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외부와 실내를 잇는 소통의 창, 일상을 함께하는 ‘유리’는 집 안 꾸미기의 시작이다.
봄이 사부작사부작 다가오고 있다.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봄을 가장 먼저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아마도 베란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볕일 것이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3월을 맞이하니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볕이 평안함과 함께 화사한 봄날을 꿈꾸게 한다.
유리는 오늘날 다양한 글라스와 창문, 거울의 형태로 우리와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유리제품 중에서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은 집 안 꾸미기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집 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거실 창은 집 안의 안주인에게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한겨울 추워서 멀리했던 베란다 창 앞에 봄을 알리는 새덤, 수선화를 심고 산수유, 산매화를 꽂아 봄의 화사함을 미리 즐겨 보자.
(왼쪽부터) 그린과 핑크의 조화가 아름다운 와인 잔(아르누보). 디너 접시에 크리스털 수프 접시를 레이어드한 정찬 세팅(아르데코). 캔들 홀더와 화기 둘 다로 쓸 수 있는 오렌지 볼의 크리스털 앤티크(아르누보).
‘귀한 것’ 최고의 예술문화
유리의 역사는 무척 길지만 창문으로 쓰이는 판유리가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양에서 비싼 사치품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 격인 유리세가 폐지된 것은 1845년으로, 그전까지만 해도 유리제품은 대표적으로 값비싼 상류층의 신분 과시용 공예품이었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서 ‘유리불기(glass blowing)법’이 발명돼 본격적인 생산이 이루어졌고 꽃병, 접시, 물병, 술잔 등 다양한 유리제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당시의 귀족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포도주를 유리잔에 담아 마실 수 있었다. 4세기경 로마인들의 블로잉 기법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의 귀족에게까지 건네어졌다. 오늘날 중국의 귀중한 유물로 발굴되기도 하니 유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 열망하며 소유하고자 했던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그 시대 최고 수준의 예술문화를 낳았던 유리는 인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귀한 것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장식품으로 쓰였던 유리는 7세기경이 돼서야 중동 지역에서 창이나 천장에 건축 부자재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때 쓰였던 색유리는 그 후 유럽에 전해져 우리가 알고 있는 홀리글라스(holy glass), 즉 스테인드글라스의 형태로 교회 건축의 상징물이 됐다. 이렇게 유리는 창문과 결합돼 건축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실내에서 볕을 누리는 큰 선물을 인류에게 선사한다.
한지로 된 창호를 달아서 햇빛을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끌어들였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한옥과 달리, 서양의 건축물들은 햇빛이 들어오기 힘든 육중한 돌로 지어졌다. 햇빛을 실내로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판유리가 끼워진 창이 필요한데, 1700년대 이전까지는 많은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큰 창을 채울 만한 판유리 제작 기술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 이유로 서양 건축물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햇빛만 들어오는 창 구조를 갖게 됐고,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사진) 가장자리를 스털링으로 트리밍한 고급스러운 센터피스와 스털링 서버(아르데코).
(사진) 은분으로 핸드페인팅한 컴포트(아르누보).
(사진) 스털링을 조각해서 정교하게 무늬를 장식한 크리스털 저그(아르누보).
프랑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리게 되는 베르사유궁전에 있는 거울의 방은 유리의 높았던 몸값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15세기에 이르러 거울은 베네치아에서 우수한 품질로 거듭나게 되는데, 당시 베네치아의 거울은 이전의 희미했던 금속거울과는 차원이 다르게 유리 평면거울로 만들어져 획기적인 발명품이 됐다.
엄청나게 비싼 유리거울의 가격은 평민들과의 차별과 구별을 원했던 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신분 과시용 아이템이 됐다. 귀족들은 앞 다투어 더 큰 거울을 소유하기를 원했고, 부로써 귀족들을 누르고자 했던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의 한 방을 대형 거울로 장식했다.
아르누보 시대 유리공예의 시작
19세기를 마감하는 1890년대부터 곡선의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의 ‘아르누보’라는 예술사조가 시작된다. 이 예술사조에서 유리는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며 많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작가로 유명한 르네 랄리크, 에밀 갈레, 돔 형제 등은 샐러드 볼이나 화병 같은 유리 작품을 특히 많이 남겼는데, 이것은 샐러드 볼이나 화병의 수요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음습한 날이 많은 유럽에서 파티에 신선한 야채, 과일, 꽃을 내놓는다는 것은 판유리가 끼워진 온실을 소유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곧 집주인의 부를 과시하는 확실한 징표가 됐기에 부의 상징인 싱싱한 야채와 생화를 꽂을 볼과 화병의 수요는 이런 이유로 점점 늘어났다.
유리 예술의 꽃으로 불리는 아르누보 시대는 이전의 예술사조였던 중국풍의 시누아즈리와 자포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두 사조 모두 동양을 흠모하고 동경해서 생겨난 사조로서, 로코코 시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 시대는 유럽의 많은 귀족들이 앞 다투어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 가구류를 수입해 부를 과시했던 시기였다.
(사진) 금도금과 은도금이 화려한 디너 접시와 스털링 베이스의 수프 볼(아르데코).
(사진) 살구 톤이 여성스러운 센터피스와 디캔터(아르누보).
19세기 중엽에 나타난 자포니즘은 모네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뒤이어 생겨난 아르누보 시대의 유리공예품을 동양적 화조무늬로 채우게 한다. 아직도 많이 남아 전해지고 있는 프랑스의 유리공예 예술가 랄리크와 갈레의 작품에는 우리의 산수화를 유리에 새겨놓은 듯 꽃과 나비의 묘사가 아름답다.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봄볕이 사랑스러운 요즘 오랜만에 꽃시장에 들러 한 아름 봄꽃을 사들고 집에 와서 창가를 꾸미는 것에 하루쯤 푹 빠져 보자. 세상과 소통의 창인 우리 집 창가에 피어난 봄기운이 가족들에게 활기찬 희망과 웃음을 선사해 줄 것이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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