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산업 급성장, 주도권 다툼 치열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로봇이 공장에서 일반 노동자 3명 몫의 일을 하고, 공항 주차장에서 탑승객들의 차를 안전하게 주차해주는 세상이 됐다. 이처럼 산업용 로봇을 필두로 물류, 의료 등 전문 서비스 분야까지 점점 확대되는 로봇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세계 각국의 피 말리는 경쟁이 치열하다.

‘듀아로(Duaro)’는 인간과 같은 2개의 팔을 가진 산업용 로봇이다.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제작한 이 로봇은 하나의 컨트롤러와 2개의 팔이 교차하면서 움직인다. 생산라인에 투입된 사람과 똑같이 반복적인 조립작업을 할 수 있다. 크기도 한 사람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에 맞게 설계됐다. 로봇 팔의 움직임도 사람의 관절과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옆에서 작업하는 사람과 부딪치면 자동으로 정지된다. 내구성도 좋을 뿐만 아니라 안전망도 필요 없다. 듀아로의 가격은 280만 엔(2884만 원)이다. 비정규직 1년 차(생산직 평균) 연봉 240만 엔과 정규직 연봉 350만 엔의 중간이다. 1년 365일 가동하면 노동자 3명 몫의 일을 한다.

‘스탠(Stan)’은 공항 주차장에서 탑승객의 차를 안전하게 들어 올린 뒤 알아서 빈 주차 공간에 차를 세워주는 발레파킹(대리주차) 로봇이다. 프랑스 벤처 기업 스탠리 로보틱스가 설계·개발한 이 로봇은 탑승객들이 공항 주차장 입구에 있는 ‘드롭오프 존’에 차를 세우고 발레파킹을 요청한 뒤 탑승 수속을 하러 가면 알아서 주차를 해준다. 군용급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의 도움으로 고객 차량 크기를 완벽하게 스캔해 같은 공간 안에 3분의 1 더 많은 차량을 안전하게 세울 수 있다. 지난해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5개월간 진행한 시험 운용 결과, 탑승객들이 로봇이 발레파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오는 8월부터 3개월간 영국 런던 개트윅공항에서 이 로봇이 시험 운용된다. 조만간 로봇이 발레파킹 하는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하다.

◆로봇 시장, 연평균 20% 성장 전망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글로벌 로봇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로봇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미국의 IDC는 세계 로봇 시장 규모가 2016년 915억 달러(102조 원)에서 2020년 1880억 달러(210조 원)로 연평균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공장 자동화 등에 주로 쓰이는 산업용 로봇은 2020년 사상 최초로 누적 보급 대수가 300만 대에 이를 전망이다.

국제로봇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 IFR)은 “디지털화와 빅데이터를 통한 로봇 생산 체계의 고도화, 인간과 로봇의 공동 작업을 통한 유연 생산 공정 확대 등에 힘입어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면서 “산업용 로봇의 누적 보급 대수는 올 연말에 이르면 230만 대를 웃돌 것이다”고 분석했다.

로봇 시장은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 시장으로 구분된다. 서비스 로봇 시장은 가정용 로봇 청소기, 교육용 로봇 등 일반 서비스 로봇 시장과 물류·의료·국방·필드 로봇 등의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으로 나뉜다. 현재 로봇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산업은 물론 전기와 전자, 금속, 식음료 등 산업계 전반으로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또 물류 로봇, 의료 로봇 등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의 경우 일본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스위스와 독일이 2위와 3위를 다투고 있다. 특히 일본 최대 산업용 로봇 업체인 화낙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유명한 회사다. 스마트폰의 금속 외관을 다듬는 절삭 로봇(robomachine) 분야는 80%, 온갖 물건을 만들어낼 때 쓰이는 수치제어공작기계(numerical control machine tool) 분야는 60%, 무인 공장의 필수 요소라고 평가받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선 20%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생산하는 로봇의 80%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독일의 쿠카(Kuka), 스위스의 ABB와 함께 산업용 로봇업계를 삼분하고 있다.

애플과 폭스콘은 아이폰 생산 공장에 화낙의 절삭 로봇을 10만 대나 도입했다. 삼성전자도 알루미늄 유니보디(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어낸 외관)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위해 화낙의 절삭 로봇 2만 대를 구매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모터스도 무인 공장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화낙의 로봇을 대거 구매했다. 글로벌 다국적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생산 효율성 향상과 공장 자동화를 위해 화낙의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 93) 화낙 창업자 겸 명예회장은 ‘로봇 장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 우물만 판 세계적인 엔지니어다. 로봇 기술 연구 외길만 걸어온 이나바 명예회장의 철학에 따라 화낙은 전체 직원들 가운데 30%가 연구·개발(R&D) 인력이다. 화낙은 또 로봇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 왔다. 화낙 직원들은 외부와 이메일조차 주고받을 수 없다. 직원과 기술자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사실상 종신고용을 보장하고 있다. 일본은 화낙을 비롯해 가와사키 중공업, 야스카와 전기 등 세계 굴지의 산업용 로봇 업체들을 보유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산업용 로봇 제조 국가가 됐다.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일본을 적극적으로 추격에 나서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글로벌 최대 산업용 로봇 시장이지만 자국 업체의 경쟁력 부족으로 인해 외국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로봇의 핵심 부품과 첨단 부품을 중국산화해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산업용 로봇 기술력은 일본의 76% 수준으로 대부분 업체들이 본체 제조 및 조립 단계에 집중해 있으며 핵심 부품의 경우 주로 일본 등 글로벌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외국의 산업용 로봇 업체들을 인수·합병(M&A)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가전 업체 메이디(美的, Midea)의 독일 산업용 로봇 업체 쿠카 인수를 들 수 있다.

쿠카는 독일 최대 로봇 업체다. 메이디는 쿠카를 인수할 당시 독일 본사와 공장, 일자리를 2023년까지 7년 반 동안 보장했다. 메이디는 또 2017년 이스라엘 로봇 부품 및 자동화 업체 서보트로닉스(Servotronix)를 인수했다. 메이디의 로봇 사업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메이디와 쿠카는 중국에 3개의 합작사를 설립했으며 새 로봇 생산 공장도 세웠다. 메이디의 목표는 앞으로 중국 최대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인건비 급등에 대비하고 선진국 제조업체들에 비해 부족한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로봇 도입과 공장 자동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로봇 산업의 지난해 시장규모는 87억 달러로, 2013~2018년 연평균 성장률이 29.7%에 달한다. 특히 전체 중국 로봇 시장의 71%를 차지하는 산업용 로봇의 성장세가 무섭다. 산업용 로봇 시장은 2017년 51억 달러에서 지난해 62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0년 93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여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이 가격 매력에 기술력과 품질까지 확보한다면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산업용 로봇의 트렌드는 지능형 시스템 구축과 플랫폼 선점으로 요약된다. 기존의 산업용 로봇에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이 접목되며 고도화된 지능형 로봇 시스템에 의한 스마트 팩토리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시장을 선점한 일본의 산업용 로봇 업체들이 앞으로도 시장점유율을 상당 기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등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 산업 급성장, 주도권 다툼 치열
◆로봇 산업, 물류·의료 등으로 확산

특히 로봇 산업에서 주목할 분야는 전문 서비스 로봇이다. 전문 서비스 로봇이 전체 로봇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을 기준으로 10% 수준에 그치지만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류 로봇이다. 물류 로봇은 각종 물품의 분류에서부터 포장, 적재, 운반, 이송이란 물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일련의 로봇들을 지칭한다.

물류 작업은 지정된 상품을 골라내 포장하고 최종 목적지로 운반하는 일련의 동작들에 의해 이뤄진다. 현재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된 물류 로봇들은 공정별 작업과 역할 등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명칭으로 불린다. 대형 트레일러나 택배 트럭 등의 차량에 물품을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로봇은 상·하역 로봇이다. 물품 이동을 전담하는 것은 운반 로봇, 창고 내 보관용 선반에 물품을 적재하거나 적재된 물건을 다시 골라내는 것은 피킹 로봇, 보관 창고의 선반이나 소매 매장의 판매대에 진열된 물품 내역을 조사하는 것은 재고관리 로봇이 맡는다. 가정 등 최종 목적지로 물품을 배송하는 역할은 운반물의 크기, 무게, 거리에 따라 배송용 드론, 소형 화물용 배송 로봇, 대형 화물용 자율주행차량 등이 담당한다.

세계 물류 로봇 시장 규모는 2017년 10억 달러에서 2025년 186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앞 다투어 물류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의 경우 올 초부터 택배 배달 로봇 ‘스카우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은 스카우트 6대를 운용, 워싱턴주 시애틀 북부 외곽에서 35㎞ 떨어진 스노호미시 카운티까지 택배 시범 배송을 하고 있다. 성인 무릎 높이의 소형 냉장고 크기의 스카우트는 사람이 걷는 속도로 인도를 따라 주행하면서 보행자나 반려동물을 피해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설계됐다. 시범 배송 기간에는 직원을 동행시킨 가운데 평일 낮 동안에만 이뤄진다. 아마존은 스카우트 시범 운영 성과에 따라 ‘배달 로봇 시스템’ 확대를 결정할 방침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닷컴도 지난해 베이징, 시안, 톈진과 중국의 미래 도시로 불리는 슝안신구 등에서 근거리 배송 로봇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다.

전문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의료 로봇의 성장도 상당히 기대된다. 의료 로봇 중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수술용 로봇이다. 로봇 기술이 발달하면서 복잡한 수술에서도 로봇 활용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술용 로봇은 카메라와 로봇 팔로 구성된 오퍼레이션 파트가 수술을 진행한다. 의료진은 카메라가 촬영한 3차원(3D) 고화질 화면을 보면서 콘솔 박스로 로봇을 제어한다. 초기 수술용 로봇은 흉터가 작게 남는 수술에 주로 쓰였지만, 최근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복잡한 수술에도 쓰이고 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심혈관 질환에서 수술용 로봇이 크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예방본부가 2017년 전립선암 82%는 로봇 수술로 진행됐다고 밝힐 만큼 수술용 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복강경 수술 로봇 ‘다빈치’가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구글 알파벳, 존슨앤드존슨 등 미국 기업들이 인튜이티브서지컬을 바짝 뒤쫓고 있다. 아무튼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로봇들이 앞으로 인간을 대신하면서 각종 산업과 실생활에서 ‘필수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