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서울 강남 소재 유명 클럽에서의 폭력 사태가 마약, 강간, 성상납, 성접대, 몰카(몰래카메라) 등으로 번지며 또 다른 폭력성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와 사랑을 표현하는 정서적 소통으로 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왜곡된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는 온통 ‘불타고 있는 태양(버닝썬)’과 방종한 데다 파렴치하기까지 한 젊은 연예인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나라가 온통 지글지글 역겨운 냄새와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는 중이다.
그 시작은 서울 강남에 있는 유명한 클럽에서 있었던 작은 폭력 사태였지만, 그것의 시비를 가리는 중에 클럽 관계자와 경찰의 유착관계에 대한 혐의를 알게 되고, ‘마약, 강간, 성상납, 성접대’로부터 지금은 ‘몰카와 그 영상들의 비밀스런 공유와 키득거림’이라는 성범죄 조사로까지 확산됐다.
그러는 와중에 같은 클럽의 밀실에서 한 여성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끔찍한 성추행을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강간 영상’까지 무차별적으로 돌고 있어 그 만연된 폭력성의 끝을 가늠할 수 없다. 이에 더해 미국에 서버를 두고 국내 숙박업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무려 1600여 명의 사생활, 성관계를 찍어 포르노 사이트에 노출하고 유료로 몰카 영상을 유통시켜 온 이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가히 ‘몰카 천국’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신은 그의 말씀에서 ‘함께 돕고 협력해 선을 이뤄야 할’ 존재라고 ‘여성’을 이야기했건만 허영과 오만과 폭력적인 힘의 거품에 휩싸인 어리석은 이들이 대면한 여성은 성적 흥분과 만족만을 취하는 장난감보다 못한 희롱의 대상이고 제물이었다.
마치 은밀한 곳에 숨어 기다리며 사냥감을 고르고, 사냥감의 목숨을 앗아 전리품으로 전시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했다. 방송에서 과장되게 꾸며준 얼굴로 자신들을 추종하는 여성을 유혹하고, 그녀와 섹스하고, 그 장면들을 몰카로 찍어 전리품을 전시하고 나누듯 그들은 단톡방에서 그렇게 즐겼다. 그리고 또 다른 사냥감을 물색하고 품평하고 나눠 가졌다. 이들이 한 성행위는 명백히 강간은 아니지만(상대 여성들의 동의를 얻었을 테니), 동의 없이 몰카를 찍고 그것을 돌려보며 희롱하고 즐긴 것은 심각한 성폭력이다. 그들은 피해자들이 입을 피해와 상처에 대해서 전혀 공감 능력이 없으며, 자신들의 왜곡된 남성성에 갇혀 폭력으로 얻은 정복감만을 즐기는 어리석고 비열한 수컷들이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을 기를 쓰고 찾아 공유하고 관람하려는 이들이 많고, “내 애인과도 찍고 아내와도 찍는 성관계 영상이 뭔 대수라고 호들갑이냐”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미 저급한 관음증 문화에 길든 그들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보통 남성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몰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마도 그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주의와 폭력에 대한 둔감함, 인성교육의 포기로 인한 인간애의 실종들이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결국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바라보는 적대적인 시선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성 상품화, TV·영화·포르노 등의 매체들을 통해 여과 없이 학습된 폭력성과 성적 학대에 대한 둔감함, 존경할 만한 롤모델이 없는 가정과 사회, 건강한 성행동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성교육의 부재가 이런 괴물들을 길러낸 것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행위가 남성들의 ‘참지 못하는 성욕’ 때문이라 할지 모르지만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강간과 연장선에 있는 몰카의 촬영, 유포 같은 행위는 ‘성욕’이 아니라 ‘공격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강간은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고, 우발적이라기보다는 계획적인 범죄 행위이며,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때로는 술이나 약물로 저항할 수 없게 만든, 가해자로부터 고의적으로 저질러진다.
그리고 폭력적인 소통을 하는 사람은 대개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고, 폭력적이거나 냉담한 아버지에게 육체적·정서적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인 경우가 많다. 또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며, 여성이 선정적인 옷을 입거나 행동을 함으로써 섹스를 끌어내고, 여성이 말로 섹스를 거부했음에도 사실은 그녀가 더 강압적으로 대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몰카를 찍는 사람 역시 강간 신화에 젖어 있고, 상대를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는 성적 대상이라고 가벼이 생각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몰카의 피해자가 가장 두려워하고, 그들을 죽음의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불특정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런 식으로 소비되고 희롱되는 것이다. 그래서 몰카 영상을 보는 것은 찍는 것만큼의 범죄와 다르지 않다. 악의가 없다고 해도 몰카 영상을 공유하고 유포에 가담하는 것이 심각한 2차 가해가 되는 이유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가해자의 악의에 가득 찬 목표에 동조하며 피해자를 유린하는 공범이 되는 것이다.
성이 상대와 즐거움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행복한 정서적 소통임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신의 힘과 분노, 적대감을 표현하는 폭력적 도구로써 사용하도록 학습되는 사회는 위험하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남성성은 약한 것을 정복하고 군림하는 공격성이 아니라, 남을 위해 건강하고 관대한 리더십과 용기를 발휘하고 자신을 위한 독립심을 가지는 것이다.
다른 남성이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웃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집단의 잘못된 압력에 동조하지 않는 남성, 성폭력 피해자의 상처에 공감할 줄 아는 남성, 나아가 남녀를 행복과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협력자로 인식하고 그런 문화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남성이야말로 우리가 바라고 사랑하고 싶은 멋진 남성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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