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래리 페이지, 스티브 첸, 엘런 머스크는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실리콘밸리의 주역이 됐을까. 이민정 한국미래교육협회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단순 성적이 아닌, 우수한 창업가들의 원동력인 기업가정신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주창하는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에 대해 들었다.
jtbc 드라마
“선생님,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뿐만 아니었다. 부모의 바람대로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막막하기만 한 미래를 걱정하며 우울증을 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해 온 입시 지도에 의구심이 들었다. 급변하는 사회,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세상에서는 성적으로 한 학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입시 생존이 아닌 세상에 맞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자녀가 시험 잘 쳐서 좋은 대학에 가기만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점수로 서열화하다 보니, ‘공부만 잘하는 바보’가 되는 아이들이 많아져요.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 90%는 진로 상담을 하러 만났다가 인생 상담으로 흘러요. 그만큼 갈피를 못 잡는다는 거죠.”
◆20년 차 입시 강사,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에 눈떠
이민정 대표는 우연히 아이비리그 입학설명회에 참석했다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아찔한 경험을 했다.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야성’과 ‘자생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과정이 바로 미국 스탠퍼드대의 창업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과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등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한 최고경영자(CEO)들이 받은 교육법을 분석해보니 스탠퍼드대에서 가르치는 창업 이론과 거의 유사했다. 그 중심에는 하소플래트너디자인 연구소, 일명 ‘디스쿨’이 있었다.
“입시 컨설팅을 그만두고 스탠퍼드대의 디스쿨 교육과정을 토대로 국내 교육 환경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했어요. 한국형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이 탄생한 거죠. 아이의 창의력, 타인과의 소통 능력, 팀워크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역할 분담, 정보 공유, 의사결정,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기존 창업교육이 아이디어의 시장성을 분석하고, 지식재산을 평가받고, 투자를 끌어내는 전문 영역이었다면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은 ‘마인드 교육’에 가깝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누구나 창업가와 같은 마음가짐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일에 맞닥뜨리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즉,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창업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죠. 창업교육의 장점은 나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조금 더 자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특히, 생각을 ‘실현’해보는 과정이 중요한데, 작은 것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놓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의 시작이죠.”
디스쿨의 창업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은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창조성-혁신과 같은 과정을 거쳐 기업가정신에 도달하도록 한다. 이는 어떤 일에도 접목시킬 수 있다.
가령, 용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한다면 어떤 도움도 되지 않지만 능동적인 자세로 임하면 날마다 왜 매출이 다른지, 날씨·조명·진열 방법에 따라 매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캐치할 수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나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맞는지 실험해본다. 이 과정에서 나온 나만의 문제 해결법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한다. 이 단계의 반복을 통해 기업가정신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두 딸에게 ‘공부하라’ 대신 ‘사업가라 생각해라’
이 대표는 자신의 연년생 딸들에게 적용시켜보았다. 그가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을 연구하던 당시 큰딸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대 진학을 준비 중이었고, 둘째는 특목고에 재학 중이었다. 두 아이와 입시를 동시에 치르면서 이 대표와 딸들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보다 ‘너희들이 사업가라고 생각해보라’는 말을 더 많이 했어요.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사업가로서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시켰죠. 고객이 있다고 가정해 코스도 짜보고 무얼 해야 의미를 남길 수 있는지 고민하라고요. 특히 자신들의 용돈을 쓸 때 더 강조하는 편인데,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비용도 아끼고 훨씬 많은 것을 배우게 되더군요.”
지독한 사춘기를 겪은 아이들은 무엇이든 해보고 스스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큰딸은 스탠퍼드와 가장 유사하다는 캐나다 워털루대에, 둘째딸은 스탠퍼드 교육법을 적용시킨 성균관대에 진학했다.
“멘탈이 약한 편이었던 첫째는 창업교육을 하며 지향점이 확고해졌어요. 대학에 진학해서는 퍼포먼스가 좋아졌죠.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큰딸은 학부 1학년 때 글로벌기업 D사에서 인턴을 하는 흔하지 않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아이들은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엄마와 함께 공부했던 창업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이야기해요. 이후에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보며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는 확신이 들어 책까지 내게 됐죠. 아이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건물보다 나은 유산을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장수기업 되려면 2세에게 창업교육 필수
전국 초중고교를 돌며 강의한 지 올해로 4년째.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을 들은 학생 수가 연간 수천 명에 달한다. 입시교육을 하면서는 성적으로 아이의 미래를 속단한 적도 꽤 있었다는 그는 창업교육을 하며 전에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가치와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한 중학교에서 세계무역 게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공부로 전교 1등하는 아이가 팀에 참여했다. 이 게임은 협력하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도록 고안됐는데, 그 학생이 남의 팀끼리 협상하는 것까지 번번이 개입해 이간질했다. 순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인성적으로도 훌륭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이렇듯 교육을 해보지 않고는 누가 훌륭한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또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장의 평가가 냉정하다는 것과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내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결과를 잘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 타인을 새롭게 보게 되거든요.”
이 대표는 이런 이유로 보다 많은 기업들이 2세들에게 창업교육을 실시해 장수기업으로 가는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가들의 도덕성과 인성은 갈수록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습니다. 유치원생들조차 할아버지 재산에 의해 권력이 형성되는 대한민국에서 어느 사주 손자의 ‘갑질 사태’가 이상한 일만은 아니죠.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을 통해 동료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자기 시야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잣대도 이해해본다면 인성이 올바른 아이로 길러낼 수 있죠. 기업가정신은 덤입니다.”
이민정 대표는…
1972년생. 경희대 수학과, 단국대 지식벤처대학원 졸업, 현 한국미래교육협회 공동대표(스탠퍼드식 창업교육 전문가), 융합교육연구소 3DTS 대표, 한국평생교육원 창업과정 전임 교수
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