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오동훈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빨간 말에 올라탄 돈키호테, 창 대신 거대한 빨대를 들었다. 온몸을 들썩이는 품세가 한껏 들떠 있는 기분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모양새가 영 불안하다. 땅에 꽂아 세운 스트로 창이 아니었다면, 금방이라도 공중에 떠오를 듯 가벼워 보인다. 마치 뭉글뭉글 거품으로 빚은 듯하다. 조각가 오동훈의 ‘버블맨(Bubble Man)’ 시리즈 중 <신인류-돈키호테> 작품이다.
옛날의 돈키호테가 풍차에 맞섰던 것처럼, 오동훈의 돈키호테는 경주 예술의전당에 마주섰다. 올해 경주 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에 초대돼 제작된 작품이다. 오동훈 조각가는 고향인 경주에 터를 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신인류-돈키호테> 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신라시대 기마상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신라의 기마상이 여유로움과 호젓함을 동시에 지녔다면, 돈키호테 역시 인생의 허무함과 도전 의지를 표상한다. 겉으론 어리석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꿈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열정의 소중함은 소설 <돈키호테>의 빼놓을 수 없는 교훈이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도시 경주의 상징으로 돈키호테 모티브를 새롭게 해석한 점이 더욱 돋보인다. 영원한 꿈의 도시 경주와 딱 안성맞춤이다.
오 작가의 <신인류-돈키호테>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빨대다. 빨대는 비누 거품을 내는 아주 긴요한 도구다. 아마도 꿈속을 헤매듯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좇는 돈키호테 캐릭터를 비누 거품에 비유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버블맨’ 시리즈의 탄생 비화와도 관련이 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며 불현듯 작품의 아이디어를 포착했다. 아이의 입김으로 빨대에서 빠져나온 비누 거품은 바람을 만나 예기치 않은 형태의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창조적 영감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인생은 꿈같은 무대 위 한바탕 연극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터져 없어지는 거품처럼, 인생은 한낱 꿈의 한 조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정해진 무대에서의 주인공 놀이, 그것은 나의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나, 오동훈 작품의 은유적 표현도 그 연장선이다. 같은 배우가 배역의 성격에 따라 자유자재로 제 몸을 바꿔 나가듯, 주어진 환경에 따라 쉼 없이 새롭게 적응하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오 작가는 평소 친근한 이미지의 형상들을 동적인 느낌으로 즐겨 표현한다. 아주 선명한 색채 감각을 자랑하는 작품의 표면 재질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 도장을 한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도색된 자동차의 재질과 같다고 보면 된다. 특히 최대한 부드러운 느낌을 연출하려고 애쓴다. 흔히 ‘미러(mirror) 처리’라고 불리는 마감 처리로 거울 표면처럼 마무리하는 견고함이 놀랍다. 이러한 치밀함은 기획 단계부터 발휘된다. 기본 아이디어 스케치가 나오면, 곧바로 컴퓨터 3차원(3D) 프로그램으로 구체적인 세부 작업에 들어간다. 그 대상은 사람, 강아지, 말 등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부터 오토바이처럼 다양한 대상을 망라한다. “비눗방울이 허공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의 인생사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것들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데자부이고, 저만큼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신기루들이며, 현실과 비현실이나 실상과 허상의 경계에서 출몰한 형상들입니다. 입체 조형물이 사람이나 동물을 닮아 갈수록 직선과 각보다는 곡선을 닮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재료를 절단하고 용접하는 제작 과정에서 다소 거칠어질 수 있겠으나, 숨겨진 노력으로 물성 자체의 내재된 고유한 속성을 둥글둥글하게 표현합니다. 이는 보는 사람에게 친근함과 휴머니즘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것이든 그의 비눗방울을 만나면 전혀 색다른 은유적 주인공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비현실적 외형의 형태감이 압권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라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처럼 오 작가는 ‘형태의 완결성’에 집중한다. 처음은 3D 프로그램을 이용한 아이디어 스케치와 정확한 도면 아래 각각의 구성 요소들을 주문 제작하고, 최종 연결과 조립은 용접으로 이어 붙인 후 연마와 광택 과정을 거쳐 도장 순서로 마무리한다. 작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할 자신만의 작품 제작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완비한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정을 그가 직접 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 기질은 남다른 프로 근성이자 경쟁력이다.
오 작가의 작품이 지닌 두드러진 특성을 꼽아보라면, ‘구(球), 버블, 모듈화, 확장성, 컬러’ 등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크기의 구(球)를 활용해 기본적인 도형을 형성하고 있으며, 구의 집적 혹은 이완의 공간 균형미를 적절하게 조율해 특유의 동세를 만들어낸다. 모티브로 삼은 비눗방울이 지닌 가벼움이나 부풀려진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감성적인 율동감도 연출된다. 크고 작은 구체들이 서로 이어지거나 확장돼 제각각의 형상이 완성된다. 마지막 단계의 색채 과정은 최대한 간결성과 단순미를 추구한다. 주로 단색으로 몸체를 구성하되, 머리나 팔과 다리 등에 다른 색감으로 포인트를 주어 긴장감과 집중적인 비주얼을 이끌어낸다.
금속성이 지닌 재질감은 다소 차갑다는 첫인상을 전한다. 구상적인 성격의 작품임에도 과감한 은유적 표현으로 감상자 입장에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둥글둥글한 방울 형태들의 조합이 마치 모든 생명들의 유전자 혹은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오 작가만의 이색적인 작품 특성들로 인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그의 고향마을 입구에도 대형 작품이 1점 세워졌다. 시골 동네에 보기 드문 이 조형물은 마을 사람들에겐 색다르고 즐거운 볼거리가 됐다. 어릴 적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에 또 다른 꿈을 샘솟게 한 셈이다.
누가 뭐래도 오 작가의 작품이 지닌 1순위 매력은 꿈의 창고라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꿈은 희망이다. 지난 기억과 추억에 잠들었던 설레는 꿈을 깨워준다. 삶의 또 다른 생동감을 자아내는 버블맨의 행차를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미술 작품은 어렵고 부담스럽다는 경직된 선입견을 일순간에 무장 해제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많은 기획전과 아트페어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반기 11월 서울 청담동 갤러리PICI에서도 개인전이 잡혀 있다. 참고로 작품 가격은 소품(사방100cm 미만)의 경우 6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다.
아티스트 오동훈은…
1974년생.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8회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4 제천시 야외조각공모 대상, 2002 홍익 야외조각대전 특선, 2001 대학원생조각대전 장려상 등을 수상했다. 참여한 주요 기획단체전은 2019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경주 예술의전당), 2018~2019 홍콩하버아트페어(홍콩 마르코폴로 호텔), 2018 서울시립대 개교 100주년 기념전, 2017 제7회 서울국제조각페스타(서울 예술의전당), 2015~2016 서울 아트쇼(서울 코엑스), 2015 대만 카오슝아트페어 등 100여 회다. 또한 작품은 미술은행(국립현대미술관), 한국수력원자력, 모하창작스튜디오, 포항시립미술관, 대만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호텔, 대부도 유리섬 미술관, 옥천 우정힐스CC, 합천 아델스코트CC, 분당율동공원, 제천 만남의 광장, 보령미술관, 낙산공원, 브런치 카페 벤자마스 등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2012년부터는 현재까지 경주의 작업실에서 한국조각가협회,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시립조각회, 성남조각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팀장, 월간 아트프라이스 편집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대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19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 2019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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