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살고 싶은 집, '숲세권'의 가치는
[big story] 숲 라이프를 꿈꾸다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과 숲이 있는 단지가 ‘살고 싶은 집’의 로망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주택 시장의 가장 중요한 선택 요인이었던 교통과 학군을 조금씩 밀어내고 점점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는 ‘자연환경’의 프리미엄은 얼마나 가치 있을까.

#1. 서울 마포에 사는 안 모(48) 씨는 매일 저녁이면 반려견과 함께 숲길공원을 산책한다. 도심에서 풀 내음을 맡으며 길을 걷고, 공원길을 따라 들어선 예쁘고 특색 있는 카페와 상점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경의선 폐철로를 걷어낸 자리에 조성한 경의선숲길 공원이다. 산책로, 자전거길, 운동시설, 광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뿐 아니라 잔디밭, 작은 연못 등이 도심 속 휴식 공간이 된다.

안 씨는 “도심에 살다 보니 주변 녹지를 찾기 어려워 아쉬웠는데 경의선숲길 공원이 조성되고 주거 만족도가 크게 올라갔다”며 “산책길에 주민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공원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다 보면 빡빡한 도시의 삶에서 순간이나마 여유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2.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주부 이 모(37) 씨는 오는 가을 전세 만기를 앞두고 숲과 공원 근처의 주택들을 알아보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서울숲과 강북구의 북서울꿈의숲 인근 아파트들이 우선 관심 대상이다. 이 씨는 “길 하나 건너면 바로 큰 숲과 공원이 나오는 아파트는 아이를 키우기에 참 좋은 환경인 것 같아 서울 숲세권에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이 로망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주변에 숲이나 산, 공원이 있는 이른바 ‘숲세권’, ‘공세권’ 등 자연친화적 주거지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양지영 R&C 소장은 “건강이나 쾌적한 삶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개발부지 고갈로 향후 공급이 제한적인 서울 시내의 숲이나 대형 공원과 인접한 아파트들의 희소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미래 주거 트렌드, 교통·편리성에 앞선 ‘쾌적성’
[big story] 살고 싶은 집, '숲세권'의 가치는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5 미래 주거 트렌드 보고서’는 향후 주택 선택 요인의 변화를 엿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교통 편리성(24%), 생활 편리성(19%)이 우선되는 풍토와 사뭇 다른 결과를 내놨다. 자연이 주는 쾌적성(35%)에 대한 선호도가 단연 높았던 것. 도로변 상권이 발달한 곳보다 자연친화적 입지의 가치가 앞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다.

피데스개발이 한국갤럽과 조사해 발표한 ‘2017년 미래 주택 설문조사’에도 자연환경과 관련해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다. 수도권 수요자들은 선호하는 자연환경이 있는 주택의 경우 평균 7%가량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선호하는 자연환경이 있는 주택에 얼마나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5~10% 미만을 더 지불하겠다’는 답변이 38.6%로 가장 높았고, ‘5% 미만을 더 지불하겠다’는 답변이 26.8%로 뒤를 이었다. 또 10~15% 미만으로 더 지불한다는 응답이 24%, 15% 이상 지불하겠다는 답변도 10.7%나 나왔다. 선호하는 자연환경을 묻는 질문에서는 ‘공원(50.4%)’이 가장 높은 선택을 받았다. 이어 하천(13.1%), 강(12.3%), 호수(9.6%), 산(8.2%), 바다(6.3%) 순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숲세권 및 공세권 주택의 가격 상승률은 어떠할까. 투자 측면에서는 숲과 공원이 아파트의 가치를 얼마나 높여줄까. 최근 인기 연예인들의 잇따른 매수로 화제에 오른 서울 성수동 트라마제는 서울숲과 한강의 전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에 의하면 트라마제 전용면적 95㎡는 지난해 8월과 10월 19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현재 전용면적 136.56㎡는 조망과 층에 따라 32억~36억 원을 호가한다. 서울숲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포레 전용면적 241㎡는 부동산 시장 한파에도 지난 1월 57억 원에 거래됐다.

집값 상승률로 보면 ‘강남4구’를 웃도는 마포구의 인기 배경에는 경의선숲길과 개선된 주변 환경 요인이 크다. 경의선숲길을 정원으로 하는 마포구 공덕파크자이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8월 13억3000만~13억4000만 원에 잇따라 거래됐다. 2015년 입주한 이 아파트 84㎡의 평균 분양가가 6억 원 선. 분양가 대비 7억 원이 넘게 가격이 뛰었다.

대흥역 역세권과 경의선숲길에 인접한 마포구 동양엔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10월 9억7500만 원에 거래됐다. 2017년 4월 6억1400만 원에서 1년 6개월 만에 3억 원 가까이 상승했다.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2017년 2월부터 최근 2년간 상승률을 보면 공덕파크자이는 64.7%, 동양엔파트는 56.7%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마포구 평균 상승률 40.9%를 크게 웃돌았다.

숲세권 프리미엄의 조건

숲세권 아파트들은 청약 시장에서도 흥행을 주도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단지는 노원구 상계동에서 분양한 ‘노원꿈에그린’으로 평균 97.9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은평구 수색동 ‘DMC SK뷰’는 9·13 부동산대책 이후 개정된 청약제도가 적용됐음에도 150가구 모집에 1만3000여 명이 몰려 91.6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어 신길동 신길파크자이는 79.63대1, 은평구 응암동 힐스테이트녹번역은 59.5대1을 기록해 ‘2018년 서울 아파트 청약 경쟁률 톱5’에 올랐다.

노원꿈에그린은 수락산과 중랑천, 햇빛공원, 온수 근린공원이 주변에 있으며, 넓은 조경면적 속 순환 산책로를 갖췄다. DMC SK뷰는 증산체육공원, 노을공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 난지한강공원 등 대규모 공원이 가깝다. 신길파크자이는 신길 근린공원, 보라매공원, 용마산 등 탁월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힐스테이트녹번역은 단지가 북한산 자락과 맞닿아 있으며 독바위공원과 북한산 생태공원이 가까운 숲세권 단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난해 청약 광풍을 이끈 단지들처럼 숲을 품은 주택의 가치가 향후 더욱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명수 리얼앤택스 대표는 “그간 아파트 가격은 주로 지하철 개통 등 교통 호재에 민감하게 움직였지만, 국민소득과 이에 따른 의식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연환경과 조망권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며 “특히 강 조망이 계절 변화를 담지 못해 단조로운 반면 숲은 계절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선호도가 올라가는 추세다”고 밝혔다.

다만 유의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서울처럼 교통, 교육, 상권 등 기반시설이 갖춰진 입지 가운데 숲과 공원이 인접한 단지를 눈여겨보라는 조언이다. 강원도처럼 녹지 비율이 높다고 이에 비례해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숲세권 아파트는 자칫 역에서 멀어질 수 있는데, 교통 불편 요소가 있다면 숲세권 프리미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명수 대표 역시 “숲세권과 역세권이 만나야 최상”이라며 “교육과 상권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에 ‘숲’이 가까이 있을 때야 비로소 숲세권 프리미엄이 제대로 발휘된다”고 말했다.
[big story] 살고 싶은 집, '숲세권'의 가치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