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리부팅② 금융권, ‘소통 공간’ 업그레이드 한창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각 사 제공] 노르웨이 출신의 글로벌 통신 업체 텔레노어(Telenor)는 사무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냈다.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칠’ 기회가 늘어나게 공간을 설계하면, 지식과 아이디어 교환이 늘어나고,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며, 심지어 매출이 20% 가까이 늘어나는 보고도 나왔다. 국내 금융사들도 애자일 혁신의 인프라로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업그레이드 중이다.
현대카드는 2018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옥의 사무실 2개 층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른바 ‘애자일 오피스’를 구현한 것이다. 디지털 인력을 대거 보강하고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데이터 사이언스 등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금융업을 하는 ‘테크핀(techfin)’ 기업을 지향하는 만큼,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 컬처’를 이식하기 위해 업무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직원들의 소통을 강화하는 업무 환경은 일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기업의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향후 사내 다른 사무 공간도 이와 같은 ‘애자일 오피스’로 바꿔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가장 큰 변화는 책상을 가로막는 칸막이를 없앤 것이다. 따라서 언제든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굳이 회의실로 찾아갈 필요도 없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설치해 간단한 의견 교환을 위한 회의는 책상을 올린 채 그 자리에 서서 진행한다. 사무실 벽은 모두 화이트보드 처리해 벽이 더는 막힌 공간이 아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게 했다. 긴 시간 회의실을 점유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의실은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벽을 투명하게 설계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공간 활용을 위해 직원들은 노트북을 사용한다. 퇴근 시에는 사물함에 자신의 노트북을 넣어 놓고, 출근하면 자신의 노트북을 찾아다 원하는 자리에서 일하면 된다. 휴게 공간은 확장했다. 더 많은 직원이 어울려 소통할 수 있도록 작은 테이블 3개 정도가 들어가던 휴게실 크기를 대폭 확장했다. 모두가 대부분의 공간을 공유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음악 감상과 게임 등을 하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현재 이 공간은 신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N본부 소속 직원들과 디지털 인력 일부가 사용하고 있다.
공유 오피스 등 다양한 혁신 실험
현대카드는 최근에는 직접 공유 오피스를 만들어 직원들이 젊은 창업자나 지역사회의 인재와 호흡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서울 강남에 직접 ‘스튜디오 블랙’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주요 신사업을 추진하는 디지털 인력들이 나가 일하게 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가 절실한 직원들이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가까이서 일하면서 이들과 교류하면, 회사 안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 많이 쏟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2017년 서울 중구 을지로 신사옥 시대를 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무 공간을 만들어냈다. 프로젝트 중심의 셀(cell) 조직이 내외부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했다. 지정좌석이 없는 자율좌석제, 클라우드 개인용컴퓨터(PC) 환경 등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층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집중실’과 자유로운 휴식과 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 ‘하나라운지’를 설치했고, 스마트워크센터가 있는 도서관에서는 필요한 자료 검색 및 노트북으로 자유롭게 업무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기존 은행 시스템 내에서 셀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IT 인프라나 규정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 여러 부서의 이해와 도움이 중요하다”며 “신축 본점에서 시행하고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오피스, 좌석변동제도 직원의 자리를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셀 조직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오렌지라이프의 사무 공간도 유연한 소통의 확대를 위한 칸막이를 없앴다. 하지만 현대카드의 ‘애자일 오피스’나 하나은행의 ‘스마트오피스’처럼 자율좌석제는 도입하지 않았다. 천지원 오렌지라이프 애자일 코치는 “고정된 자기 자리가 주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대신 직원들 간 소통이 촉진되도록 오픈된 공간을 다채롭게 비치했다.
알록달록 푹신한 쿠션들이 놓인 회의 공간(inspiration area)에는 커피머신은 물론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레고블럭존도 갖춰져 있다. 다수의 인원이 모일 때면 계단에 빙 둘러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긴장감 있는 회의 진행을 위한 스탠딩 회의실도 구비했다. 특히 수시로 2~3인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사무실 곳곳에 미니 회의 테이블까지 배치됐다.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메모들이 붙어 있고, 보드판도 마련돼 있다. 굳이 회의실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그때그때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촉진하도록 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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