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한용섭편집장]“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 분)가 은수(이영애 분)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내뱉었던 대사입니다. 영화 개봉 이후에도 지금까지 수없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짧지만 특유의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사랑과 달리 일상다반사로 변해 온 것도 있습니다. 바로 소비죠.
2002년 한일 월드컵 무렵이었을 겁니다. 당시 저는 술을 먹고 길을 지나다 동네 단골 비디오 가게 앞에서 ‘점포 정리/비디오 처분’이라는 안내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당혹스럽게도 낡은 비디오테이프 50여 개를 비닐봉지에 담아 양 손에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마주하고 맙니다. 봉지 안에는 <대부>(1977년), <시네마 천국>(1990년), <일 포스티노>(1996년),
<지옥의 묵시록>(1998년), <양들의 침묵>(1991년)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작들이 마치 분리수거 쓰레기처럼 가득했죠.
이후 시간이 흘러 2008년에 넷플릭스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지원 전용 셋톱박스가 출시됐죠. 이제 사람들은 유료 케이블 TV나 인터넷동영상서비스(Over The Top, OTT)로 영화를 소비하는 게 더 익숙하고 편안한 듯합니다. 실제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유료 OTT의 시장규모는 지난해 424억 달러(약 49조8836억 원)에서 2023년 745억 달러(약 87조6492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라고 하니 격세지감마저 느껴지네요.
소비는 이 같은 형태뿐만 아니라 선택 기준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에서 개인적인 만족도를 우선하는 ‘가심비’가 소비 선택의 새 기준으로 부상한 것처럼 말이죠.
최근 들어서는 본인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만족도가 높은 분야에는 과감히 소비하는 ‘가치소비’의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제품 또는 기부 등의 좋은 의미를 가진 제품을 구매하는 ‘착한소비’나 가격이 비싸더라도 안전성과 신뢰성이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위안소비’ 등이 바로 그런 모습이죠.
전문가들은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미덕으로 여겨졌다면, 정보사회에서는 맞춤 생산, 최소 소비가 미덕이라고 귀띔합니다. 소유 기반의 산업사회와 공유 기반의 정보사회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치소비’는 정보사회에서 나의 신념을 표현하고, 나의 가치를 소비하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의 소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한경 머니가 11월호 빅 스토리 ‘투자생태계 바꾸는 신(新)소비풍속도’에서 꺼내고 싶은 화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을 소비합니다. 물질과 정보가 넘쳐나는 소비사회에서 ‘가치소비’는 소비에 투영된 나 자신의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소비하느냐보다 어떤 가치로 소비하느냐를 더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