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이승재·비노파라다이스 제공 l 참고 서적 <올 댓 와인>] 사람 많고 소란한 것은 어쩐지 내 적성이 아니라면, 보다 은밀하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더 깊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특별한 와인 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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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기사단의 전문 숍 더젤


‘샤블리’, ‘부르고뉴’ 등 프랑스 소믈리에 기사작위를 두 차례나 수여받은 이제춘 대표가 운영하는 한국 최초의 와인 숍이자 다이닝 공간이다. 1992년 국내 최초 와인 전문 숍으로 문을 열었으며 와인바 멤버십 클럽을 오픈해 VIP들의 사교클럽으로 확장됐다. 이후 2012년 멤버 외 일반 고객에게도 문을 열면서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와인 바로 탈바꿈하며 27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지인 타임에 선정됐으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다녀갔다. 수많은 와인바 중 더젤이 특별한 이유는 이제춘 대표에게 해답이 있다. 이 대표는 1969년 독일에서 와인을 공부한 후 “숙성 재료를 선호하는 한국인에게 와인이 제격”이라는 판단하에 1986년 귀국, 최초의 와인숍 오픈을 준비했다. 이후 국내에 와인을 널리 알린 공을 인정받아 2005년 샤블리 와인 기사단과 2006년 부르고뉴 기사단 작위를 수여받았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에 위치해 통유리 너머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관경도 더젤만이 가지는 특별한 매력이다. 5층 야외 테라스에서 남산 전경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지하공간에는 동굴과 같은 와인셀러에 사교클럽을 위한 은밀한 공간 또한 마련돼 있다. 그날의 단 한 팀만을 위한 맞춤형 공간이다. 비트코인 결제도 가능해 외국인이 즐겨 찾는 와인 바로도 유명하다.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67 02-797-6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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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춘 더젤 대표
“와인은 좋은 사람과 있을 때 진가발휘”


대한민국에서 와인을 가장 많이 마셔본 사람. 이제춘 더젤 대표는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 “제가 아마 가장 많이 마셔봤을 거예요.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와인을 깨우치고, 스위스를 오갔어요. 스위스가 와인 수요가 많은 나라다 보니, 전 세계 고급 와인은 스위스에 다 있거든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시음회에서 정말 좋은 와인들을 많이 마셨어요.”

이 대표는 와인을 배우며 와인이 한국인에게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김치나 장 같은 한국 음식 특유의 ‘숙성’이 와인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와인을 제일 빨리 배워요. 전 그 원인이 숙성 재료를 선호해 와인을 마실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이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와인을 고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와인 추천 방법 역시 간단명료하다. 알코올 도수를 확인하는 것. “진한 와인을 좋아한다면 14도 이상을 고르세요. 그러면 원하는 와인 맛이 나올 겁니다. 반대로 가벼운 걸 하고 싶다면 14도 아래로, 12.5도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선택하세요. 국적과 산지, 양조자 등은 차후에 선택하면 됩니다.”

이 대표는 와인은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생애 가장 특별한 날에 와인과 함께하세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해의 와인을 주문, 수십여 년이 흐른 후 자식의 결혼식에서 와인을 개봉하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좋은 와인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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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와인 저장고
비노파라다이스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 위치한 와인 저장고. 복합 리조트 분야에서 명성을 자랑하는 파라다이스그룹이 50여 년간 전 세계 VIP들을 상대로 쌓은 경험을 투영해 설립한 국내 최대 와인 저장고다. 세계 곳곳의 보석 같은 와인을 찾아내고, 살아 숨 쉬는 와인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어 와인 산지가 창조한 황홀한 맛, 그 본연의 기쁨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비노파라다이스가 특별한 이유는 약 4000㎡ 규모로 거대한 와인 저장고가 산비탈 본래의 지형과 수목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지어졌다는 데 있다. 엘(L) 자 구조로 산을 깎고, 1년여의 공사를 거쳐 탄생한 비노파라다이스는 하나의 층처럼 보이지만, 실은 2층 건물이다. 마치 샤토(프랑스어로 성, 대저택을 의미하는 말로 보르도 지방에서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 이름)를 재현한 듯한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약 10만 병을 동시 보관할 수 있는 와인 저장고는 산지 그대로의 맛이 보전될 수 있도록 최적의 온도와 습도 조절 시스템을 갖췄다. 온도 영상 12~18도, 습도 40~70%로 적정 유지돼 와인 저장고에 보관된다. 자타공인 최고의 부르고뉴 와인 리스트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구대륙 명산지 와인과 미국, 호주, 칠레 등 신세계 와인까지 다채로운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비노파라다이스는 VIP 멤버십 서비스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비밀스런 공간이다. 대신 파라다이스호텔을 비롯해 국내 유명 레스토랑이나 와인숍을 통해 비노파라다이스의 라벨이 붙은 와인을 만날 수 있다.

비노파라다이스가 꼽은
가을 와인 양대 산맥


황금 포도밭과 천재 양조자의 만남
라운드 폰드 카베르네 소비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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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와인의 심장, 미국 나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테이스트를 구현하는 지역 중 한 곳이다. 가을뿐 아니라 사시사철 사랑받고 있으나 그래도 찬바람이 불 때 풍부한 보디감과 매끄러우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타닌과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선사하는 미국 와인은 특별히 생각나는 와인이다. 첫 맛은 과일의 싱그러운 산미를 보여주며 커피, 다크초콜릿의 아로마가 층층이 다가온다.

왕의 와인이자, 와인의 왕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 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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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면 레드 와인을 많이 떠올리는데, 그중 공식처럼 떠올리는 품종이 네비올로(Nebbiolo)다. 네비올로는 가을 안개를 일컫는 네비아(nebbia)에서 명칭을 따왔을 만큼 가을을 상징하는 포도로 일컬어진다. 이 네비올로 와인 중 가장 유명한 지역이 바롤로(Barolo)로 ‘와인의 왕’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하다. 100% 네비올로로 진한 검붉은 보랏빛 컬러가 두드러지며 농도가 진한 장미향과 말린 한약에서 쓰이는 달짝지근한 감초향이 더해진다. 입안을 꽉 조이는 타닌이 두드러지며, 목 넘김 후 향과 맛이 길게 지속되는 것이 특징.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