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섹스로봇은 우리 인간들의 미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혹자는 섹스로봇은 섹스토이일 뿐이라고 폄하하지만 일부 로봇학자들은 “인간을 모방한 에로틱한 안드로이드(섹스로봇)가 AI 살인로봇보다 더 시급한 문제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얼마 전 우연히 한국의 유명한 로봇박사 데니스 홍과의 대담 방송을 보게 됐다. 데니스 홍은 그가 제작한 로봇을 몇 종류 가지고 나와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갔다. 그런데 시종 침착하게 대담을 하던 점잖은 진행자가 데니스 홍의 명령(?)을 듣고 로봇이 움직이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무릎 높이의 작고 앙증맞은, 사람을 닮은 로봇은 홍 박사의 명령에 반응해 걷고,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등의 행동을 보여줬는데, 그 로봇을 보며 진행자는 마치 소년처럼 즐거워하고, 심지어 “어~잘했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TV 광고에서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스피커가 혼자 쓸쓸히 생일을 맞은 어르신을 신나는 음악으로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봇, 그것도 AI를 탑재한 로봇은 우리의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AI라는 기술력만을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달라질 삶과 법률, 체계, 가치관, 사회윤리 등에 대해 더욱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영국, 미국, 독일, 중국 등에서 사람과의 성행위를 목표로 만들어지고,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판되고 있는 섹스로봇은 우리 인간들의 미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매끈한 실리콘 피부에 마네킹 같은 얼굴을 하고, 구부러지는 관절로 온갖 체위를 할 수 있으며,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질과 오르가슴을 느끼는 듯한 기능을 가진 게 전부(?)이지만 점점 로봇들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정교해지고 있다.
◆AI 섹스로봇이 사람 노릇을 대체할까
혹자는 말한다. “섹스로봇은 그저 섹스토이일 뿐이지, 사람과의 소통을 방해하거나 정서적인 교류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은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어려서 무생물인 담요나 인형에게 인격화를 하고 말을 걸고, 끌고 다니고, 쓰다듬고, 껴안고 잠을 자면서 우리는 위안을 받고 사랑을 나눈 경험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발달단계 중 어린 시절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어색함을 극복하기만 하면, 그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로봇을 사람처럼 대하게 될 것이다.
처음의 어색함은 TV 뉴스를 진행하거나, 기상을 알려주고, 화보에 등장하는 로봇의 얼굴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익숙함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AI 섹스로봇은 단순히 ‘그런 척’ 하는 로봇과는 수준이 다르다. 학습하고, 변화되는 AI의 특성은 얼마나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줄지 사실 상상이 안 간다.
실제로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그저 말랑한 고무 인형이기만 한 리얼돌과 살겠다고 가족을 멀리한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중국의 정보기술(IT)업계 엔지니어 정지아지아(32) 씨는 AI 로봇을 만들어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여자 사람과의 관계로 힘들었지만, 이제는 외모, 재산, 성격 등 인간관계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섹스로봇을 향유할 수 있는 건 남자들만이 아니다. 미국의 섹스로봇 제작 업체의 최고경영자(CEO) 맷 맥뮬런은 남성 섹스로봇에 대해 여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남성 섹스로봇 ‘헨리’의 양산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는 남자와 달리 여자들이 원하는 섹스로봇은 말 상대라 하지만, 여자의 성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자나 여자나 섹스의 시작과 끝은 감각만이 아니기 때문이고,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자 할 것이다. 헨리가 비록 그의 사용자에게 시를 읊어주고, 농담을 건넬 수 있다 해도 결국 이 또한 목적은 섹스이고 소통이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코드화하고, AI에게 감정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 곁의 섹스로봇은 사람이 느끼는 기쁨, 즐거움, 화냄 등의 단순한 감정에서 질투, 사랑, 연민 같은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사람 노릇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섹스로봇은 주된 기능이 섹스지만 섹스를 포함한 다목적인 로봇이,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사람을 닮은 로봇이 개발되고 시판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만간 섹스로봇이라는 B급 기능에서 파트너의 기능, 혹은 비서의 기능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을 구입하고 이용하는 데 갈등이나 망설임, 남들의 비난에서 가벼워질 테고). 이 예쁘거나 멋진 이성의 모습을 하고 로봇들은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도 하고, 이메일이나 서류를 받고, 발송하는 비서의 기능부터 무거운 것을 들어주기도 하고, 대화의 상대도 돼주며, 밤에는 잠자리도 같이 하는 파트너의 자리를 꿰어 찰 것이다.
얼마 전 사람과 꼭 닮고, 감정조차 프로그래밍된 AI 로봇 영화 <조(ZOE)>를 보았다. 매력적이고, 이성적이며, 똑똑하고, 유쾌하고 다정한 그녀는 자신이 로봇인지 모르고 살다 자신을 만든 제작자 콜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다. 이에 당황한 콜은 그녀가 자신이 만든 로봇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관찰하는 입장에서 그녀와 가까워지지만 점점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다 조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부서진(?) 조의 몸을 수리(?)하면서 콜은 그녀가 로봇이라는 걸 깨닫고, 멀어진다. 그러나 그녀와의 실연으로 진짜 사람과 이별했을 때와 똑같이 상실감과 슬픔, 절망을 맛보게 된다. 조는 심지어 자의식을 가진 로봇이라 그녀도 사람과 똑같이 실연의 아픔을 겪고 방황한다. 다시 만난 조와 콜은 로봇과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서 둘이 가진 ‘사랑이라는 진실한 감정’을 인정하고 사랑을 확인한다는 이야기인데, 보고 나서 마음이 참 복잡해졌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로봇학회에서는 “인간을 모방한 에로틱한 안드로이드(섹스로봇)가 전쟁에서 대량 살상을 저지르는 AI 살인로봇보다 더 시급한 문제다”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람이 인격화한 로봇과 사랑과 섹스를 나누게 되면,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무너질 것이다. 섹스의 대체제, 섹스토이의 수준에서 사랑의 대상, 대안으로 격상돼 다가올 AI 로봇을 맞을 준비가 당신은 돼 있는가. 그래도 혼자라서 외로운 것보다 나을까.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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