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나만의 보물섬을 찾아서
[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도움말 조형진 해양 전문 기술행정사(섬 전문 꿈에부동산 대표)] ‘방 없음’, ‘표 매진’, ‘싯가’…. 땡볕더위를 피해 피서지를 찾았다가, 외려 인산인해에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그때 무심코 드는 생각. “아! 내 섬 하나 있었으면….”
나만의 왕국, 나래를 펴는 사람들을 위하여.
[big story] 나만의 보물섬을 찾아서
‘49.90%.’ 국내 무인도의 사유지 비중이다. 국가가 집계한 총 2583개의 무인도서 중 1289개가 사유지로 등록돼 있다. 나머지는 국유지(44.72%), 공유지(7.70%), 기타(1.28%), 법인(0.39%), 군유지(0.19%) 순이다. 이 중 법인(10개)까지 더하면 사유지가 50.29%로, 절반을 넘는다. 나라도, 지방자치단체도, 군도 아닌 이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심코 산 외딴섬,
100억 창출하는 보물섬으로


경남 거제시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외도. 섬 전체가 하나의 자연박물관으로, 유명 드라마에 장소가 노출되면서 중국인, 일본인 등 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국제적 명소가 됐다. 6월 20일 기준으로 이 섬의 총 누적 방문객은 2000만 명, 연간 방문객 100만 명이다.

이 유명 섬의 주인은 국가도, 지자체도, 기업도 아닌 일반인 부부 고(故) 이창호 씨와 최호숙 씨다. 이들은 지난 1969년 변방의 작은 외딴섬에 지나지 않았던 외도를 우연한 기회에 취득했다. 지금은 작고한 이 씨가 낚시를 워낙 좋아하니, 섬에 눌러앉아 감귤농장을 일구고 돼지를 사육해 소일거리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무인도에서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다가 1994년, 식물원인 자연농원을 만들었다. 연간 방문객 100만을 거느린 해상정원, 외도보타니아의 시작이다.

이 섬을 개발·관리하는 주식회사 외도보타니아의 2018년 연간 매출액은 85억6697만3873원이다. 2017년에는 113억 원을 넘겼다. “외도가 거제도를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무도 찾지 않은 외딴섬이 뜯어보니 보물섬이었던 셈이다.

보물섬을 찾아 항해를 한 사람들이 이들뿐일까. 해외에서는 부호와 유명 연예인들이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였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이 섬테크의 대표주자다. 브랜슨 회장은 1978년 카리브해의 넥커섬을 23만8000달러에 사들여 별장형 휴양 리조트로 꾸몄다. 이 섬은 현재 가치가 1억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오라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엘리슨은 하와이의 라나이섬을 구입했다. 매매가는 무려 5억~6억 달러(약 5760억~ 6912억 원)로 추정, 현재 부호들이 소유한 개인 섬 중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진다. 엘리슨 CEO는 이 섬을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1980~1990년대에는 소위 ‘묻지 마 투자’가 유행할 정도로 섬테크가 활발했다. 개발만 되면 몇 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입소문에 너도나도 섬 투자에 열을 올렸다. 얼마나 값이 뛰었나 하니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당시의 지가를 뛰어넘지 못하는 섬이 부지기수일 정도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S프로젝트, J프로젝트 등 서남해안 일대 섬 지역을 대형 레저관광단지로 개발하는 대형 호재가 터지면서 섬 투자가 다시금 관심을 샀다. 당시 재계 거물들도 섬 매매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4년 12월 전남 여수시 인근 무인도인 모개도를 샀으며, 이재현 CJ그룹 회장 일가도 개인 회사를 통해 인천 굴업도와 소굴업도 등을 매입했다.

당시의 열풍에 비하면 현재 섬 매매 수요는 크게 늘지 않았다. 다만 투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개발 호재로 인한 시세차익이 주였다면, 지금은 MBN 교양 <나는 자연인이다>, 채널A 예능<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등 자연친화적인 TV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힐링의 차원에서 섬 매입을 희망한다.

태곳적 신비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무인도는 더할 나위 없는 지상낙원이기 때문이다. 섬 중개 전문 꿈에부동산에 따르면 사유지로서 섬을 구입하는 목적의 50%가 휴식처를 찾기 위함이다. 나머지 30%가 캠핑·해양레저 용도, 15%가 특수작물 재배, 5% 정도가 연수원이나 종교단체의 설립 목적이다.
[big story] 나만의 보물섬을 찾아서
접근성·개발 규제 꼼꼼히 살펴야
드론·개인용 해저담수화 등 호재도


하지만 보물섬을 찾다가 풍랑에 스러진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호기롭게 섬 매매에 도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섬은 대도시나 육지보다 훨씬 더 많은 개발 규제에 묶여 있다.
무인도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관리유형별 분류가 정해져 있다. 보전 가치가 매우 높아 출입이 금지된 ‘절대 보전’ 무인도(전체 무인도에서 차지하는 비중 5.6%), 보전 가치가 높아 일시적 출입 제한이 필요한 ‘준보전’ 무인도(23.6%),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출입 및 이용(낚시, 야영 등)이 가능한 ‘이용 가능’ 무인도(47.1%), 일정한 개발을 허용하는 ‘개발 가능’ 무인도(11.1%) 등이다.

자칫 미관과 경관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관리유형 절대 보전의 무인도를 매수했다간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출입을 못하는 낭패를 보게 된다. 이에 과거보다 더욱 세밀하게 법률 검토를 해야 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다음에 고려해야 할 것은 접근성이다. 육지와의 거리가 5km를 넘는 섬만 962개(37.2%), 이 중 10km가 넘는 섬은 602개(23.3%)다. 정부가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교 건설을 진행할 경우 인근 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지만, 이마저도 10km를 넘으면 지가 상승에 큰 의미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기, 물 등 생활 인프라의 유무도 중요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섬의 가장 큰 문제는 접근성과 생활 인프라의 유무”라며 “대도시나 육지에서의 투자보다 더 꼼꼼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로빈슨 크루소가 되기를 포기할쏘냐. 지금까지는 인프라의 부재가 개인의 섬 수요를 저해하는 요소였다면, 앞으로는 개인이 쉽게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해수담수화 기술의 고도화로 기존 생활 인프라 없이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대가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조형진 해양 전문 기술행정사이자 섬 전문 꿈에부동산 대표는 “무인도 투자 시 수도 인프라가 주요 기준이 된 것도 이젠 옛말”이라며 “이전에는 기업이 20억~30억 원씩 들여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치했지만 이제는 담수화 기술 발달로 개인의 담수화 시설 설치가 용이해진 시대다”라고 말했다.

도심과의 접근성도 한층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육지와 섬을 잇는 첨단 무인기, 드론 덕분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여겨지는 드론은 섬의 생활 문화, 환경까지 뒤바꿀 획기적인 서비스다. 이미 2017년부터 우정사업본부가 시범사업 중인 도서 지역에서의 드론 기반 물품 배송 시스템은 2022년이면 상용화될 전망이다.

조 대표는 “해수담수화 기술 발전과 드론 배송으로 인해 앞으로의 섬 부동산 투자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나타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