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복잡한 서울에서도 아직 고즈넉한 기운이 감도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언덕에 가정식 식당 데미타스가 있다. 데미타스는 부암동의 작고 예쁜 식당으로도 이름이 났지만 빈티지 그릇 애호가들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기대감과 설렘에 부암동의 언덕길을 힘든 줄 모르고 오르지 않았을까.
50~70년 전통의
빈티지 그릇 컬렉션
16.5㎡ 남짓한 공간에 조리대와 식당 테이블을 제외한 공간에는 김연화·김봉균 남매가 모아 온 데미타스(에스프레소잔) 컬렉션이 빼곡하다. 데미타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연화 실장이 출장을 다니며 하나 둘 모은 그릇을 전시하기 위해서 마련한 공간이다. 현재는 동생인 김봉균 대표가 이어받아 가게를 꾸리고 있다. 데미타스를 연 김연화 실장은 이미 북유럽 그릇이 유행하기 십수 년 전, 빈티지 그릇을 수집해 온 1세대 수집가다. 현재는 동생인 김봉균 대표가 컬렉션을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가 모으는 것은 만들어진 지 100년 미만의 주로 50~70년 된 빈티지 제품들. 100년 이상 된 앤티크 그릇은 그의 관심 밖이다. 그는 왜 빈티지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처음에는 누나가 모아 온 그릇을 그저 보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그 매력에 빠지게 됐죠. 특히 북유럽 빈티지 그릇은 간결한 디자인으로 요즘 시대에도 그렇게 뒤처지지 않았거든요. 또 그릇마다 가진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게 또 재밌더라고요.”
‘100점 정도만 모아 보자’ 하고 시작한 컬렉션이 이제는 150점을 훌쩍 넘어섰다. 그가 일일이 모은 150점은 크기도, 모양도, 디자인도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각자 저만의 스타일과 디자인을 간직한 것들로만 채웠으니 컬렉션의 깊이는 이제 완성한 셈이다.
“요즘도 계속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희귀한 디자인이나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컬렉션을 사 모아요. 이베이나 중고카페를 통해서도 거래하고요. 중고카페를 계속 지켜보다 보면 가격이 어느 정도에 형성되는지를 대충 가늠해 볼 수 있죠.”
온라인으로 거래할 때 아찔한 경험도 더러 있다.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Paypal)로 결제를 완료했지만 판매자와 연락이 닿지 않은 것. 물건을 보냈다고 해서 몇 달을 기다려도 제품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수십만 원을 날릴 뻔했지만 다행히 페이팔을 통해 결제를 취소했고 사기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것.
가게에 오는 손님들로부터 컬렉션을 판매하라는 요구도 많다. 최근 빈티지 그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그의 가게는 빈티지 그릇 애호가들에게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같은 제품이 있다면 팔기도 했는데 요즘엔 같은 물건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한 점도 팔 수가 없는 거죠. 그릇을 팔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셔도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빈티지 그릇의 절제된 디자인
앤티크 제품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화려한 색감이 주를 이루지만 빈티지 그릇은 시간을 관통하는 절제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특히 북유럽 디자인은 자연을 차용한 디자인이 많다. 꽃, 잎사귀, 조약돌, 버섯, 새싹, 나뭇가지 등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전반적인 북유럽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이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릇에도 이런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특히 아끼는 빈티지 그릇은 디자이너가 하나하나 손수 그린 핸드프린팅이 특징. 하나하나 유약을 발라 구워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색감이 흐트러짐이 없다. 모두가 가진 흔한 디자인이 아닌 어렵게 구한 것들이 많아 한 점 한 점 애착이 남다르다.
그가 가진 제품은 아라비아핀란드를 비롯해 로스트란드. 그중 아라비아핀란드는 빈티지 그릇 입문자들이라면 한두 점 가지고 있을 법한 브랜드다. 현재는 핀란드의 그릇회사인 이탈라가 인수했지만 예전의 아라비아핀란드는 생산되지 않는다. 스웨덴의 그릇회사인 구스타프 베르그, 로스틀란드도 그가 좋아하는 컬렉션 중 하나다.
빈티지의 가치는 결국 희소성이 가장 크게 좌우한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핀란드의 ‘코랄리’는 희소성 때문에 다른 제품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 빈티지 그릇은 컬렉션별로 디자이너도 다른데 생산됐던 수량, 디자이너의 명성 등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리 책정된다. 물론 제품의 컨디션도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스크래치가 많을수록, 크랙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핸드메이드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림이 일정성은 중요 판단 요소가 아니다. 다만 도자기이기 때문에 디자인 외적인 점 등으로 B품이라면 가격이 낮게 책정된다.
소비자로서는 이 같은 내용을 잘 알아야 가격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물론 빈티지 거래의 특성상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가격의 절대적인 권한은 판매자에게 달려 있기도 하다. 김 대표는 “판매자가 저렴하게 판매하는 경우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적으로 운에 달리기도 한다”며 “운이 좋으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도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INI INTERVIEW
빈티지 그릇 컬렉터
김연화·김봉균 남매에게서 듣는 컬렉팅 노하우
Q 빈티지 그릇은 어디서 주로 거래하나.
A 김연화 실장: 빈티지 그릇 수집에 열을 올리던 때는 블로그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해 함께 빈티지 그릇 시장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거래가 잦은 편이다. 해외 빈티지 마켓을 직접 방문해서 사 오는 게 가장 정확하고 실패가 없다. 하지만 그러기엔 비용도, 품도 많이 드니 SNS를 통해서 많이 거래를 한다. 해외에 사는 분들이 SNS를 통해 현지 마켓의 그릇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판매자를 잘 만나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구해 주기도 한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알게 된 분들과 고정적으로 거래를 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Q 가볼 만한 해외 빈티지 그릇 시장은.
A 김연화 실장: 프랑스 파리에 간다면 클리낭크루 벼룩시장에 꼭 가봐야 한다. 프랑스 최대 미술품 벼룩시장으로 주말마다 열리며 규모가 크다.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 광장의 주말 벼룩시장에서는 대를 물려 쓰던 앤티크 인테리어 소품, 그릇들을 구입할 수 있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비싸다. 덴마크 일룸볼리우스 백화점에서는 리빙용품 전문 백화점으로 북유럽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인테리어 아이템이 빼곡하다. 영국에서는 브릭레인 마켓, 캄덴 마켓을 추천한다. 다양한 골동품, 인테리어 소품부터 덩치 큰 가구들까지 없는 게 없는 영국의 벼룩시장이다. 영국의 하비니콜슨·리버티 백화점은 인테리어·리빙 아이템이 다양한 백화점이다. 트렌드를 한눈에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Q 초보 컬렉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A 김연화 실장: 빈티지 그릇이 저렴하게는 몇 만 원에도 살 수 있지만 희소성이 높은 것들은 50만~100만 원에도 거래될 만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나 같은 경우 이름이 연화라 연꽃 디자인이 있는 제품을 모은다든가, 별자리가 물고기자리라 물고기 그림을 모으는 등으로 컬렉션을 했다. 이렇게 하면 통일성도 있고, 모으는 재미도 남다르고 의미도 더할 수 있다.
Q 빈티지 그릇,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A 김봉균 대표: 아주 고가의 제품이 아니라면 찬장에만 전시하지 말고 꺼내서 사용할 것을 권한다. 북유럽 그릇은 요즘 나오는 그릇보다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두께도 두꺼워 웬만한 충격에도 잘 깨지지 않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예쁘지만 사용할 때 더 빛을 발하는 게 북유럽 그릇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 그릇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도 보관도 용이하게 만들었다. 자꾸 닦고 사용해야지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데미타스에서도 흠집이 많은 제품들은 고객이 사용하는 용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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