 딸기를 먹게 됐지만 예전에는 초여름에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과일이었다. 딸기는 낙원의 과일로 여겨져 중요한 상징이나 비유가 됐다.

딸기는 땅에 붙어 낮게 자라며 조그만 흰 꽃을 피우고 붉은 열매를 맺는다. 중세와 르네상스 때는 딸기의 각 부분과 특성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붙여 종교와 도덕의 상징으로 삼았다. 특히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식물로 간주해 성모의 이미지에 딸기를 첨가하곤 했다.

라인강 상류의 화가, 딸기의 성모, 1420~1430년경, 스위스 졸로투른 미술관
라인강 상류의 화가, 딸기의 성모, 1420~1430년경, 스위스 졸로투른 미술관
닫힌 정원에서 맺은 결실
성모 마리아를 이미지로 묘사하는 데는 전통으로 내려오는 여러 가지 장면이 있다. 성모의 인격과 성품, 생애의 주요 사건들이 각각 일정한 주제와 형식으로 반복해서 그려진다. 그중 중세 말에 등장한 ‘성모의 정원’이라는 테마가 있다. 성모 마리아가 울타리나 담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는 평화로운 장면을 말한다. 당시 울타리를 친 사유지 정원이 발달하면서 닫힌 정원 속에 성모를 묘사하는 회화 형태가 생겨났다. 그런 그림에서 성모는 정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아기 예수를 안고 있기도 하고 천사나 경배자들의 찬미를 받기도 한다.
15세기 전반, 독일 화가가 그린 <딸기의 성모>라는 그림도 ‘성모의 정원’ 유형에 해당된다. 장미나무 울타리를 친 정원에서 왕관을 쓴 성모 마리아가 책을 들고 앉아 아기 예수에게 백장미를 건네고 있다. 성모의 뒤편 장미나무 밑에 딸기가 가득히 심어져 있다. 잘 자란 이파리 사이로 흰 꽃과 붉은 열매들이 올망졸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딸기 잎과 꽃의 형태는 성모의 왕관 꼭대기 가장자리를 장식한 보석들에서도 발견된다.
기독교 미술에서 딸기는 모든 부분이 상징적 의미를 띤다. 세 갈래 잎은 삼위일체를, 붉은 열매는 그리스도의 피를, 꽃잎 5개는 수난의 5가지 상처를 뜻한다. 성모 마리아와 연결하면 딸기의 의미는 더 깊어진다. 꽃의 흰색은 순수와 순결을 뜻하며, 열매는 결실인 예수의 잉태를 의미한다.
식물의 낮은 키는 겸손의 미덕을 가리킨다. 성모의 그림에 딸기 꽃과 열매가 함께 나오면 마리아가 처녀이면서 동시에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닫힌 정원이라는 비유 장치가 필요했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은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므로 마리아가 남자 없이 꽃과 열매를 맺었다는 의미가 된다.
순수하고 겸손한 영혼에 성령이 내려 원죄 없는 잉태가 일어난다. 닫힌 정원은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에덴동산을 의미한다. 즉, ‘성모의 정원’은 낙원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이다. 그곳의 딸기는 희생과 미덕으로 다시 얻은 희망이요, 영광이며, 궁극적으로 인간 구원의 상징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1490~1500년경,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1490~1500년경,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세속 정원의 탐스러운 열매
중세와 르네상스 그림에서 딸기는 대체로 고귀한 영광의 열매였지만 정반대의 의미를 띠기도 했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년)의 대작 <세속적 쾌락의 정원>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3폭으로 구성됐는데, 각각 낙원, 세속, 지옥을 주제로 삼았다. 세속을 다룬 중앙의 제일 큰 그림이 ‘쾌락의 정원’이라 불리며 전체 작품의 제목이 됐다. 거기에는 넓은 동산에 벌거벗은 사람들이 각종 동식물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복잡한 그림이지만 밝은 채색과 명확한 형태, 원색의 포인트들이 있어서 상큼한 분위기가 난다. 마치 낙원의 행복한 정경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하나씩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상 속에나 나올 법한 기묘한 구조물이 여럿이고, 모양과 크기가 변형된 꽃, 과일, 나무, 조개, 물고기도 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분명한 것은 남녀의 애정과 관련된 장면들이다.
수수께끼 같은 이 그림에 딸기가 여러 번 등장한다. 딸기들이 다른 과일보다 훨씬 크고 유독 실물에 가깝게 자세히 묘사됐다.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소장했던 스페인 왕궁에서도 딸기에 주목했다. 왕실의 학예사는 잠깐 지나가는 딸기의 향기와 맛으로 덧없는 세속의 욕망과 쾌락을 그린 그림이라고 기록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중 세부 그림, 1490~1500년경,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중 세부 그림, 1490~1500년경,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화면을 위쪽부터 살펴보면 후경의 왼쪽 물가에 큰 딸기가 보인다. 사람들 무리가 거대한 딸기를 둘러싸 높이 떠받들고 있다. 이 딸기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 즉 삶에 필요한 근본적인 것을 비유하거나 집단이 숭상하는 가치를 의미하는 듯하다. 다음으로 중경의 맨 오른쪽에도 딸기가 있다. 남녀 커플들이 나무에 열린 과일을 따먹고 있고 그들 곁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한 남자가 큰 딸기를 무겁게 들고 온다. 나무의 과일이 선악과를 암시한다면 딸기는 그보다 더 크고 색다른 것이니 또 다른 금단의 열매일 것이다. 그것으로 남자는 여자의 환심을 얻으려 한다. 전경으로 내려오면서 딸기는 더 커지고 많아진다. 맨 왼쪽 유리구 속에서 딸기가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마주하고 있다. 그 오른쪽 조금 밑에서는 딸기를 등에 진 남자가 남녀 커플에게 접근한다. 그 딸기는 꼭대기에 꽃잎 모양 장식이 달리고 중심에서 가시처럼 뻗어 나온 줄기 끝에 꽃이 피어 있다. 특이한 미끼로 남의 여자를 유혹하려는 걸까.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화면 맨 앞에 자기 몸집보다 큰 딸기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그는 딸기를 막 베어 먹으려 한다. 바로 옆의 커플도 큰 과일을 갖고 있는데 속이 벌어져 구슬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온다. 좀 다르지만 이것 역시 변형된 딸기다.
보스의 그림에서 딸기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숭배하며 열망하는 것이다. 하트 같은 모양에 윤기가 흐르는 붉은 빛깔, 새콤달콤한 맛, 말랑하고 올록볼록한 질감, 황금 가루처럼 박힌 씨앗들. 그러니 누군들 보고 먹고 만지고 갖고 싶지 않겠는가. 딸기는 인간의 감각을 자극해 식욕, 성욕, 탐욕 같은 본능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을 충족한다면 지상의 모든 쾌락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딸기가 한철이듯이 세속의 쾌락은 잠시뿐이고 욕망은 끝이 없어 채워지지 않는다. 헛된 것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결국 죄를 부를 따름이다.
천국의 과일이며 성모 마리아의 상징인 딸기가 보스의 그림에서는 욕망과 죄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에덴동산에서는 딸기가 불멸의 영광이지만 세상에서는 덧없는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딸기가 장소에 따라 극과 극의 두 가지 상징으로 나뉜다. 하지만 영광과 쾌락 둘 다 달콤한 맛이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세속에서 즐거움을 모른다면 어떻게 천국의 행복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나의 딸기에서 그 두 가지 맛을 분리해 낼 수 있을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