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회사 사우디 아람코가 처음으로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에 사상 최대인 1000억 달러의 자금이 몰렸다. 아람코는 조달 규모를 당초 10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늘려 지난 4월 10일 채권을 발행했다. 사우디 동부 라스타누라 지역에 있는 아람코 정유공장.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회사 사우디 아람코가 처음으로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에 사상 최대인 1000억 달러의 자금이 몰렸다. 아람코는 조달 규모를 당초 10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늘려 지난 4월 10일 채권을 발행했다. 사우디 동부 라스타누라 지역에 있는 아람코 정유공장.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기업인 아람코가 지난 4월 1일 사상 처음 경영실적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영업이익이 무려 256조 원대로 애플, 삼성전자, 알파벳(구글 모기업)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베일을 벗은 세계 최대 기업의 신화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한 압둘 아지즈 이븐 알 사우드 초대 국왕은 1933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셰브런의 전신)에 아라비아 사막 탐사권을 60년간 부여했다. 당시 미국 정부 지원하에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은 사우디 정부와 합작해 캘리포니아-아라비아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후 미국 탐사기술자들은 아라비아 사막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멍을 뚫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38년 사우디 동부 다란 지역에서 첫 유전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사막의 기적이 시작됐다. 이후 캘리포니아-아라비아 스탠더드 오일은 1944년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Arabian American Oil Company, Aramco)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우디 정부는 1980년 셰브런 등이 보유하던 아람코 지분을 모두 인수해 국영기업으로 만들었고, 회사 이름을 ‘사우디아라비안 오일 컴퍼니(Saudi Arabian Oil Company)’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공식 명칭은 사우디 아람코가 됐지만, 지금도 아람코로 불린다.

세계 최대의 석유 기업인 아람코는 그동안 영업이익 등 경영실적을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아람코는 사우디 왕실이 지분을 100% 소유한 비(非)상장 회사로,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이며 어떻게 운영되는지 80여 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다란에 있는 아람코 본사는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돼 있다. 이곳에는 핵심 시설인 ‘석유 공급 계획 및 일정(Oil Supply Planning and Scheduling, OSPAS)’센터가 있다.

아람콤에서 가장 중요한 기밀 정보가 보관돼 있는 곳이라 직원들은 대부분 접근할 수 없다. 이곳의 축구장 한 면 길이의 벽을 따라 설치된 스크린에는 사우디 국내와 아라비아만, 홍해의 해외 시설에서 이뤄지는 채굴, 파이프 수송, 정제, 선적 현황 및 모든 운영 사항이 나타난다. 게다가 아람코의 재무 상황은 국가 일급비밀이다.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사우디 국왕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아람코 회계장부, 베일 벗겨보니

이처럼 비밀을 준수해 온 아람코가 4월 1일 사상 처음으로 경영실적을 공개했다. 아람코가 중동 최대 석유화학 기업이자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보유한 사빅(SABIC)의 지분 70%(691억 달러)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첫 회사채를 발행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람코의 경영실적 공개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엄청난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의 분석에 따르면 아람코는 지난해 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가 2240억 달러(256조 원)로 전 세계 기업 가운데 가장 큰 이익을 냈다. 순이익도 1110억 달러(126조 원)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3550억 달러였다. 세계 최고의 알짜 기업인 셈이었다. 아람코의 영업이익은 지금까지 세계 1위 기업이었던 애플(818억 달러)과 2위였던 삼성전자(776억 달러), 3위였던 알파벳(구글 모기업, 404억 달러)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압도적인 세계 1위였다.

유럽 최대 석유 기업 로열더치셸(533억 달러)과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404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쳐도 아람코의 절반도 안 됐다. 아람코의 순이익은 애플(593억 달러), 알파벳(300억 달러), 아마존(100억 달러) 등 세 기업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람코의 영업이익은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의 국방 예산 합계와 맞먹는 규모라면서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수익이라고 지적했다.

아람코는 그동안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피치의 평가는 외부 기관으로선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경영실적을 분석해보면 아람코의 이익은 국제유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람코의 순이익은 2016년 132억 달러, 2017년 759억 달러, 지난해 1111억 달러로 유가 상승에 따라 급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유(WTI)는 2016년 1월 배럴당 47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9월 72달러까지 뛰었다. WTI 가격은 지난해 말 배럴당 46달러까지 하락했다가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하면서 6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피치는 “아람코는 로열더치셸, 토털 등 경쟁사에 비해 천연가스 등 다른 부문 사업에서 뒤처져 유가 변동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아람코의 지난해 하루 원유 생산량은 1360만 배럴로 전 세계 생산량의 12%를 차지하고, 세계 최대 정유사인 미국 엑손모빌(380만 배럴)의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국영 석유 기업인 로즈네프트의 일평균 생산량은 390만 배럴이고, 이란 국영석유공사의 생산량은 320만 배럴 정도다. 사우디 정부는 재정의 87%를 아람코가 내는 배당금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사우디의 2017년 국내총생산(GDP)은 6838억 달러였는데, 아람코의 매출은 GDP의 70% 수준인 4655억 달러였다.

아람코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사우디의 인구는 2800만 명인데 이 중 7만여 명이 아람코에 근무하고 있다. 아람코가 직간접적으로 창출하는 고용은 20만여 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아람코에는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인 직원도 상당히 많다. 아람코는 대륙과 국가별로 등급을 나눠 그에 따라 연봉 등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한국 임직원은 미국, 영국, 캐나다와 같은 최상위등급(G payroll)으로 분류돼 아람코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아람코는 향후 10년간 화학 등 관련 사업으로 규모를 확장해 직간접 고용 창출 효과를 50만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아람코는 또 상류층과 성적 우수생을 국비 장학생처럼 뽑아 미국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영국 옥스퍼드대 등에 유학을 보낸다. 아람코의 주거시설엔 미국 존스홉킨스대 병원 분원과 스타디움 11개, 골프장, 야생동물 보호구역까지 있다.

아람코는 4월 9일 종료된 첫 회사채 입찰을 통해 1200억 달러를 조달했다. 당초 예정했던 100억 달러의 12배 규모다. 이처럼 엄청난 자금조달이 가능했던 것은 아람코가 사상 처음으로 경영실적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수익성 높고 안전한 채권에 목말라하는 투자자들은 아람코가 세계 최대 알짜 기업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자 앞 다투어 아람코의 회사채 매입에 나섰다.

1200억 달러 자금조달은 신흥시장의 채권 발행 기록을 모두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로 2016년 사우디 정부의 사상 첫 국채 발행 규모 670억 달러에 비해서도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의약 기업 CVS 헬스가 애트나 인수를 위해 1200억 달러를 조달한 것과 같은 규모다.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반발로 지난해 10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사막의 다보스’라 부르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 참가를 거부했던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대거 채권 입찰에 나섰다.


◆석유 패권 위기감…변화 모색하는 아람코
아람코가 성공적으로 채권시장에 데뷔하면서 사우디 왕실은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던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앞으로 경제 개혁을 추진할 발판을 마련했다. 아람코는 PIF가 보유한 사빅의 지분 70%를 인수하고, PIF는 확보한 자금을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경제 개혁 어젠다인 ‘비전 2030’ 계획을 추진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동안 사우디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 광산업 등 비(非)석유 산업을 키우겠다는 ‘비전 2030’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는 당초 지난해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분 5%를 시장에 팔아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불발됐다. 하지만 이번에 회사채 발행으로 ‘대박’을 치면서 2021년으로 연기된 아람코의 IPO에도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람코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하면서 세계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석유 시장의 판도가 바뀌면서 아람코의 입지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등에 따른 저(低)유가 지속,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 고조로 중동의 석유 패권이 예전 같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아람코가 원유를 현재 수준으로 계속 생산할 수 있느냐다. 이 때문에 아람코의 원유 생산능력은 세계 최대 규모인 가와르 유전에 달려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제석유업계는 아람코가 이번 채권 투자설명서를 통해 함께 공개한 사우디 동부에 있는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능력에 주목했다. 가와르 유전은 면적이 한국 경기도(1만172㎢)의 절반인 5300㎢로 사우디의 원유 30%를 생산한다.

아람코는 2004년 가와르 유전의 생산능력은 하루 500만 배럴 이상이라면서 적어도 10년 전부터 이 같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도 가와르 유전의 생산능력을 하루 580만 배럴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아람코의 채권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가와르 유전의 생산능력은 하루 최대 380만 배럴로 시장에서 널리 믿고 있던 500만 배럴 이상을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 규모는 미국 텍사스주 셰일오일 지대인 퍼미언 유전의 하루 최대 생산량(410만 배럴)을 밑도는 수준이다.

싱가포르 리서치 업체인 에너지 에스펙츠의 비렌드라 초한 수석 애널리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낮은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능력은 아람코의 채권 투자설명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다”고 지적했다. 아람코가 그동안 가와르 유전의 생산능력을 과대 포장해 왔는지, 아니면 지속적인 감산 정책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해 왔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가와르 유전의 원유 매장량도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EIA는 그동안 가와르 유전의 원유 매장량을 750억 배럴로 추정해 왔다. 하지만 아람코가 이번 채권 투자설명서에서 밝힌 가와르 유전 원유 매장량은 482억 배럴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정도 매장량이면 하루 최대 수준의 원유 생산이 34년간 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예측이 정확하다면 가와르 유전은 35년 후에는 바닥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아람코의 사세도 기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가와르 유전만으로 아람코와 사우디의 원유 생산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이 2260억 배럴로 추정된다”면서 “하루 1200만 배럴을 생산하더라도 52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무튼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람코의 신화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없는 사우디의 미래를 대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