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금속의 차가움과 섬유의 따뜻함이 아닌 그 중간의 온도. 적당히 단단하며 적당히 부드러운 그 중간의 소재. 오감을 열다. 나무를 만지다.


[special] 목공의 시간, 나무 만지며 오감을 열다

(사진) 시정근 정근날 대표목수가 수강생과 스툴을 만들고 있다. / 정근날 제공


“손에 느껴지는 그 감촉이 정말 좋아요.” 한결 같았다. 취미 목수들에게 왜 목공을 하느냐고 물으면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지만 그들은 모두 ‘손맛’을 공통으로 꼽았다. 자르고 깎고 다듬는 모든 과정에 목재를 만지는 작업이 이뤄진다. 나뭇결을 느끼는 아주 예민한 촉감으로 가구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했다. 궁금했다. 목재를 만지는 촉감, 손맛이란 게 무엇인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가구공방 정근날을 찾았다.


3시간 30분의 시간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주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할게요.” 원데이 클래스가 열린 5월 18일. 김나리 정근날 대표디자이너는 일일 수업에 앞서 제작 과정과 소요시간,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일렀다. 기자가 선택한 것은 ‘스툴’이다. 하루 안에 제작 과정 일부를 체험할 수 있어서 바쁜 직장인과 간단하게 목공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했다.


[special] 목공의 시간, 나무 만지며 오감을 열다

5분여의 짧은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톱밥이 묻은 앞치마를 걸치니 정말 목수가 된 냥 기분이 새로웠다. 각종 기계와 키 큰 목재들이 가득한 목공방에 들어섰다. 산에서 나는 풀내음, 나무 향보다는 연필을 잡았을 때의 냄새가 났다. 톱밥들이 내는 향인 듯 익숙한 냄새였다. 공방에는 전동공구들이 내는 굉음이 울렸지만 듣기 싫지는 않았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반갑습니다. 전날 먼저 신청한 수종으로 미리 목재를 준비해 놨어요.” 시정근 정근날 대표목수가 굉음 사이로 인사를 건넸다. 테이블 위로는 부재가 놓여 있었다.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미리 부재를 준비해 드려요. 목재를 자르기에는 초보자에게 벅찰 수 있고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비치, 월넛, 오크, 메이플, 체리 등 다양한 수종 중 선택할 수 있는데 기자가 고른 수종은 비치(너도밤나무)였다. 단단하고 치밀한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해 기본 수종으로 쓰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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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표목수의 설명 아래 스툴의 다리가 돼 줄 부재들의 조립을 먼저 시작했다. 준비물은 4개의 다리와 이를 지지하는 받침 목재 7개, 여기에 이들을 조립하도록 돕는 부재이자 못의 대용인 도미노칩이다.


방향에 맞춰 순서대로 도미노칩이 들어갈 공간에 목공용 본드를 붓고, 도미노칩을 삽입해 부재와 부재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분명히 순서까지 쓰여 있는데 헷갈렸다. 1번 목재에 2번 목재를 끼워야 하는데 4번을 끼웠다. 의자다리가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아아, 당황하지 마세요. 아직 본드가 굳지 않아서 뺄 수 있어요. 다시 하면 됩니다.” 시 대표목수는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했다. 목공용 본드가 빠르게 굳기 때문에 그전에 프레임 결구를 완료해야 했다. ‘손은 밖으로 나온 뇌’라고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던가. ‘머리를 쓰자.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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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조립을 완료한 뒤 보다 결합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클램프를 사용했다. 양쪽에 균일한 압력을 적용해 결합을 조이는 공구다. “상판을 마무리하는 동안 프레임을 클램핑 해 둡니다. 못질을 하지 않아도 그 이상으로 더 견고하죠.”


스툴 다리를 뒤로 하고 상판 작업에 돌입했다. 네모 모양으로 반듯하게 잘린 목재가 준비돼 있었다.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 상판을 만들 수 있어요. 대신 스툴 다리에 상판을 얹혀야 하기 때문에 다리 너비보다는 크게 만들어야 해요.” 이번엔 김 대표디자이너가 디자인에 도움을 줬다. 미리 준비한 의자의 모습을 보여 줬다. 엉덩이의 모양대로 약간 둥글면서도 각이 있으면 했다. 연필로 나무 위에 시안을 그린 뒤 재단 작업에 들어갔다. 원하는 디자인이 곡선 형태이기에 밴드쏘라는 기계를 사용했다. 기계 앞에 서니 긴장이 됐다. 어쩐지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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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표목수는 “밴드쏘라는 기계는 곡선을 딸 때 쓰는데 보다시피 탄성이 있다”며 “안전하게만 사용한다면 다칠 일이 없다”고 안심시켰다. “자, 연습 먼저 해 볼게요.” 라운드에 맞춰 톱날에 목재를 밀었다. 라인을 좀 남겨둔 채로 둥글리기만 하면 되는데 엇나가기 일쑤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제 실전이다. 다소 울퉁불퉁했지만 그런 대로 모양이 나왔다. “보다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서 벨트샌더로 샌딩 작업을 해야 해요. 기계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안전을 요하는 단계입니다.” 나무가 벨트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어 힘을 주고 목재를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무서웠지만 기계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라인대로 목재가 갈려 나갔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벨트에서 오는 진동에 묘한 쾌감이 일었다. 갈려 나가는 목재에서 은은한 향이 났다. 톱밥 먼지가 날려도 불쾌하지 않았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금속의 차가움과 섬유의 따뜻함이 아닌 그 중간의 온도. 나무가 주는 편안함이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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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작업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내가 만든 디자인으로 자른 상판에 멋스러움을 더하기 위해 트리머로 라인을 부드럽게 따 줬다. 이어진 작업은 거칠거칠한 표면을 부드럽게 만드는 샌딩 작업이다. “손 샌딩을 하기 전에 기계로 샌딩을 해 줘요. 거친 사포로 한 번, 부드러운 사포로 한 번 하면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 날 거예요.” 빠르게 돌아가는 샌딩 기계는 꽉 잡아 눌러야 사포질이 가능했다. 힘을 주어 샌딩 기계를 돌리니 연필자국들이 사르르 지워졌다. 샌딩 작업을 마치니 상판의 거친 부분들은 온 데 간 데 없이 부드러워졌다. 기계가 다루지 못한 부분은 손 샌딩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쓱쓱. 나뭇결을 따라 사포를 문지를수록 소복이 쌓인 톱밥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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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핑 돼 있던 프레임을 풀어 주고, 끌을 이용해 본드 찌꺼기도 제거했다. “끌 작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다쳐요. 끝이 날카롭기 때문에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단단히 고정된 다리 부분에도 샌딩 작업을 진행했다. 사포로 목재를 문지르는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마냥 지루하지 않다. 계속 만져 보며 내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니 마음속 소란이 없어지고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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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만져도 티끌 하나 없을 듯한 상판과 다리를 잇는 작업만 남았다. 상판과 다리 부분은 피스로 고정해야 하는데, 이때 피스에 오일을 발라야만 수분으로부터 목재를 보호해 뒤틀림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드디어 나의 의자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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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체적으로 오일을 발라 주시면 작업은 끝이 납니다. 현대 기술로 수축, 팽창을 잡아 주는 것은 오일밖에 없어요. 아무리 두껍게 발라도 목재의 특성상 수축, 팽창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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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장갑을 낀 것은 이 과정에서밖에 없었다. 처음 작업실에 들어와 장갑을 끼지 않아도 되냐고 묻자, 시 대표목수는 당황한 듯이 말했다. “결을 계속 느끼면서 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보통 장갑을 끼지는 않아요”라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아무리 그래도 안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가시에 박히지는 않을까 공포감이 있었다. 고작 4시간도 채 안 된 작업 끝에 알았다. ‘손맛’이 목공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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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표목수에 따르면 수강생의 나잇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원데이 클래스의 경우 2030대가 많지만, 취미반과 전문반에는 4050대가 주로 찾는다. 정근날을 찾은 수강생 중 최저 연령은 13세였다고. 시 대표는 “손을 쉬지 않고 움직여 잡생각이 없어진다.”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는 후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여가를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미 있는 결과물까지 취할 수 있어 공방의 인기가 좋다”며 “오시는 분마다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담아 취향을 보여 주는데 그게 DIY의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의자가 다 완성되자 나의 이름을 원목에 새겼다. 상판 옆면에 브랜드명 대신 이름을 새기고 나니 명품 브랜드 의자보다 더 특별한 것을 소유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이 나”라고 말한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경험의 시대에서 목공 체험이 인기인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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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목수가 추천하는 목공 입문자 필수 공구


초보자들이 필요한 공구는 다다익선입니다. 작업을 보조해 주는 수많은 수공구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죠.


첫째, 서양 대패입니다. 일반적인 모양의 동양 대패보다 무겁고 비싸지만 대패 날을 맞추는 데에 있어 초보자들도 쉽게 세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둘째, 3가지 사이즈의 끌이 필요합니다. 28mm, 16mm, 4~5mm 정도의 끌이 있으면 일반적인 작업의 경우 무난하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대패 날과 끌을 연마할 수 있는 숫돌이 필요합니다. 다이아몬드 숫돌 1개와 800#, 3000# 이 정도가 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측정을 위한 도구인 삼각자와 버니어캘리퍼스, 줄자도 필요합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처음부터 비싼 공구를 구입하지 마세요. 대패나 끌이 가격이 나가는 편인데 굳이 비싼 공구를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날은 어떻게 연마하고 세팅하는지가 더 중요하지요. 수공구는 목수가 어떻게 연마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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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김나리 정근날 대표디자이너와 시정근 정근날 대표목수.


정근날은...

정근날은 가구제작과 목공 교육을 기반한 공방으로 리빙아트 전반에 걸친 전문가들의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다. 시정근 대표목수와 김나리 대표디자이너가 함께 운영하며 목공에 위빙, 자개, 옻칠 등 다양한 아트를 협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마, 스툴, 코스터 등의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시작으로, 취미반, 전문가 및 창업과정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전문가 클래스의 경우 작품의 모티브를 탐색하고 설계 프로그램 교육 및 다양한 아트(위빙, 자개, 옻칠 등) 와의 협업 교육을 진행한다. 향후 목공방을 넘어 아트공방이자 '공예작가들의 살롱'으로 확장한다는 꿈을 안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