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조금 다른 삶으로 조금 더 행복한 사람들, 중년 덕후들을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재태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로 올해 63세입니다. 1989년부터 경북대학교병원 핵의학과 교수로 근무 중입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장을 맡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플린트 유리 프랑스 종(19세기).
언제부터 종을 모으셨나요.
“1992년 미국 워싱턴 DC 근처의 미국국립보건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벼룩시장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수집해 온 도자기 인형을 판매하는 부인을 만났습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캐럴을 부르거나 북치는 소년, 피노키오, 기도하는 소녀 등등은 도자기 종이었습니다. 그 종을 시작으로 4개월 동안 거의 30개의 종을 구입한 게 종 수집의 시작이었습니다. 틈틈이 우표, 동전, 열쇠고리 등을 모으던 수집벽이 다시 발휘돼 벼룩시장, 골동품 가게를 찾아 다녔고 미국에서 2년 후 귀국할 때에는 200개 정도의 종을 가지고 왔습니다.”
현재 수집한 종은 얼마 정도일까요. 가격대로도 셈이 가능할까요.
“1만 개 이상이 됩니다. 공정 가격은 없으니 정확하게 셈하기 어렵습니다만, 10억 원은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관심 있는 사람이 없다면 한낱 쓰레기일 뿐이겠지요. 경매에서 경쟁이 붙어 비싸게 사기도 하나 가끔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거저 얻기도 하는 게 수집의 세계입니다. 제가 구입한 종 중에서 가장 비싸게 구한 것은 15년 전쯤 독일의 어느 골동품상에게서 구입한 순은으로 만들고 얼굴과 손은 상아로 깎아 끼워 넣은 ‘은제 여왕 종’입니다. 높이도 30cm 정도 되니 상당히 큰 종입니다. 당시 5000달러(현재 약 640만 원) 이상을 주었습니다.”
(사진) 은제 독일 여왕 종(18세기, 30cm).
수집한 종을 자랑해 주세요. 가장 아끼는 것이 있다면.
“하나하나가 저의 머릿속에 기억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수집한 개수가 늘어나니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중복해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우연히 집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멋진 종에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초창기에 미국의 조각가 제리 발랜타인이 1970년부터 27년간 매년 1, 2개씩 만들었던 청동 종 40개를 모두 구입하는 데 엄청 힘을 쏟았던 기억이 가장 남습니다. 또한 19세기 말 프랑스 바카라 유리회사에서 만든 색이 든 플린트 유리에 비엔나 청동조각 손잡이와 추를 장착한 여러 종류의 종들을 하나 둘 씩 모아 거의 20개나 수집한 것도 뿌듯합니다.”
(사진) 폴란드 여왕 은 종(1813년, 14×8cm).
수집에 따른 애로사항은 없나요.
“애로 사항이 많지요. 야금야금 수집을 시작하지만, 오랫동안 수집을 하다 보면 명품을 알게 되고 그 단계부터는 돈도 많이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수집가들이 발품을 팔았다고 했으나 요즘은 모든 게 돈이면 되는 세상이니, 수집에서도 경제적인 면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에서 자신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은 보관 및 전시입니다. 수집품을 전시할 공간을 찾지 못하는 게 수집가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저도 이곳저곳에 1만여 점의 종을 두고 있고, 상당한 양의 종을 가정집 2층을 빌려 박스 안에 포장해 두고 있습니다. 부동산 값이 만만찮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전시할 공간을 스스로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 역시 고민입니다.
수집품 중에는 청동, 황동, 은 등의 금속제품이 많습니다. 유지하는 것도 힘이 많이 듭니다. 여름에 습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은제품은 거의 검게 녹으로 뒤덮입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을 제쳐두고 녹 닦는 일만 할 수 없으니 유지보수도 큰 애로사항입니다.”
(사진) 일본 청동 인물 종.
되팔거나 경제적 이득을 보시지는 않나요.
“순수하게 수집만 했으니, 되팔지는 않습니다. 단, 중복된 종 몇 개 정도는 우리나라의 수집가에게 구입한 가격 정도로 넘긴 적이 있습니다. 경제적 이익을 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중년의 덕후,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연히 시작한 종 수집은 저의 인생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때로는 여기에 너무나 열중해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 잘못도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지나가 버린 그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저에게 주어진 참 즐거웠던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외국의 수집가들을 교류하고 만나며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일상을 열심히 살며 가족들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작은 취미를 평생 동안 이어가는 저력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깨끗이 기증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우리나라에 괜찮은 종박물관이 하나 만들어진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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