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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불안한 마음, 꼭 떼어내야 할까요”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하루에도 수없이 슬프고 괴롭고 속상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어떻게 하면 스스로 아픈 마음을 똑바로 볼 수 있을까.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불교에서는 탐욕스러운 자가 칼로 만들어진 다리를 맨발로 건너게 된다고 했고, 분노해 남을 해한 자는 독사에 물리는 지옥에 간다고 했죠. 가톨릭에서는 시기의 죄를 지으면 얼음물에 몸이 담기고, 우울과 나태의 죄를 저지르면 뱀 구덩이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하루를 헤아려 볼까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감정이 널뛰면서 당신의 마음을 흩트려 놓았을까요?”

인간의 마음을 신경과학, 인류학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펴낸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서문에서 이렇게 화두를 던진다. 하루하루 복잡하고 어지러운 감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괴로운 감정에서 빠져나와 평온한 일상을 만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어사전에 보면 기쁨과 행복에 관한 단어보다 슬픔과 우울에 대한 단어가 2배도 넘습니다. 우리 삶은 만족한 순간보다 부족한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부자가 되든, 왕이 되든 만족하는 순간은 잠시죠. 그런데 그러한 불편한 감정이 인간에게서 꼭 떼 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연약함일 것”이라며 “마음의 고통과 슬픔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인이다”라고 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은 어떤 의미인가요

“옛 현자는 칠정(七情)을 다스리라 했어요.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싫음, 욕심의 일곱 감정이죠. 서양에도 인간의 7가지 대죄(교만, 탐욕, 질투, 분노, 욕정, 폭식, 우울)가 있죠. 하지만 실은 ‘죄’가 아니고 인간의 감정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감정들도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이해하면, 불편하고 부족했던 마음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겁니다. 마음으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인간의 감정을 살펴보자는 의미입니다.”

슬픔, 불안 등의 감정이 인류의 생존에 필요하다고요

“슬픔은 여러 가지로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준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슬프다, 괴롭다는 것은 상황을 개선하거나 바꾸는 동기 유발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여주죠. 잠시 안으로 침잠해서 나를 다독이고, 그동안의 일을 소화하는 시간도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가 슬픈 영화를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잖아요. 슬픔에 빠진 순간, 완전히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지만 실제 슬퍼서 죽은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자신감만 있다면 실제 자신의 삶에서 비용을 내고 보는 영화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해요.”

감정을 들여다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쉬운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약을 먹는다든지, 아니면 원인을 제공한 대상을 만든다든지. 이게 나라냐 하면서요. 이 또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은 해결책은 아닙니다. 대부분 문제는 ‘내 안’에서 시작됩니다. 무서운 영화를 볼 때 눈을 감으면 볼 수 없는 것처럼 자신감을 갖고 바라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견딜 수 있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 힘들 때는 주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대머리인 사람을 가정해보죠.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몸에 털이 거의 없어요. 과연 털이 없어진 게 문제가 있는 걸까요. 진화 관점에서 보면, 체온 조절 기능이나 피부가 햇빛을 받는 과정에서 털이 없어졌다고 봐요. 대머리도 그렇게 털이 없어지는 과정에 있어요. 특정한 사람의 이상한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은 본래 눈이 두 개인데, ‘나는 눈이 두 개인 것이 너무 싫어’ 하며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멋지고 예쁜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 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화폐 같은 가치로 외모를 환산시켜 완벽해야 자신감이 생긴다면 어떤 경우에도 만족스러울 수는 없을 겁니다.”

삶의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평등한 사회의 역설이라고 할까요. 신분제 사회의 계급이 없어지면서 현대인들은 무한경쟁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계급 간 이동이 엄격히 제한된 상황에서는 개인적으로 고민할 일이 오히려 적었습니다. 예컨대 예전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던 사회에서는 공부 못한다고 힘들어하지 않았겠죠. 지금은 다릅니다. 공부를 잘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은 것을 성취하고, 그렇지 못하면 열등감을 느끼게 되죠. 기회의 제공이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못 되는 게 다 내 책임이라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죠. 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고 모두 다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자꾸 남과 비교하면 힘들 수밖에요. 비교 대상은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가 돼야 합니다.”

최근 요동치는 집값에 우울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부동산 소유 여부가 그 사람의 재산이나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됐습니다. 누군가 레이싱에서 밀려 났다고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빠져 드는 것이죠. 현대인의 집에 대한 집착은 사실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무인도에 갔다면 거기에 330㎡짜리 주상복합을 지으려고 할까요. 반면 무인도 생활에서도 짝이나 음식이나 안전에 대한 욕구는 반드시 있습니다. 무인도에 가면 추구하지 않았을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 현대 사회는 천국입니다. 현대 사회에선 서민이라고 해도 조선시대 부자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잖아요.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무한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중심을 지킬 수 있을까요

“수렵 사회에서는 다들 비슷하게 생활했고, 계급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계급이 중요했죠. 현대인들의 불행은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걸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측면이 상당히 큽니다. 마치 죽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 승리한 것처럼 여기는 건 현대 사회의 독특한 현상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을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 과도하게 사용합니다. 만일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남보다 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나쁘지 않지만, 과도할 정도로 투자하지 말고 나머지는 누리세요. 스스로 만족하는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어요. 사실 가장 귀한 자원은 시간입니다.”

못난 마음을 다스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마음을 다스리는 일곱 가지 방법 같은 묘책은 사실 없습니다. 정답이 없거든요. 불안한 마음에서 해방되거나 떼어낼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부족하고 추하고 열등하다는 것을 본인이 너무 잘 알거든요. 그냥 욕망과 질투에 시달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세요. 그것도 사랑스러운 나의 본질로 받아들이고 안아주세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