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 난제를 피해 가진 못했다. 청년들의 상당수가 기성세대를 ‘꼰대’로 폄하하고,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근성’이 없다며 혀를 찬다. 왜 그럴까. 임홍택 작가는 저서 <90년대생이 온다>에서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기점으로 멈춰 버린 에스컬레이터와 이를 대신한 유리계단 위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여유라는 단어 대신 조급함과 억울함만이 생겨났다”고 했다.
모두가 억울한 세상에서는 특별히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 사회적 여유가 없다는 셈이다. 수년째 한국의 청년들은 장기간 저성장의 그늘 아래에서 살인적인 취업난에 허덕이고, 조기 퇴직 후 안정된 제2의 인생을 시작하지 못하는 중장년층에게도 100세 시대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흐름 속에 상대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담보돼야 할 대화나 소통은 어쩌면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노인들 중 청장년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절반(51.5%)을 웃돌았다.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노인 비율도 44.3%에 달한다. 청장년 역시 10명 중 9명은 노인과 소통하는 걸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점점 더 시대가 급변하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에 있어서 세대 간 차이점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한경 머니는 이러한 세대 간 인식 차이의 돋보기로 ‘상속’을 선택했다.
역사학자 백승종 코리아텍 대우교수는 저서 <상속의 역사>에서 “상속제도에 따라 누군가는 권력을 얻거나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신분이 추락하거나 가난으로 내몰렸다. 한 가문에서 상속 때문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국제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국경이 달라지기도 했다. 상속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인 셈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만큼 상속이야말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강력한 매개체이자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숙제와도 같다.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상속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인들은 상속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준비들을 하고 있을까. 한경 머니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리서치 전문 업체인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지난 5월 5일 하루 동안 10~60대 남녀 600명(남녀, 세대 동수)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표본오차 ±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나이 많을수록 상속 관심↑
전 세계적으로 ‘웰빙(well being)’ 광풍에 이어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에 잘 대비하자’는 말이 아직도 어쩐지 어색하고,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상속에 대한 관심도 상대적으로 죽음을 좀 더 ‘가까운 미래’로 받아들이는 중장년층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평소에 상속 또는 증여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세대별로 100명씩, 총 600명에게 설문을 실시한 결과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33.0%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보통이다(26.7%), 매우 그렇다(18.5%), 그렇지 않다(13.2%), 전혀 아니다(8.7%)로 집계됐다. 이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상속에 대해 적잖은 관심을 두고 있는 듯 보이지만 수치를 세대별로 들여다보면 그 속내는 극명히 갈렸다.
나이가 많을수록 상속을 생각해봤다는 답변이(‘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 선택)이 높은 반면, 어릴수록 그 수치가 반비례했다. 10대의 경우 32%만이 상속을 생각해본 반면, 20대는 44%, 30대 50%, 40대 55%, 50대 64%, 60대 64%로 중장년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이는 ‘유류분(공동상속인의 상속지분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도 상속에 대한 세대별 관심의 차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0대의 경우, 유류분을 ‘전혀 모른다’고 답한 비율이 59%에 달한 반면, 20대는 43%, 30대는 36%, 40대는 23%, 50대는 16%, 60대는 19%로 나이가 어릴수록 유류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상속·증여 대비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세대별로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 비율은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았지만 상속의 필요성을 적극 어필한 ‘매우 그렇다’의 답변은 10대는 7%에 그친 반면, 중장년층은 그 비율이 40대 22%, 50대 22%, 60대 21%로 10대보다 3배 이상 높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상속에 대한 관심은 나이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그만큼 ‘상속=죽음=먼 미래’라는 우리 사회 인식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상속의 큰 화두, 고령사회
상속이란 프리즘은 비단 세대 간 생각 차이뿐만 아니라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시대적 현상들을 엿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고령사회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처음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2026년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일까. 상속·증여가 필요한 이유로 전 세대가 ‘치매 등 급작스런 리스크에 대비’를 51.8%로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로 부의 이전(32.5%), 성공적인 가업승계(12.0%), 기타(3.7%) 순이었다.
‘노노(老老)상속’에 대한 세대별 생각도 궁금했다. 노노상속이란 고령화로 인해 초고령의 부모가 이미 노인이 된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세태를 말하는데 초고속으로 고령사회로 진입 중인 우리나라도 간과할 수 없는 숙제다.
무엇보다 노노상속은 자칫 세대 간 갈등 요소로 번질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노노상속에 대한 세대 간 견해는 크게 갈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의외로(?) 결과는 세대별로 대동소이했다. 600명의 응답자 중 노노상속과 관련해 ‘부모 세대의 노후도 고려돼야 한다’는 답변이 44.2%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로 고령화로 인한 당연한 현상(30.7%), 노노상속 문제와 관련 제도나 정책이 필요(12.3%), 상속·증여 시기를 앞당겨 세대이전 필요(12.0%), 기타(0.8%) 순이었다.
‘부동산’ 선호, 상속 준비는 ‘미비’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속·증여의 자산 형태는 무엇일까. 역시 부동의 1위는 ‘부동산’이었다. 10대부터 60대까지 각각 58%, 59%, 63%, 57%, 68%, 68%로 부동산을 가장 선호하는 상속자산으로 꼽았다. 실제로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순(純)자산 중 74%가 부동산인 것으로 집계됐다. 집이나 땅에 묶여 있는 재산 비중이 매우 높은 만큼 상속자산 선호도도 부동산에 쏠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10대 어린 학생들마저 ‘부동산’에 관심이 높다는 결과물은 어쩐지 씁쓸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상속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상속이나 증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를 묻는 질문의 세대별 시각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 ‘2030대’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답변은 10대가 32%, 20대 29%, 30대가 24%, 40대가 10%, 50대가 5%, 60대가 4%로 어린 세대일수록 많았던 반면, ‘6070대 중장년 이후’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답변은 정확히 반비례했다.
다만, 눈길을 끄는 건 전 세대에 걸쳐 상속은 ‘4050대’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은 어린 시절부터 가업승계나 고령사회에 대비해 상속이나 증여를 일찍 준비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 시기가 늦은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전 세대 모두 상속과 관련해 ‘세금 문제’를 제일 고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속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복잡한 세금 문제’라고 답한 비율은 40대가 64%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로 30대 59%, 60대 50%, 50대 47%, 20대 40%, 10대 36%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증여세율이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상속 시 세금 걱정을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금 문제 외에도 ‘고민한 적 없다’, ‘가업승계 시 후계자 선택’, ‘정보 부족’ 등도 고민거리로 지목됐다.
상속으로 본 가족에 대한 생각
또한 상속에 대한 세대별 설문조사를 통해 가족에 대한 각각의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 문항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전통적인 ‘효도’사상이나 ‘가족화목’을 높이 생각한다는 점은 전 세대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상속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50.5%가 화목한 가족관계 보기를 선택했으며, 다음으로 균등한 상속 배분(38.2%), 철저한 승계 교육(5.7%)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배은망덕한 자식에겐 꼭 상속 또는 증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도 전 세대가 동일한 목소리를 냈다. 응답자 전체의 45.0%가 매우 그렇다 보기를 선택했으며, 다음으로 그렇다(33.8%), 보통이다(14.5%) 순으로 나타났다. ‘평소에 상속 또는 증여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나이가 많을수록 상속을 생각해봤다는 답변(‘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 선택)이 높은 반면, 어릴수록 그 수치가 반비례했다.
상속으로 본 세대 간 동상이몽
설문조사 기간: 2019년 5월 5일
설문조사 응답자 수: 10~60대 이상 각 100명씩 총 600명
설문방식: 모바일 설문
표본오차: ±4%(95% 신뢰수준)
설문기관: 오픈서베이 및 한경 머니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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