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올해 상속 이슈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현 정부의 대기업 및 대자산가의 탈세 및 편법 증여에 관한 대대적인 과세 강화 기조가 역력하다. 다만,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완화, 상속세 연부연납특례 대상 확대 등 커다란 당근책을 제시해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 밖에 올해 화제가 된 상속 관련 이슈들을 정리했다. 2019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미·중 무역분쟁’, ‘조국 사태’, ‘노노 재팬’ 등 나라 안팎으로 굵직한 현안들이 넘쳐 났던 데 비해 상대적으로 올해 상속 이슈는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좀 더 확대해보면 눈여겨볼 만한 유의미한 상속 이슈들이 적잖았다.
기업 승계 이슈 부각…가업상속공제 제도 손질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정부가 중소·중견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기간을 크게 완화한 점이다. 가업상속공제란, 매출액 3000억 원 미만 기업의 최대주주 자손이 상속받는 회사주식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업종·자산·고용 등 사후관리를 유지할 경우 최대 500억 원의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개편안은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기간 단축 △업종 변경 허용 범위 확대 △자산 유지 의무 완화 △고용 유지 의무 완화 △연부연납특례 대상 확대 등이 담겨 있다. 가업상속공제 제도 시 사후관리 개정안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이후 현행 10년간의 사후관리 기간을 7년으로 단축했으며, 고용 유지 조건도 10년에서 7년으로 줄였다.
고용 유지 의무 기준도 완화
중견기업의 경우 10년 동안 상속 당시 정규직 근로자 수의 120% 이상을 유지해야 했지만, 7년간 중소기업과 동일한 수준인 100%로 낮췄다. 120%의 경우 기존보다 인원을 증원해야 하기 때문에 중견기업의 인건비 부담 등을 고려해 중소기업처럼 공제 후 같은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의무 기준을 완화시킨 것이다.
또한 사후관리 기간 동안 업종 유지 요건도 완화해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 업종 변경이 허용된다. 이는 기업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종전엔 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 내 변경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같은 중분류 내라면 다른 소분류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가업상속재산의 비중이 50% 이상 시 적용되는 상속세 연부연납특례 대상과 요건이 확대된다. 현행 세법에서 일반적인 상속세는 5년 단위로 나눠 낼 수 있지만, 상속재산 중 회사 주식의 비중이 50% 미만일 때는 10년, 50% 이상일 때는 20년 분납을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상속세 연부연납특례 대상 가운데 중견기업의 경우 매출액 3000억 원 이하 기준을 삭제키로 했으며, 피상속인의 상속 기업 지분 보유 기간을 종전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피상속인이 상속 기업의 대표이사 재직 기간을 5년 또는 가업영위기간 중 30% 이상 재직할 경우 연부연납특례 대상 요건에 부합한 것으로 개정할 방침이다.
특히 상속인의 가업 종사 기간도 완화해 상속 전 2년 이상 가업 종사 기준을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상속인은 상속세 신고 기한 내 임원으로 취임하고, 2년 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 된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율촌의 한 변호사는 “지난해 LG그룹에 이어 올해는 한진그룹에서 갑작스럽게 상속 이슈가 발생하며 수천억 원에 이르는 상속세와 이에 따른 기업 승계의 어려움이 화제가 된 한 해였다”며 “올해 상속세 연부연납특례 대상 확대 등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세법 개정이 이뤄졌으나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인다.
가령, 연부연납은 세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납부 기한을 늘리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적용 대상 범위를 중소·중견기업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기업 최대주주가 지분을 상속·증여할 때 세율에 적용하는 할증률이 최대 30%에서 20%로 하향 조정된다. 이는 1993년 상속·증여세에 할증제가 도입된 지 26년 만에 세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지분율에 따른 차등 적용을 없애고, 대기업 최대주주의 주식에 적용되는 상속세 할증률(최대 30%)을 20%로 낮추기로 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할증률(최대 15%)을 0%로 바꿔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상장주식에 대해 전후 2개월의 종가 평균에 최대주주할증률을 일률적으로 가산하는 현재의 산정 방식에 대해 전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상속과의 전쟁은 ‘ing’
자산가들의 부동산 편법증여를 막으려는 정부의 의지도 올해 여실히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꼬마빌딩에 대한 상속·증여재산 평가기준 변경’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고가의 비주거용 건물인 꼬마빌딩에 대한 상속·증여재산 평가기준을 기준시가 대신 감정평가 방식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꼬마빌딩은 주택, 오피스텔, 상업용 건물을 제외한 일반 건물로, 국세청이 기준시가를 개별 고시하지 않는 소형 건물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꼬마빌딩은 대개 지상 3~5층 규모의 중소형 빌딩으로 수익형 부동산의 투자 수익률이 웬만한 금융상품의 수익률을 상회한다는 점에서 안전한 투자처이자 상속 자산으로 주목받아 왔다.
지난 8월 경제부처에 따르면 국세청은 내년부터 고가 비주거용 일반 건물의 상속·증여세를 산정할 때 감정평가를 의뢰해 건물의 시가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최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국세청이 감정평가 의뢰 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24억 원의 예산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까지 일반 건물의 ‘고가’라는 가격 기준과 대상 지역을 어떻게 정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배남수 EY한영회계법인 상증팀 이사는 “꼬마빌딩에 대한 기준시가의 시세 반영률이 60% 내외인 데 반해 감정평가 방법의 경우 시세 반영률이 80%로 올라가기 때문에 상속·증여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국세청이 확보한 예산이 24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실제 실행될 경우 평가 방식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므로 향후 대상이 확대될 경우 그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 추세 속에 꼬마빌딩처럼 감정가를 이용해 과세가액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납세자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절세 방안은 사전증여”라며 “양도세, 보유세 강화와 함께 상속·증여세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증여 가능한 부동산자산의 경우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에게 사전증여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범죄피해자 지원에 신탁 계약 활용
상속 이슈 하면 짝꿍처럼 등장하는 키워드가 ‘신탁’이다. 신탁을 통해 상속 설계부터 노후 관리, 사회적 안전망까지 그 활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눈길을 끈 신탁 이슈 중 하나를 꼽자면 이른바 ‘인천 뱀파이어 사건’을 들 수 있다.
인천 뱀파이어 친모 살인사건은 지난해 10월 모친이 뱀파이어로 보인다는 이유로 흉기로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조현병 환자인 A씨가 범죄 신고를 하던 지적장애를 가진 여동생 역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7월 열린 항소심에서 형량이 12년으로 감형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인천지방검찰청은 사고 이후 피해자 여동생이 범죄피해구조금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구조금을 활용해 피해 회복 및 안전하게 생활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사단법인 온율에는 후견인으로 선임돼 피해자의 재산 관리, 자립 생활 등의 지원을, KEB하나은행에는 구조금의 신탁과 안전한 관리를 요청했다.
이에 온율과 하나은행, 인천지검이 피해자에 대해 3년간 특정후견을 개시하고, 후견 기간 동안 범죄피해구조금 신탁 계약 체결 등을 통해 피해자가 앞으로도 자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후견인의 조력 아래 사망한 모친의 상속재산 처리와 같은 재산 관리부터 주거 마련, 직업 훈련 등 자립을 위한 준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 인천지검 검사가 서울가정법원에 특정후견심판 청구, 지난 3월 사단법인 온율을 특정후견인으로 하고, 범죄피해구조금에 대해 하나은행에 신탁하는 것을 허가하는 심판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관계자는 “국가에서 범죄피해자에게 지급되는 구조금 중 수급자의 개인적 상황으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신탁을 통해 안전한 관리를 할 수 있는 계약”이라며 “향후에도 복지 목적 등 지급 이후 투명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도 신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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