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l 참고 도서 <박동춘의 한국 차 문화사>·<한국 전통 음청류와 차 음식>]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차(茶)는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 주는 위안의 묘약이자, 희로애락을 함께한 오래 묵은 벗이었다. 현대인에게도 차는 반복되고 지친 쳇바퀴 생활 속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차 한 잔을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차를 마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쉼을 즐기고, 나를 돌아본다는 의미를 더한다. 2020년에는 우리 모두 ‘다인(茶人)’이 돼 보자. 차가 주는 고요하고 아늑한 쉼표의 시간에서 나의 향과 멋을 아로새기며.
다도의 맛과 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한옥을 배경으로 작은 못이 있는 정원이 반긴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위로 가야금 뜯는 옛 선율이 겹쳐진다. 툇마루 위를 올라서 온돌방에 앉자 뜨끈뜨끈한 온기가 언 몸을 녹인다. 그때 은은한 차향이 코끝을 스치니. 아, 옛 찻집의 향이여."
차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추운 겨울일수록 차를 사랑하는 다도인은 늘어난다. 차는 어렵고 따분하다는 기존의 인식은 차를 마시는 음용 문화와 휴식 문화가 증가하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히 건강한 삶을 영위하려는 웰빙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고 몸에도 좋은 전통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차는 식사 후나 여가에 즐겨 마시는 기호음료를 말한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차는 차나무(동백나무과)의 순이나 잎을 재료로 해서 만든 녹차나 홍차 등을 정통차로, 차나무가 아닌 다른 식물을 원료로 해서 만든 차는 대용차라고 구분한다. 보리차나 결명차, 유자차나 생강차, 약재가 들어간 한방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차(cha), 일본에서는 짜(jya), 영어로는 티(tea)라고 부른다. 찻잎을 발효하지 않은 것은 녹차이며 10~65% 정도 발효하면 우롱차, 85% 이상 완전히 발효하면 홍차, 찻잎을 후발효 한 것을 흑차라고 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선조들의 차사랑은 지금 커피가 가진 위상을 뛰어넘는다. 설 명절에 지내는 의식인 ‘차례(茶禮)’의 ‘차’가 마시는 차(茶)에서 따왔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우리 선조들은 차를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음료로 여겨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나 조상님들께 제를 올리는 제전에 반드시 올리는 제수로 삼았다. 그 역사가 무려 2000년이니 한국 문화에서 차의 위상을 짐작해 볼 만하다.
차의 역사를 정확하게 단정할 순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의 최고 지배층인 선인집단은 도를 수련할 때 차를 마시거나 부적을 태워서 그 재를 찻물에 타서 마시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사찰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발전하다가 고려에 들어오면서 차 문화의 황금기를 맞았다. 사원에 차를 만들어 바치던 ‘다촌(茶村)’이란 마을이 존재했으며, 오늘날 찻집처럼 백성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다점(茶店)’이 존재했다.
이 시기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 선생은 “타는 불에 끓인 향차, 참된 도의 맛이고(活火香茶/眞道味)”라며 ‘차 한 사발은 바로 참선의 시작’이라고 극찬했다. 차 생활에는 법도가 있고, 의식과 예절이 있기에 차가 곧 도라는 주장이었다.
이규보 선생 외에도 정약용, 김종직, 김시습, 김정희, 초의선사, 서산대사 등 역사 속 다인들이 차를 사랑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머리를 맑게 해 주고, 귀를 밝게 해 주고, 눈을 밝게 해 주고, 밥맛을 돋우고, 술을 깨게 해 주고, 잠을 적게 해 주고, 갈증을 멈춰 주고, 피로를 풀어 주고, 추위나 더위를 막아 준다’는 차의 9가지 덕이 선인들의 차 사랑을 일부 표현해 줄 뿐이다.
현재의 다인으로 살아가기
옛 선인들이 차를 즐겼듯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차를 통해 참된 도의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다기를 직접 구매해 우리거나 달여 차를 접하는 일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전통 차는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사로잡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기존의 녹차, 홍차 중심 메뉴에서 탈피해 다양한 재료가 가진 고유한 향과 맛을 섞는 블렌딩 차로 변화하며 새로운 세대의 입맛과 트렌드에 맞추고 있다.
국내 차 명인의 차만 모아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카페부터 직접 블렌딩한 차를 코스처럼 즐기는 바까지 이색 공간 또한 늘고 있다. 이에 더해 아모레퍼시픽의 차 브랜드 오설록은 최근 차 정기구독 서비스도 내놨다. ‘차(茶)의 일상화, 지금을 음미하는 습관’이라는 주제로 고객에게 매월 오설록이 추천하는 차, 다구, 소품 등을 함께 제공하는 정기구독 서비스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차를 즐기는 궁극의 목표는 맑은 정신과 고요해지는 마음”이라며 “차는 맛을 위한 음식도, 웰빙 건강식도 아닌 어떤 ‘행위’를 포함하기에 오늘날 말초적 즐거움에 지친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만성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이여, 2020년에는 일상다(茶)반사를 즐기자.
차 즐기는 방법
① 차의 양
차를 즐기는 방법은 차의 종류와 기호도에 따라 다를 수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녹차를 우려 낼 때 찻잎은 보통 물의 10분의 1 정도 양 혹은 1인 약 2~3g 정도의 양이 적당하다.
② 물의 온도
차를 우리는 적당한 물의 온도는 가루차 혹은 고급 잎 녹차의 경우 (저온) 섭씨 60~70도가 적당하며, 청차 혹은 황차의 경우는 (중온) 섭씨 70~90도, 홍차 등 발효차의 경우는 (고온) 섭씨 90~100도를 추천한다.
③ 차 우리는 시간
차를 우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녹차의 경우 약 2~3분 정도의 기다림이 적당하다. 둘째 잔부터는 첫 잔보다 짧은 30초 정도가 충분하다.
자료: 오설록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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