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디지털 시대, 온라인과 모바일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간편하게 연결돼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제대로 나를 표현하고, 그 속에서 관계 맺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big story]디지털 세상, 나와 우리의 소통법
“너희는 소통이 너무 중요해서 친밀성을 잃어버린 세대야.”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폴리티션(The Politician)>에서 중년의 조지나 호바트는 10대인 자신의 양아들 페이트 호바트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 중요한 나머지 친밀성(intimacy)을 등한시한 것이 바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비단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친밀성보다 소통을 중시하는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 낸 시대적 감각에 더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진짜 나는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진짜 나로 잘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밀레니엄 이후, 더 정확히는 ‘웹 2.0(웹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데이터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용자 참여 중심의 환경을 지칭)’에 대한 환호가 시작됐던 2004년 이후 우리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해 왔다.

‘웹 2.0’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블로그, 위키피디아나 사용자제작콘텐츠(User Created Content, UCC)는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던 전문가주의가 무너지고 일반 시민들이 그 중심에 서는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그리고 2010년에 등장한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웹이 이룩한 지식의 민주화에 이어 전 세계인을 웹 안에서 연결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야말로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만드는 ‘지구촌화’가 실제 일어난 셈이다.

친밀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이러한 연결은 몇 가지 문제를 동반한다. 우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혼성화로 인해 친밀성이 뿌리내릴 영역이 모호해지는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소셜 미디어의 공간이 공적 영역(public sphere)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도 단일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중요한 건, 사용자들이 소셜 미디어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적 영역으로 인식하면서도 이를 사적 용도로 혼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소셜 미디어에 올린 콘텐츠가 논쟁적인 사안이 됐을 때, 이를 해석하는 관점이 사람마다 달라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소셜 미디어의 연결성이 갖는 또 하나의 문제는 선(先)연결의 상태가 고착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소셜 미디어상에서 다른 사용자들과 관계를 일단 맺고 나면, 그 이후에는 우리가 다른 사용자들과의 연결을 원하지 않아도 이미 연결된 상태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연결이란 필요가 생긴 이후에 그에 대한 충족이 뒤따른다기보다 소셜 미디어의 존재 자체가 연결을 향한 사용자의 필요를 가정하고, 자동으로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이 같은 선연결의 상태는 연결됨 자체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부분이 있다.

또한 연결을 통해 친밀성을 구성하는 방식이 인정을 증여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좋아요’ 버튼을 언급할 수 있다. 사용자와 사용자 간의 친밀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현실 세계의 방식과 상당히 다르게 이루어지는데, 그 차이를 보여 주는 게 바로 ‘좋아요’ 버튼을 통한 인정의 증여다.

페이스북의 경우, ‘좋아요’ 이외에도 다른 감정 이모티콘을 통해 사용자의 반응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감정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웃겨요’, ‘슬퍼요’ 등 몇 가지 제한된 표현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 속 나

소셜 미디어에 드러낼 수 있는 나의 모습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인식도 앞서 살펴본 소셜 미디어의 연결 방식과 연관이 있다. 한때 인터넷에 떠돌았던 ‘소셜 미디어의 유형’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내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를 보여 주는 데 적합하고, 인스타그램은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다’를 보여 주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각각의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커뮤니케이션 지향적이냐’, ‘이미지 기반 또는 텍스트 기반이냐’에 따라 사용자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도 각기 달라진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소셜 미디어 내 포스팅을 사용자가 대부분 통제할 수 있지만, 포스팅이 이뤄진 이후 해당 콘텐츠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범위로까지 유통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소셜 미디어 이용을 둘러싼 여러 특성에 따라 사용자들은 자신의 모습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점점 ‘가짜로 꾸미거나 상황에 맞게 ~하는 척하기(faking & pretending)’에 능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셜 미디어가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디지털 세계의 문법이 모두에게 완벽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세계를 경험한 시간보다 아날로그 세계를 경험한 시간이 더 긴 세대라면 소셜 미디어로 인해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좋아요’를 되도록 많이 받을 수 있는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위해 진짜 자신의 모습은 오히려 뒤로 숨겨야만 하는 곤란에 빠질 수도 있다. 또는 그 어떤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되도록 밝은 모습만을 내비쳐야 하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이 모든 문제가 소셜 미디어의 형식과 내용 때문에 파생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무조건 소셜 미디어를 멀리하는 것이 능사일까. 아니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더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가능할까.

소셜 미디어라는 디지털 세계에서 진짜 나를 만나는 실질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바로 디지털 세계가 등장하기 이전에 사람 간 관계의 진정성과 주체로서의 자기 확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big story]디지털 세상, 나와 우리의 소통법
과거의 우리는 오프라인상의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통해서 자기를 이해하고 관계를 쌓아 갔다. 어느 지역에서 나고 자랐는지,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가 자신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 만나는 사람들, 소속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관계가 맺어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 또한 실제 얼굴을 알고 교류하는 이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양한 나를 만나라
오늘날 디지털 세계 안에서의 관계와 정체성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상대의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를 모르더라도 소셜 미디어상에 드러나는 모습이 그 사람을 설명하는 전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소셜 미디어에 투영된 어떤 모습이 오프라인상의 모습과 상반되더라도 둘 중 하나가 ‘가짜’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 나름대로의 진짜 모습이 있다고 인정한다.

사람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 생겨나고 있다. 과거와 오늘날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소셜 미디어 등 디지털 세계의 문법이 어렵고, 두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바는 2가지다.

우선 소셜 미디어의 세계에 입문한 이라면 여러 개의 자아를 갖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자아를 갖는다는 것은 예술과 같은 특수한 영역을 제외하고서는 경계 시 됐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당신의 여러 모습 중에 어떤 것이 진짜냐”고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보여 주는 여러 모습이 있다면 그 여러 모습들 모두가 그 삶의 일부라는 전제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제안은 소셜 미디어의 세계와 아직 친해지지 않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건 소셜 미디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에게 있어 소셜 미디어는 일종의 습관이나 의례와 같은 것이다.

사람마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서와 방법이 다른 것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소셜 미디어와 친해지는 순간이 우연히 찾아온다면 그것을 수락하면 될 뿐, 그 세계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해서 시대에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책망하거나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오랫동안 인간과 기술 환경 간 변화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을 연구해 온 셰리 터클은 자신의 저서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Reclaiming Conversa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때가 됐다. 우리는 테크놀로지와 마술 같은 연애를 했다. 그러나 뛰어난 마술이 그렇듯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면서 마술사가 보여 주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이제는 고독과 우정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되찾을 때다.”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과 로봇이 우리 일상에 가지고 온 엄청난 변화를 목도해 온 이 심리 전문가는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진보를 가능케 한 동시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그늘도 함께 만들었음을 지적한다. 분명 디지털 세계는 우리가 더 많이, 더 자주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지구상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국가나 마을과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공동체에서 벗어나 인종, 젠더, 계급 간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세계는 수많은 연결 가운데서도 여전히 고독함을 느끼게 하고, 사람들과의 연결이 모두 우정을 뜻하지 않음을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부분이 된 디지털 세계와 그 안의 우리를 냉정하게 들여다볼 때다. 디지털이라는 양가적인 세계의 질문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순간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