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중국의 전인대 대의원들이 ‘경제성장률 6%는 반드시 지킨다’는 뜻으로 바오류(保六) 총력전을 결의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전통적인 수출 제조업에서부터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에 이르기까지 감원과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 닥친 상황에서 성장 마지노선을 지켜낼지 주목된다.
중국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통계 중에서 ‘리커창(李克强)지수’라는 것이 있다. 리커창지수는 리커창 중국 총리가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랴오닝성의 경제성장률이 조작돼 신뢰할 수 없다”면서 “전력 사용량, 은행 대출, 철도화물 운송량 3가지 지표를 대신 살펴봐야 한다”고 밝힌 데서 비롯됐다. 이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리 총리가 제시한 3개의 지표에서 각각 가중치를 더해 지수로 만든 후 리커창지수라고 명명했다.
리커창 총리가 3월 5일 개막된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추진할 정부의 주요 정책을 보고했다. 그가 밝힌 주요 정책 중에서 주목되는 점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였다. 그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전년의 6.5%에서 6.0∼6.5%로 낮추어 제시했다.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사실상 0.5%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톈안먼 사태로 서방의 투자가 얼어붙었던 1990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 이유는 지난해 7월부터 본격화한 미·중 무역전쟁에 따라 중국 경제가 경기 둔화에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경제의 3대 성장 엔진으로 불리던 소비, 투자, 수출이 동반 악화하고 있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생산자물가지수(PPI), 기업의 이윤 지표 등도 악화하면서 체감 경기가 급랭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 구체적인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대신 다소 폭넓은 구간을 목표치로 제시한 것은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 총리는 “올해 중국 경제는 더 복잡하고 더 혹독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힘겨운 싸움을 치를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의 신뢰성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홍콩 중문대와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은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2008년부터 9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정부 공식 발표보다 연평균 2%포인트 낮은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중국 지방정부가 경제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통계를 조작하는 경향이 있으며, 각 지방정부의 통계를 취합하는 중국 국가통계국이 이를 시정한다고는 하지만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6.6%로 나타났다. 홍콩 중문대와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지적한 것이 맞다면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상쑹줘 중국 인민대 교수는 자체 연구그룹이 추산한 결과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67%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상 교수는 “중국 정부는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90조 위안(1경5000조 원)을 넘었다고 했지만 GDP를 구성하는 개인·기업 소득, 정부 예산 등의 수치를 합하면 90조 위안에 크게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정부 고위 관리로부터 지난해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최소 10곳 정도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의 이런 주장을 보도(2019년 1월 6일자)하면서 중국 정부가 발표해 온 통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상 교수의 발언이 담긴 유튜브 영상은 12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을 정도로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그의 주장이 담긴 영상을 인터넷에서 완전 삭제했다.
◆중국 경제 성장 목표 달성 가능할까
서방 경제 연구기관들은 중국 정부의 통계를 믿을 수 없다며 여러 가지 다른 지표를 조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추산하고 있다. 특히 서방 경제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해 온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리 총리가 제시한 목표치보다 더욱 하락할 것이라면서 중국 경제 위기론을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방 경제 연구기관들은 리커창지수와 같은 대안 지표를 사용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3~5% 수준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보드는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률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노동시장과 자본, 생산성 등을 모두 고려해 추정하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18년 4.1%, 2019년엔 3.8% 수준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UBS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미국과 무역전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5%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리 총리가 전인대에 보고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가 리커창지수에 따라 정확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셈이다.
통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리 총리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의 경제 상황은 각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기치로 내세운 ‘중국몽(中國夢)’을 실현시키기 위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시 주석은 ‘2개의 100주년’을 맞아 중국몽이 구현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다. 2개의 100주년은 중국 경제 발전의 2단계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1단계는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까지 전면적인 샤오캉(먹고살 만한 중산층)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2단계는 2049년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에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유지하려면 적정 수준의 경제 발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민들이 배고프고 삶이 힘들면 정권(공산당)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실업률과 직결된다. 지난해까지는 창업 열풍과 인터넷 혹은 모바일 경제로 불리는 신(新)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지난해 말 기준 도시 실업률이 4.9%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전통적인 수출 제조업에서부터 첨단 IT 기업에 이르기까지 감원과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다.
게다가 공식 통계에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려운 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들, 이른바 농민공(農民工)들이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또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도시에서 궁핍하게 생활하는 고학력 저소득층인 이른바 ‘개미족’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선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리 총리가 “일자리는 민생의 근본이고 재부의 원천”이라며 “올해 처음으로 취업 우선 정책을 거시 정책 차원에서 추친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도시 신규 취업자 수를 1100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고 도시 실업률을 5.5%로 억지하기로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마지노선은 6%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6%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지만 중국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일단 경기 부양에 나설 계획이다. 리 총리는 올해 재정적자 목표치로 지난해 GDP 대비 2.6%에서 0.2%포인트가 상향된 2.8%를 제시했다. 목표치를 올린 것은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인프라 시설 건설에 쓰이는 자금 확보를 위한 특수목적 채권 발행 규모를 2조1500억 위안(360조 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보다 8000억 위안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집행한 4조 위안대의 부양책보다는 상당히 작은 규모다. 그 이유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한 인위적인 경기 부양이 자칫하면 지방정부 부채 급증, 부실기업 양산,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올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되 과도한 단기 부양책은 구사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신 중국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계획이다. 기업의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낮추고 개인의 경우 소득세를 인하해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기로 했다. 또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개선하기 위해 자동차, 가전 등 다양한 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취업 우선 정책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농촌 빈곤 인구와 도시에서 실업자로 등록한 지 반년 이상 되는 실업자를 채용한 기업에 3년간 일정 액수의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직업 기능 향상을 위한 훈련도 확대하는 등 노동의 질 향상에도 힘쓰기로 했다. 실업보험기금에서 1000억 위안(17조 원)을 인출해 연인원 1500만 명 노동자의 기능 향상과 전직 및 전업 교육에 투입하기로 했다. 직업대학 입시 개혁을 통해 퇴역군인, 실직자 농민공 등의 응시를 권장해 올해 학생 모집 규모를 지난해보다 100만 명 늘리기로 했다. 중등 직업교육 국가장학금도 만드는 등 각종 기술 기능 인재 양성을 서두르기로 했다. 향후 3년간 100만 청년 인턴 계획도 시행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또한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리 총리가 전인대의 주요 정책 보고에서 첨단 산업 육성 전략인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미국 정부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전인대 보고에서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강조했었다.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중국 제조 2025’ 계획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정부에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폐기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로선 미래 산업인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늘렸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전인대에서 확정된 ‘외상(外商)투자법’에도 미국 정부의 요구를 반영해 강제 기술 이전 금지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조항을 포함시켰다.
시 주석은 이번 전인대에 처음으로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중국 역대 최고지도자들은 흰머리가 있으면 검게 염색하고 전인대에 참석해 왔다. 나이보다 젊게 보이면서 카리스마를 과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1953년생인 시 주석은 올해 65세로 흰머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그대로 흰머리를 보인 것은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2900여 명의 전인대 대의원들도 ‘경제성장률 6%는 반드시 지킨다’는 뜻으로 바오류 총력전을 결의했다. 아무튼 중국 정부가 통계 조작이 아닌 정확한 경제성장률 6%를 사수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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