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 게임 프로그래머 “위스키 수집, ‘시간을 산다’는 거죠”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좋아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 게임 프로그래머인 김준엽 씨의 삶이 그런 듯했다. 원래 술을 좋아하던 그는 우연히 맛본 위스키 맛에 매료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해 어느덧 100여 병을 가진 위스키 컬렉터가 됐다.


“위스키 맛이 좋거든요.” 왜 술 한 잔 값에 그리 비싼 돈을 지불하느냐에 대한 답이었다. 김준엽 씨가 가진 100여 병의 위스키 중에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그가 이렇게 위스키에 집착하는 건 그가 돈이 많아서도, 부를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좋은 집, 좋은 차는 그의 관심 밖 이야기다.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그게 평범한 직장인이 위스키 컬렉터가 된 이유였다. 어느 퇴근길, 그가 자주 가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작은 바에 앉아 위스키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위스키를 모으게 됐나요.
“저는 소주를 제외하고선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우연히 마셨던 위스키가 정말 맛이 있었어요. 강렬했던 첫인상을 잊지 못하고 위스키를 계속 공부하고 찾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위스키여도 빈티지마다 맛이 다른 것을 알게 됐고,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구하기 더 어렵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 대로 원하는 위스키를 사 모으게 됐습니다. 저는 같은 제품이어도 생산 시기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저처럼 생산 시기별로도 모으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같은 맥캘란 18년산이어도 다 같은 맛이 아닙니다. 빈티지별로 맛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1993년 빈티지를 마시고 2019년 빈티지를 사면 같은 맛이 아니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생깁니다.”


맛있는 위스키는 어떤 것인가요.
“위스키 애호가가 선호하는 맛은 올드 빈티지 본연의 맛과 향을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증류소마다 사용한 보리가 바뀌고, 셰리 캐스크가 다릅니다. 그중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그레이트 빈티지라고도 하죠.
어떤 위스키는 향과 아로마가 다양하고 진하게 느껴지지만 맛이 이를 따르지 못합니다. 위스키가 가진 향과 아로마가 맛까지 잘 전달되는 것, 다양한 맛의 균형이 잘 잡힌 위스키가 ‘맛이 있는’ 위스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셰리 캐스크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를 좋아합니다. 셰리 캐스크란 셰리 와인을 숙성한 오크통을 말하는데 와인을 담고 그것을 낸 후에는 위스키 원액을 담아 두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위스키를 구매하는 원칙이 있나요.
“지금까지 마셔 봤던 것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위주로 구입하는 편입니다. 제가 구입하는 위스키는 저렴한 것은 몇 십만 원대도 있지만 몇 백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제 취향을 아는 믿을 만한 분들의 추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바 사장님의 추천은 거의 틀릴 때가 없죠. 애착이 있는 건 시리즈별로 모으기도 합니다. 맥캘란 18년산과 마르스의 고마가타케 시리즈는 매년 사고 있는 위스키들입니다. 같은 맥캘란 18년산이라도 언제 병입을 했느냐, 어느 빈티지냐에 따라서 맛이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준엽 게임 프로그래머 “위스키 수집, ‘시간을 산다’는 거죠”

수집한 위스키 중에서 가장 희귀한 위스키는.
“제게 있는 가장 희귀한 위스키는 ‘맥캘란 파인앤레어 1973(이하 맥캘란 1973)’입니다. 대부분의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이 위스키는 가진 사람이 드물 정도로 아주 희귀한 아이템입니다. 고가인 데다가 희소성 때문이죠. 홍콩 경매에서는 한화로 2000만 원 넘게 판매되기도 했던 제품입니다. 저는 그보다는 조금 더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고요. 이 위스키가 왜 이렇게 비싼가 하면 보통 위스키를 생산할 때는 비슷한 해에 여러 오크통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를 혼합해서 만들어요. 좋은 맛이 나는 오크통이 있고, 조금 덜한 오크통이 있을 텐데 그걸 다 섞어서 맛을 균일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맥캘란 1973은 가장 맛이 좋은 오크통 하나에서만 추출한 위스키예요. 진가만 담은 거죠. 그래서 맛이 좋고, 가격도 비싸죠. 특히 위스키 생산 연도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위스키 황금 시기라고 하는데, 그 시기에 나온 보리나 위스키를 담는 통인 셰리 오크통 등 위스키를 만드는 데 필요했던 재료의 질이 가장 좋았던 시기였어요. 이 위스키 역시 맛이 보장된 셈이죠.”


맥캘란 1973의 맛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는 맥캘란 1973은 맛에 흠이 없는 위스키라고 할 수 있어요. 위스키를 마시면서 입맛이 조금 높아졌는데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흠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향이 조금 덜 받쳐 준다든지, 맛이 따라오지 못한다든지 하는 흠결이죠. 그런데 맥캘란 1973은 마셨을 때 제게 그런 흠결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구입을 하게 됐죠.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재현 불가능한 맛이라고 평하기도 해요. 한 잔 값만 해도 수백만 원인데 위스키를 좋아하는 직장인들이 해외여행 한 번 갈 바에는 이 위스키를 마신다고도 하죠. 물론 돈 많은 사람은 해외여행을 가서 마시겠지만요.(웃음)”


맥캘란 1973의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추후에 되팔 생각도 있나요.
“저는 한번 들인 제품은 절대로 되파는 법이 없습니다. 맥캘란 1973을 산 게 어떤 의미에서는 투자 목적도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사는 게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죠. 가치가 점점 오르기 때문에 몇 년 후에 사면 훨씬 비싼 값에 사야 하거든요. 위스키를 사는 건 시간을 산다는 개념과 같습니다. 이 술은 제가 바에 가서 술을 사 마실 돈이 없어질 때 열려고 합니다. 그때는 함께 마실 사람들을 몇 분 모집해서 마시겠죠. 그때쯤에는 가격이 2배가 된 이 술을 마시면서 난 훨씬 저렴하게 샀는데 하고 웃으면서 마시겠죠. 그런 쾌감이 있어요.”


위스키 수집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저도 아직 많이 배우는 중이지만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몇 마디를 하자면, 우선 오늘 마시는 술이 가장 쌉니다. 위스키 가격이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제가 이만큼 술을 모으고 있는 이유도 되겠죠. 원하는 위스키를 발견하면 너무 고민하지 말고 구매할 것을 권합니다. 또 너무 한 가지 취향으로만 사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꽂히는 맛과 향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예전에는 피트 향(위스키 원료를 훈연해서 나는 소독약 냄새와 비슷한 독특한 향)을 싫어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맛을 받쳐 주는 정도까지는 좋아하게 됐어요. 사람들마다 확고하게 무엇이 좋다, 좋지 않다 가를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좋은 위스키로만 수집을 하다 보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꼭 생기게 됩니다. 위스키를 마셔 보고 구매하지 못할 때는 ‘위스키베이스’와 같은 위스키 평점 사이트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이트에는 테이스팅 노트와 평점이 있으니 이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또 위스키는 면세점 라인이 따로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에서 ‘하일랜드파크 18’을 마시고 맛있어서 면세점에서 같은 ‘하일랜드파크 18’을 구매하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위스키회사에서 면세품은 다르게 생산하고 제조하기 때문에 두 위스키가 같은 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스키를 더욱 즐겁게 즐기는 법

맥켈란 파인앤레어 1973(Macallan Fine & Rare 1973) 가격 약 2만 유로. / 글렌드로낙 싱글캐스크 1972(Glendronach Single Cask 1972) 가격 약 4500유로 / 글렌파클라스 패밀리캐스크 1965(Glenfarclas The Family Casks 1665) 가격 약 1500유로./ 사마롤리 글렌그란트 1973(Samaroli Gran Grant 1973) 가격 약 1800유로. 야마자키 18년(Yamazaki 18-year-old) 가격 약 600유로.
맥켈란 파인앤레어 1973(Macallan Fine & Rare 1973) 가격 약 2만 유로. / 글렌드로낙 싱글캐스크 1972(Glendronach Single Cask 1972) 가격 약 4500유로 / 글렌파클라스 패밀리캐스크 1965(Glenfarclas The Family Casks 1665) 가격 약 1500유로./ 사마롤리 글렌그란트 1973(Samaroli Gran Grant 1973) 가격 약 1800유로. 야마자키 18년(Yamazaki 18-year-old) 가격 약 600유로.

위스키가 대중화됐지만 아직 위스키를 제대로 마시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게임 프로그래머 김준엽 씨에게서 위스키를 즐겁게 즐기는 알짜 포인트를 들어봤다.


➊ 와인에 공기를 섞어 디켄딩을 해 주면 맛이 더욱 풍부해지듯 위스키도 안정화가 필요하다. 특히 저숙성 위스키(12년산 이내)의 경우 개봉하자마자 마시면 맛이 거친 경우가 많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잔에 따라 뒀다가 마시면 맛이 부드러워진다.

➋ 저숙성 위스키에는 물 한 방울 정도를 첨가하면 맛과 향이 보다 풍부해지는 경우가 있다.

➌ 즐기는 방법은 아니지만 온더록으로 마실 때 더 맛있는 위스키가 분명 있다.

➍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의 경우 가수를 하지 않아 독할 때가 있다. 이럴 땐 취향에 맞게 물을 타서 먹는 것이 좋다.

➎ 1병을 몇 달간 마시면서 맛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재미있다.

➏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위스키지만 이 역시 개봉하지 않았을 때 얘기다. 위스키도 일단 개봉한 후에는 넉넉히 잡아도 6개월 안에는 마셔야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위스키를 혼자서 즐기기는 아무래도 무리일터. 이럴 때는 위스키 모임을 통해서 잔당 값을 매겨서 술을 개봉하는 위스키 품앗이도 위스키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➐ 위스키는 안주 없이 술 자체를 즐기는 술이다. 곁들이는 안주는 위스키의 맛을 해칠 뿐이다.

➑ 단골 바를 만들어라. 같은 술도 바에서 마시면 더욱 맛있다. 아마 바텐더의 위스키 안정화가 잘 돼 있기도 하고, 바텐더와 얘기 나누는 기쁨 때문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