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강운

공기와 꿈, 캔버스에 염색 및 한지 위에 한지, 181.8×259cm, 2015년
공기와 꿈, 캔버스에 염색 및 한지 위에 한지, 181.8×259cm, 2015년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모든 구름 뒤에는 바람이 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구름의 형상은 달라진다. 바람의 움직임을 구름이 보여 주는 셈이다. 그러니 구름도 바람이다. 강운은 ‘구름의 작가’로 통한다. 이름에도 ‘구름 운(雲)’자를 쓰니 운명이다. 그 구름으로 세상에 대한 연민과 상처의 치유 과정을 담아 낸다.


무수한 침질로 벽에 구멍을 내듯, 오로지 엄청난 시간의 순수 노동력만으로 구름과 바람의 흔적을 쫓는다. 영국의 대시인이자 <실낙원>의 저자인 존 밀턴(1608~1674년)의 “모든 구름 뒤에는 햇빛이 있다”는 말처럼 강운 작가 역시 구름 너머에서 희망을 본다. 그것은 자유의 바람이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상징은 구름과 바람의 공통점이다. 20여 년 넘게 지속해 온 ‘구름’ 연작 외에 최근 ‘철조망’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철조망의 갑작스런 등장은 ‘구름 작가’에 익숙했던 이에겐 매우 생경했다. 갑자기 무슨 변심인가. 새로운 변화를 가진 계기가 무엇일까. 구름을 버린 걸까.


여러 억측들은 강운을 아끼던 이들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철조망 연작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군 시절 비무장지대 초소에서 매서운 추위에 떨며 철책선을 마주했던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철조망을 뚫고 지나는 바람소리에서 무한한 자유로움과 위로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바람의 존재는 내 안에 끌어안았던 깊은 상처까지 일순간 녹여 줬다.


“신작은 ‘철조망’을 마음의 장벽이나 상처의 메타포로 설정하고, ‘바람’을 매개로 내 안과 밖, 내연과 외연, 서사와 치유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제목으로 보자면 <철책 단상>을 중심으로 <바람소리>와 <기억된 미래>는 ‘시대 환경에 감정이입이 된 서사’를 바탕으로 했고, <흔적>과 <몸의 시간>은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결국 비(非)물질적인 바람소리는 현재엔 철거된 GP에서 원혼의 메아리로 되돌아와 개인적인 상흔까지 치유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신체와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강운의 신작 ‘철조망’이나 ‘신체’에 관한 시리즈의 모티브는 치유다. 작가가 덮어 두려던 상처의 감정들을 꺼내 든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내면에 침잠된 감정이 폭풍을 만나 캔버스에 쏟아지듯 흔적을 남겼다. 몰입된 상태의 감정들이 일순간 무장해제 돼 숨김없이 화면에 드러난다.


흥미로운 점은 그 형상들이 자유분방하면서도 묘한 질서감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예리했던 철조망의 끝이 무뎌져 부드러운 선으로 가라앉거나, 날카로움에 상처 입은 아픔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그라진 고요함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 과정들은 구상도 추상도 아닌 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혀 색다른 ‘강운 화법’이다.


작품의 제작 과정을 보면 강운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된다. 우선 ‘구름’ 연작들은 얼핏 극사실화처럼 보인다. 강 작가만큼 구름을 실재감 넘치게 표현한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물감과 붓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면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실제로 붓질 한 번 안 했다. 캔버스 천에 염색한 색지 혹은 한지 조각을 붙여 표현한 것이다.


불과 몇 밀리미터 조각들을 수만 장 이상 붙여야 1점을 완성할 수 있다. 붓질과 비길 수 없을 정도의 수행 과정이다. 마치 미세한 물방울이 무수하게 모여 구름이 만들어진 과정을 옮긴 듯하다. 구름 형상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적 존재감과 본질을 옮겨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물 위를 긋다, 종이 위에 담채, 101×68cm, 2011년
물 위를 긋다, 종이 위에 담채, 101×68cm, 2011년
최근의 ‘철조망’ 시리즈인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 작품들은 물감과 붓질을 사용했다. 먼저 뭘 그릴지 글을 쓴 후 이미지를 드로잉한다. 그에게 글과 드로잉은 동격이다. 드로잉 이미지에 부합된 의미와 감정에 맞는 바탕색을 결정해 칠한다. 색과 감정 역시 교감의 상징적 관계다. 바탕색이 마르기 전에 나이프, 나무젓가락 등 다양한 형태의 도구로 글을 쓰거나 철조망 형식을 긁어내 표현한다.

0-0188 물 위를 긋다, 종이 위에 담채 34×26cm, 2016년
0-0188 물 위를 긋다, 종이 위에 담채 34×26cm, 2016년
간혹 콩테나 오일스틱으로 캔버스에 드로잉한 후 큰 평붓으로 기름을 섞어 지우거나 그리기를 반복해 ‘바람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시각화한다. 결국 그에게 붓질 또한 형상을 얻고자 하는 과정보다‘미시적 존재감’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상처는 덮어 두면 곪는다. 아프더라도 헤집어야 새살이 돋는다. 강운은 화면에서의 큰 붓질로 내면에 잠들었던 상처들의 편린(片鱗)을 긁어낸다. 불편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던 감정들에 마주선 것이다. 사방을 휘저어 놓은 붓질의 추상적인 흔적은 복잡한 심정의 초상이다. 겹겹이 지우고 덮는 과정들을 통해 다시 안정감을 되찾는다. 상처받았던 마음에도 새살이 돋은 것이다. 강운에게 중요한 것은 상처가 아니다. 상처를 끌어안고 있어야만 했던 마음에 대한 치유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강운의 ‘구름’이나 ‘철조망’ 혹은 ‘바람’ 시리즈는 본질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한 뿌리인 셈이다. 불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사유와 철학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가지고 있는 비(非)가시적인 에너지가 내포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있는 비정형의 형태 때문일까? 구름 낀 하늘을 보면 원초적인 공허가 있다. 꽉 차 있으면서도 텅 비어 있고, 텅 비어 있으면서도 공허로 꽉 찬 것 같은 묘한 느낌이다. 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공허 속으로의 긴장된 침잠이 있다. 뭐랄까. 나라는 존재가 텅 빈 감정 속에서 영혼이 맑아짐으로 바뀌는 기묘한 체험들. 그러면서도 마음의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자리 잡고, 계속 감정을 자극하는 그런 감동이 아니라 ‘아!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어. 그런데 생각은 잘 안 나는데’라는 정도의 감흥이다.”


강 작가는 ‘둘러싼 외형을 벗고 내면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느냐’에 주목해 오고 있다. 캔버스에 묘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외형을 버리고 내면의 본질에 다가선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과제를 풀어내는 건 오로지 작가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강운은 일찍이 해답을 찾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명료한 해결책의 첫 선이 ‘구름’ 시리즈 론칭이었다. 점점이 흩어진 미세한 물방울을 색을 입힌 한지 조각으로 대신해 구름의 속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는 본질의 문턱을 넘어섰다.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과 감동을 어떻게 이끌어내어 표현할 것인지를 자연의 지극히 일상적인 모티브에서 찾아냈다. 구름과 바람, 둘은 강운을 ‘예술과 삶을 일체화시키는 작가’로 인도해 주고 있다.


강 작가는 평소 ‘감정을 화면에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모든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 그 글에 담긴 작가적 고민을 작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글과 그림은 한 쌍을 이루게 된다. 그와 같은 또 다른 쌍들이 모여 전시를 완성하는 것이다. 발현된 순간의 생각이 글로 옮겨지고, 글은 다시 작품으로 구체화되며, 관객은 그 작품을 통해 작가의 최초 생각을 읽어 내는 방식이다. 이것을 두고 강 작가는 “시상(視象)과 심상(心狀)으로 접근한 실재(實在)의 세계에 관한 탐구다”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초월한 ‘관계의 미학’을 보여 준다. 손으로 만져지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실재하는 그 무엇의 본질을 좇는 여정’이다.


강 작가가 요즘 많이 바빠졌다. 2019년 개인전을 가졌지만, 2020년에도 굵직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월에 시작한 신세계백화점 본관의 아트월 전시가 7개월간 이어질 예정이고, 2월엔 국가 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아 캐나다 오타와의 G101과 캐나다한국문화원의 전시에도 참여한다. 4월엔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사비나미술관에서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Serendipity)>전을 통해 구름을 처음 그리게 된 계기를 아카이빙해 전시할 예정이다.


강 작가의 작품 전시 가격은 시리즈별로 다소 차이가 나지만, 최근 어려운 경기 상황을 고려해 관계된 갤러리와 협의해 일부 조정했다. 유화 기준으로 구작에 비해 신작이 대략 20~25% 낮췄는데, 가령 10호(53×45.5cm)의 경우 400만 원/300만 원, 30호(90.9×72.7cm)는 1000만 원/800만원, 100호(130.3×162.2cm)는 2500만 원/2000만 원 등이다.


아티스트 강운은…

1966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2019년 <마음산책, 하늘>(서울 신세계갤러리 본전 본관 아트월)·<바람소리 그리고 흔적>(아트스페이스 3, 서울)·<상처, 치유>(신세계 갤러리, 부산), 2017년 (프랑수아 리비넥 갤러리, 파리), 2016 (사비나미술관, 서울), 2012년 <물, 공기, 그리고 꿈>(포스코미술관, 서울), 2005년 <순수형태-소만(小滿)>(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광주), 1998년 <내일의 작가전>(성곡미술관, 서울) 외에 18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주예총에서 주관한 ‘1999 광주예술문화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일본 모리미술관·롯폰기 T-큐브,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아트선재센터·성곡미술관·경기도미술관·대구미술관·포스코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제주도립미술관·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포항시립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삼성의료원 외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현재는 전남 광주의 스튜디오에서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팀장, 월간 아트프라이스 편집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19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 2019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