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육장에서 만난 중년 남자는 자신의 지루 증상에 대해 물어 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아내와의 섹스에서 ‘사정을 못하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지루증은 사정이 잘 안 되는 증상이다. 나이가 들어 귀두의 예민도가 떨어진다든지, 귀두가 딱딱해지는 경화증 같은 육체적인 문제가 지루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파트너와의 관계에 있어서 분노나 미움 같은 심리적인 문제가 지루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루증을 가진 남자들은 처음엔 ‘내 성 능력이 출중해서 오래 한다’고 자신을 위안하지만, 점점 ‘안 하는 것’이 아닌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지루 증상을 알게 되면 점차 섹스를 피하게 되고, 좌절감과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성 파트너에게 자신이 없어지고, 당연히 정서적인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섹스의 장에서 길게 하는 것을 능력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루증은 환자들이 병원에 자신의 증상을 가지고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어 효과적인 치료법이 별로 없다.
보통 지루증은 심리적인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지금까지 이야기되지만, 분명히 육체적인 부분에서도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 짐작된다. 20세기 초 몸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있기 전에 대개 성적인 문제들이 심리학연구실에서 다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지루증 환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전문의들을 찾아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는다면 분명 의학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다.
◆섹스는 쾌락일까, 관계일까
어쨌든 본인이 ‘지루’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기에 일단 비뇨기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고 오도록 권했다. 그랬더니 병원에서도 심리적인 원인인 것 같다고 심드렁하게 진단했다며 다시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아내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부부 동반 상담 치료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가 다른 사람하고는 사정에 별 문제를 못 느꼈습니다. 그러니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사실 아내와의 섹스에서만 사정이 안 되는 거니까요.”
“전에 잠자리를 하다가 아내가 자기 친구를 불러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는데, 그건 어떨까요?”
“졸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이 사람뿐 아니라 적지 않은 남자들이 발기가 잘 안 된다거나 강직도가 전만 못하다거나 사정이 잘 안 되는 등의 성적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병원을 찾기보다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자가진단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파트너의 매력이 떨어졌다든지, 너무 익숙해져서 흥분이 안 된다든지 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또 대개는 새로운 파트너와의 섹스에서는 고민했던 증상이 나아지는 것을 발견하고 파트너 탓을 하면서 새로운 짝을 찾는 것을 합리화한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오랜 역사를 일정한 파트너와 짝을 이뤄 자신들의 자녀를 키우며 살아왔음에도 진화생물학적인 수컷의 본능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지만 어쨌든 남자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면 활력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섹스를 나누면 감정이 흐른다
결국 그 역시 지루증의 치료를 다른 사람과의 더욱 자극적인 섹스를 통해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 부부는 이미 성인이고, 서로 동의한다면 어떤 섹스도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사회의 성에 대한 윤리는 이미 개인의 성의식, 성가치관에 우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문가로서 의견을 피력한다고 한들 둘이 동의하고 결정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일단 다자간의 섹스는 안전한 섹스를 보장할 수 없다. 그러한 일회성 섹스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성병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높다. 대부분의 성병이 의학적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잘 치료되고 있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성병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무엇보다 결혼을 했든 아니든 일정한 파트너가 있는 사람이 관계 밖의 사람을 끌어들여 섹스를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심각하게 우려되는 행위다. 왜냐하면 섹스는 단순히 몸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몸과 그 몸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정신적 부분인 마음이 만나는 통합적 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섹스를 나누게 되면 감정이 흐르게 된다. 만약 멋진 섹스였다면 더욱 자주 섹스를 하게 될 것이고, 어떤 방식의 알아감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알아갈수록 섹스의 경험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반복되면 더욱 감정이 많이 흐르고 친밀감, 신뢰, 소유욕 등 다양한 감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관계는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기사화되는 ‘스와핑’은 ‘파트너 교환 섹스’다. 물론 사람에게는 노출증과 관음증의 심리가 본능적으로 내재하기 때문에 특히,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자신의 파트너를 보면서 흥분과 질투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강한 시각적 자극을 불러오며 쾌락의 중추를 더욱 자극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파트너를 교환해서 얼마나 성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럴 때 섹스는 마약과 같다. 섹스의 여러 미덕 중 단순히 쾌락만을 추구한다면 끝없는 황홀한 자극을 찾아 점점 빠져 들게 된다. 시작은 호기심으로 하지만 점점 더 환각 효과가 큰 마약을 찾고, 결국 영혼과 몸이 망가지는 마약 중독처럼 섹스 중독도 다르지 않다.
성적 판타지는 얼마든지 어떤 방식으로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시킴으로써 가장 소중한 관계를 깰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빨간불은 켜졌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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