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정초원 뉴스토마토 문화예술팀 기자] 멀리 가야만 여행일까? 꼭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야만 여행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중요한 것은 여행지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의 최재원 작가는 “아무리 가까운 동네라도 숙소를 잡고 하루 묵어 갈 마음으로 온다면 여행이 된다”며 “평일에도 주말에도 얼마든지 부담 없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여행의 목적지가 반드시 멀리 있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최근 가까운 동네로 가볍게 떠나는 ‘미니멀리즘 여행’이 새로운 여행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또한 만만찮은 노동의 일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출한 차림새로 떠나는 ‘동네 여행’이 도시인들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티켓 예매부터 숙소 예약, 여행 동선 짜기까지 장거리 여행은 분명 설레는 이벤트지만, 그 준비 과정에서 여행자에게 적잖은 피로를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호텔스닷컴이 최근 전 세계 7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휴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인생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다’라는 문항에 응답자의 27%가 동의 의사를 표시했다. 또 응답자의 52%는 ‘휴가 계획을 세우며 받는 피로감 때문에 이전에 방문했던 여행지에 재방문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동네 여행의 매력에 빠진 황 모(36) 씨는 “몇 년 전 일본을 여행하는데, 맨홀 뚜껑에 벚꽃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사진까지 찍으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한국에서 길을 걸을 때 맨홀 뚜껑을 유심히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일본 현지 사람들은 내가 그토록 신기해했던 맨홀 뚜껑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지나치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여행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은 ‘얼마나 멀리 가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준비가 됐는지’에 달린 것”이라며 “그 이후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의 빈도를 줄이고, 일상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가까운 동네부터 여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 동네’에서 꾸는 하룻밤의 꿈
동네 여행의 장점은 여행자의 체력과 시간,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여행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하는 동네에 하룻밤이라도 숙소를 잡는 것. 낯선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야가 트인다. 여행 숙소로 흔히 선택하는 체인형 호텔도 좋지만, 그 동네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로컬 숙소를 선택하는 쪽이 새로운 발견을 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 지역과 잘 어우러지는 공간일수록 저마다의 스토리를 품고 있기 때문에 그 숨은 면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인 익선동에는 2개의 독특한 건물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하나는 여관을 리모델링한 부티크 호텔 ‘낙원장’, 또 하나는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은 숙박 업체를 카페로 개조한 ‘호텔 세느장’이다. 이른바 별천지로 비유되는 익선동 골목길을 통틀어 봐도 이 두 공간의 존재감은 꽤 강력하다.

우선 낙원장은 1980년대 여관의 모습을 균형감 있게 살린 숙소다.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전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뉴트로(newtro) 소품과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도시재생 기획 기업인 ‘익선다다’가 지난 2017년 오픈한 낙원장은 개업 3년 차인 올해 내부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낙원장 관계자는 “4월쯤 내부 공사를 시작해 5~6월 다시 문을 열 예정”이라며 “내벽 색상 등 전반적 느낌이 바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낙원장을 지나치는 가족 단위의 행인들이 “여관을 개조한 호텔”이라며 관심을 쏟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낙원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선 호텔 세느장은 50년 역사의 건물 외관과 여관 영업을 할 때 내건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호텔의 ‘컨시어지 데스크’를 본뜬 음료 데스크가 곧바로 보인다. 1층만 보면 요즘 스타일로 ‘힙’하게 꾸민 신생 호텔을 연상시킨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 콘셉트 덕에 이국의 어느 호텔에서 하룻밤 묵어 가는 듯한 독특한 정서를 취할 수 있다. 호텔 세느장 관계자는 “각 층마다 카페, 케이크 팩토리, 갤러리, 라운지바, 루프톱 등 다른 콘셉트가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청계천과 명동이 맞닿은 을지로에는 50년 된 물류창고를 호텔로 탈바꿈시킨 ‘스몰하우스 빅 도어’가 있다. 1층은 아티스트의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꾸몄고, 객실 내부는 바깥 도시와 차단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완전무결한 흰색이다. 특히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노출시킨 최상층의 인테리어는 이 호텔의 백미다. 자연 채광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천장 유리창과 철근 콘크리트의 조화는 을지로에서 긴 세월을 보낸 이 건물만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숙박 공유와 게스트하우스로 ‘사람 여행’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에 가는 것만으로도 낯선 여행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 동네에 사는 지역주민의 집에 묵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른바 ‘에어비앤비(Airbnb)’로 통칭되는 ‘숙박 공유 서비스’ 이야기다. 집주인의 생활공간과 빈 방을 일정 기간 투숙객에게 빌려주는 개념이라, 현지인의 사는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서비스의 장점이다. 동네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호스트(집주인)’를 여행의 길잡이로 삼을 수도 있다.

국내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 등 도시 지역에서는 외국인에게만 에어비앤비가 허용된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도시에 위치한 집이라고 하더라도 한옥 스테이가 적용되는 ‘한옥’이라면 내국인에게도 숙박 공유가 가능하다. 특히 북촌 한옥마을과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이런 한옥 숙박 공유를 제공하는 집들이 많다. 독채를 제공하는 한옥도 있어 가족 단위로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소박한 관광을 즐기고, 고즈넉한 한옥에서 하루를 마감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동네 여행 코스다.

숙박객이 한데 모일 기회가 많은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인 ‘사람 탐구’를 하기 좋은 장소다. 오다가다 만난 여행객들과 대화하며 각자의 여행담을 나누는 것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다.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외국인부터 다른 도시 사람까지 한 식탁을 공유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낯선 공간에서 만나는 타인은 언제나 여행을 풍요롭게 만든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