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화려한 궁정, 살롱 문화의 시작. 시대가 피어낸 도자 예술의 꽃.

절대왕정,&nbsp;&nbsp;유럽 도자 예술을&nbsp;&nbsp;꽃피우다
(왼쪽부터) 스털링을 얇게 펴서 크리스털 위에 조각한 저그(아르누보). 크리스털에 스털링이 오버레이 된 접시 위에 스털링을 조각한 디저트 접시가 레이어드 돼 있다(아르누보와 아르데코). ‘클럭’이라는 작품명의 세브르 조각은 세브르 고유의 제조 기법으로 18세기 작품을 리프러덕션한 국립 세브르 뮤지엄의 작품.

‘태양왕’으로 잘 알려진 루이 14세는 73년의 긴 통치 기간 동안 바로크 예술의 정수인 베르사유 궁전을 후대에 남겼다. 이후 루이 15세가 즉위해 그 또한 5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절대왕정으로 프랑스를 다스렸다. 두 왕 모두 절대왕정을 누리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꽃피웠지만, 한편으로 엄격한 궁정생활 속에서의 자유와 아늑함은 항상 그들의 갈망이 됐다.

루이 15세는 18세기 초부터 1775년까지 재위했으니 18세기 대부분의 기간을 통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는 중국의 문화가 곧 고급 문화이고 상류 계층의 문화였던 시누아즈리의 시대였다.

유럽의 모든 나라의 왕족과 귀족들은 저마다 중국 문화에 흠뻑 빠져 청화백자 찻잔에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던 차를 따라 마셨다. 그리고 값비싼 수입품이었던 동양의 도자기로 티룸을 꾸미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산 비단은 궁정과 귀족들의 응접실을 꾸미는 데 아낌없이 사용됐고, 커튼, 벽지, 의자들도 화려하게 장식됐다. 바로 ‘살롱 문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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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털링이 정교하게 오버레이된 큰 사이즈의 화병(아르누보).

(아래)세브르 고유의 제조 기법인 석영과 장석을 황금비율로 혼합해서 제작한 국립 세브르 뮤지엄의 세브르 조각 작품(18세기 작품을 리프러덕션).


로코코의 화려한 자기 예술


살롱 문화의 한가운데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퐁파두르가 있다. 흔히들 그녀를 일컬어 ‘무관의 제왕’이라고 한다. 그녀는 1745년부터 폐결핵으로 죽는 1764년까지 거의 20년간 절대왕정기 프랑스의 막후 세력가로 군림했다. 예술을 사랑하고 박학다식했던 그녀는 궁정을 아름다운 도자기와 그림, 그리고 동양에서 수입해 온 칠기가구와 비단벽지로 장식했다.

당시 도자기는 모든 상류층이 애용하던 신분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중국 도자기와 같은 얇고 단단한 도자기를 만들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즈음에 1709년 마이센 지방에서 중국 자기와 같은 수준인 유럽 최초의 경성자기를 만드는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전까지 프랑스는 그들 특유의 예술적인 감각으로 만들어낸 연질 도자기인 파이앙스로 유럽의 도자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도자기 애호가였던 퐁파두르는 세브르 도자기라는 프랑스 고유의 도자기가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녀는 루이 15세를 설득해 연성자기 파이앙스를 생산하는 뱅센 가마를 자기 집과 가까운 세브르로 옮겼다. 그 후 연구·개발 비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1759년엔 세브르 가마를 왕실 직속가마로 승격시켰다. 이후 리모주 부근의 모트비엔 지방에서 경성자기 제조에 필수적인 고령토 층이 발견되면서, 세브르는 파이앙스가 아닌 중국 자기와 같은 고급 자기를 개발하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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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레드에 앰버색이 가미된 아르누보 시대의 화병.

(아래)황금빛이 아름다운 아르누보 시대의 화병.

세브르 도자기는 초기에 마이센을 모방하다가 곧 그 수준을 뛰어넘게 되고 로코코의 화려한 자기를 빚을 수 있게 됐다. 지나치게 붉지 않으면서 희미하거나 연하지도 않은 분홍빛 바탕 색깔인 일명 퐁파두르 장밋빛과 여기에 꽃 장식이나 전원 풍경, 풍속화 등을 그려 넣어 화려하기 그지없는 세브르 도자기를 완성했다. 청색과 녹색, 골드 빛의 오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청금색은 세브르 도자기만의 특징이다. 처음에는 중국의 청화백자와 마이센을 흉내 냈던 세브르 도자기는 점차 독특한 색과 섬세한 세부 표현으로 유럽 제일의 하이엔드 도자기로 발전하게 된다.

세브르 도자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금채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퐁파두르 부인의 도자기에 대한 열정의 산물이었다. 마늘 즙을 이용해서 금가루를 착색시키는 금채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세브르를 대표하는 특징이 됐다. 중국이나 일본 자기의 자랑거리였던 금채 기술이 세브르의 섬세한 사실화와 함께 결합해 아름답게 완성되자 왕실에서도 동양의 자기 대신 세브르 도자기를 쓰게 됐다.

이처럼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세브르 가마는 최고급 재료와 고급 인력을 바탕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1800년대부터는 화려한 문양과 다채로운 색채로 유럽을 대표하는 고급 도자기로 거듭나게 된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 화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수아 부셰 등 당대 유명 화가들이 세브르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또한 세브르는 안료를 연구하는 화학연구실을 두어 특유의 다양한 색채를 개발했고, 지속적인 연구의 결실로 100가지 정도의 세브르 고유의 색을 다양하고 화려하게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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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리스털에 스털링이 조각된 유려한 곡선의 저그(아르누보).

(아래)스털링으로 입구 부분을 장식한 크리스털 화병(아르데코).

하이엔드 세브르 도자기의 미학

세브르 도자기의 대부분은 식기, 화병 혹은 장식물이 대부분이지만, 유약을 칠하지 않은 백색 자기로 된 조각도 훌륭한 예술적 미학을 선보인다. 독일 마이센의 화려한 중국식 도자기와는 반대로 세브르의 백색 자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음으로써 조형적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했다.

‘비스퀴’로 불린 대리석 느낌의 이 도자기는 유럽의 도자 애호가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도예 작업이 장인이 손으로 직접 빚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반해 세브르의 백색 조각은 석고 틀을 이용해서 같은 형태의 작품을 복제하는 방법을 쓴다.

세브르 도자기는 나폴레옹이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권력을 위해 예술을 사용했고, 정복한 여러 나라에서도 휴대하기 편하게, 단단하고 화려하게 만들도록 주문했다. 세브르는 지난 270여 년간 프랑스 왕실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전통 기법과 재료 그대로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는 유럽 최고의 도자 명가로서 아름다운 도자 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