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3 초고령사회의 상속 플랜, 신탁 따라잡기
[한경 머니 = 정리 공인호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신탁(信託)이 진화하고 있다. 상속 설계부터 노후 관리, 사회적 안전망까지 그 활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가 신탁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한경 머니가 지난 6월 26일 주최한 상속포럼 3강에서는 국내 최고의 신탁 전문가로 손꼽히는 배정식 KEB하나은행 신탁부 리빙트러스트(Living Trust) 센터장이 ‘신탁 따라잡기’를 주제로 강단에 올랐다. 배 센터장은 2000년대 초반 신탁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부터 신탁 상품 도입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지난 2008년 첫 출시된 유언대용신탁부터 신탁을 활용한 자산관리신탁, 장애인, 노후케어, 성년후견인 신탁 등 다양한 상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지난 2010년 신탁 도입 초창기에만 해도 손님들의 상담 요청 건수는 미미한 수준이었다”며 “하지만 지난해 대면 상담만 330건 이상, KEB하나은행이 신탁계약을 통해 관리하는 자금만 1조9000억 원가량에 육박한다”고 소개했다. 현재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는 배 센터장의 총괄 아래에 은행 프라이빗뱅커(PB)와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부동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3개 팀(12명)이 활동하고 있다. 상속 설계부터 노후 관리까지
지금의 신탁 상품은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데 상속 설계 측면에서도 유용한 툴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자산의 경우 ‘유언대용신탁’ 및 ‘수익자연속신탁’을 통해 생전 및 사후 신탁 재산의 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다. 위탁자(피상속인)가 자신의 재산을 수탁자(은행)에게 맡기면, 수탁자는 신탁된 재산을 관리, 운용하고 창출된 이익을 수익자(상속인)에게 전달하는 형태다.
배 센터장은 “일본의 경우 초고령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 인구의 자산관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며 “유언장의 경우 본인 사망 직후 수증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가지만, 신탁은 나의 노후도 관리하면서 미성년 손자녀, 장애인 자녀가 있는 경우 연속성 있는 재산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미성년 손자녀의 경우 상속 대상이 되기 어렵지만, 신탁의 경우 본인 사망 이후 일시 지급이나 분할 지급, 조건부 지급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신탁계약을 맺을 수 있다. 현재 일본은 교육비 목적의 증여에 대해 일정 수준의 세제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그는 또 “최근 1인 가구가 급격히 늘면서 고령 미혼 여성들의 상담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통상 이들의 경우 요양원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노후 관리와 함께 남은 재산은 사회에 기부하거나 친인척들에게 상속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유언장의 경우 사망과 동시에 본인 소유 재산의 지급이 즉시 동결되지만, 신탁은 생전에 상속자를 지정해 둔 만큼 지급 동결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장례비 등 사망 이후 소요되는 비용을 신탁 자산에서 직접 충당할 수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배 센터장은 가족들 간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신탁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최근 상담을 요청하는 손님의 상당수가 80세 이상 고령인데, 유언장 없이 세상을 등지게 되면 형제들 간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커진다”며 “신탁의 경우 공신력 있는 제3자, 즉 은행이 상속을 집행하기 때문에 갈등 구조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절세도 중요하지만 형제들 간 분쟁을 최소화하는 게 상속 설계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부동산 자산 역시 부동산관리신탁을 통해 토지와 건물 관리는 물론 상속 플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배 센터장은 “지난 2013년 3개 층짜리 서울 역삼동 S건물의 경우 토지가 대비 임대수익이 턱없이 낮았는데 관리신탁을 통해 제휴 건설사와 함께 신축을 진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은행은 신축 이후 수익 타당성과 함께 손님의 원활한 상속을 위해 세금 문제까지 면밀히 검토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탁의 활용 범위는 비단 자산가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복지금융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배 센터장은 “그룹홈 발달장애인을 지원해줘야 할 시설장이 기초수급자들의 자금을 유용한 사례가 있었는데 신탁은 이를 막아주는 이중 잠금장치 역할을 한다”며 “과거 세월호 사고에서는 홀로 남은 아이를 위해 법원이 신탁관리를 명령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신탁은 자산 규모는 물론 계층, 연령에 관계없이 안심을 제공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향후 우리 생활 속에 더욱 활발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Profile 배정식 센터장은…
한양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대 금융법무과정(신탁법),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친족상속법), 건국대 부동산대학원(금융투자전공 10기)을 나왔다. 지난 2010년 ‘하나 리빙트러스트’, 2013년 ‘하나 케어 트러스트’, 이듬해 ‘하나부동산 트러스트’를, 2016년에는 성년후견인신탁, 치매안심신탁, 양육비지원신탁 출시를 진두지휘했다. 저서로는 <상속신탁_재산 분쟁 없는 희망상속 플랜>, <신탁의 시대가 온다_100세 시대의 메가트렌드>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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