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런 논쟁과는 별개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혁신 기술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통상적 개념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으며, 기존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으로 혁신시켜 나가는 것이라 설명하곤 한다.
혁신 성장의 모습은 눈부시다. 중국의 경우 이미 의사를 보조해 AI로봇이나 원격 의료 시스템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대형 호텔은 물론 편의점 등 일반 매장에서도 AI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중대 이벤트가 있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가 세계 최초로 5세대(5G) 전파 송출에 나선 것이다. 5G는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이라는 3대 특성으로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길 핵심 기술로 꼽힌다.
정보 처리 속도가 기존 4G(LTE)보다 20배 빠르고, 연결할 수 있는 기기들도 10배 이상 늘어난다. 특히 5G는 4차 산업혁명의 신산업으로 꼽히는 드론과 자율주행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 지연 속도가 종전 0.01초에서 0.001초로 줄어들다 보니 운행 중 사고 위험도 크게 줄어든다. 시속 100km로 주행 중인 자동차의 경우 위험 감지부터 멈춤까지 최단 3cm까지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레벨 5’ 수준의 완전자율주행을 둘러싸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5G에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이 융합될 경우 가상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정보 공유가 가능해 시공간의 벽이 크게 허물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혁신 스타트업 봇물…체감도는 ‘미미’
이러한 혁신 기술은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소자본이지만 아이디어로 승부해 많게는 수조 원의 기업가치를 일군 기업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민 핀테크(FinTech) 서비스’로 성장한 토스(Toss)는 지난 2015년 국내 최초로 공인인증서 없는 간편송금 서비스로 출발해 계좌·카드·신용·보험 등 조회 서비스, 입출금계좌·적금·대출 등 뱅킹 서비스, P2P(Peer to Peer)·펀드·해외 주식 등 투자 서비스 기능을 더하면서 누적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금융 혁신을 바탕으로 2017년에는 세계 핀테크 기업 35위에 선정되기도 했고,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국내 핀테크 기업 최초로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국내 1위 차량 공유 업체인 쏘카(Socar) 역시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축인 ‘공유경제’의 대표주자로 꼽히며, 출범 7년 만에 기업가치 7000억 원의 차기 유니콘 후보로 급부상 중이다. 이외에도 보험 상품의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핀테크 기업 ‘보맵(Bomapp)’은 서비스 출시 1년 반 만에 100만 가입 고객을 돌파하며 인슈어테크(insurtech) 시장의 혁신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VR·AR 기반의 공간데이터 플랫폼인 어반베이스(Urbanbase)는 국내 가전 및 가구 업체들과의 기술 제휴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과의 기술 협업도 추진 중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런 크고 작은 혁신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의 체감도는 크지 않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인터넷 포털 등에서도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의 혁신이라는 키워드와 성공을 위한 지향점에 대해 알쏭달쏭해하고 있다.
1세대 미래학자로 꼽히는 제임스 데이터(James Dator) 교수가 한·중·일 3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서울 시민의 용어 인지도는 96.1%로 압도적 우위를 나타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체감도는 27.2%로 현저히 낮았다. 반면 베이징 시민의 용어 인지도는 79.7%로 서울 시민보다 낮았지만 체감도는 63.7%로 2배에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이는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의 혁신 속도와 그 결과물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15년, 4차 산업혁명의 모태가 된 독일의 ‘인더스트리(Industry) 4.0’을 벤치마킹해 ‘중국 제조(made in China) 2025’를 발표하고 로봇 국산화 등을 포함한 3단계 발전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일본 역시 이보다 앞선 2013년 ‘세계 최첨단 ICT 국가 창조선언’을 통해 IoT, 빅데이터, AI, 로봇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201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야 ‘4차 산업혁명’이 주요 화두로 등장하며 대중적 인식이 높아졌다. 여기에 정부의 각종 규제와 신기술을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갈등 탓에 일상생활에서 체감 가능한 실질적 결과물조차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면서 ‘일자리 상실’에 대한 공포 분위기만 사회 저변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아이디어’ 기반의 혁신 기술…“실행력 뒷받침 돼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은 결국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5G 등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신기술 역시 과거에는 특정 계층만 향유할 수 있는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동일한 혜택이 제공되고 있다는 것. 토스의 핀테크 서비스와 자산관리(WM) 시장에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역시 부유층에만 허용되던 혜택이 대중 서비스로 확대된 사례다.
동일한 맥락에서 스타트업을 비롯해 미래학 전문가들은 직업 상실의 두려움보다 가까운 미래에 새로 생겨날 직무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는 “어반베이스의 3차원(3D) 구현 속도를 접한 건축가들은 탄성을 자아내면서도 직업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며 “하지만 기술의 변화는 또 다른 비즈니스를 만들어낸다. 도면은 과거 수천 년간 존재해 왔지만 지금은 AR·VR는 물론 보안, IoT, 군사훈련, 프롭테크(proptech)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수많은 산업을 형성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신산업 쪽에서는 ‘전문가가 없다’며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고, 일반 취업 시장은 실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쏟아낸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혁신적 아이디어는 강력한 실행력이 뒷받침 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류준우 보맵 대표는 “저 역시 창업 초기에는 머릿속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애플리케이션 개발 과정은 아이디어가 기획자에게 전달되고, 기획자는 개발자들에게 문서화된 형태로 전달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창업 의도가 녹아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앱 관련 스타트업에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접해보고 기획자와 개발자들과의 소통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배웠다”며 “단순히 내 아이디어가 어떻게 앱에 비춰질까에 대한 막연한 생각보다는 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거기서부터 실행력은 발생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규제라는 높은 벽…혁신 성장 성공 해법은
물론 혁신적 아이디어와 실행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담론에서 간과할 수 없는 개념이 바로 ‘규제’다. AI를 비롯해 자율주행, 드론, 핀테크 등의 혁신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앞바퀴라면 규제 완화는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는 뒷바퀴다. 규제 완화 없는 혁신 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주변국에 비해 유독 관련 규제가 촘촘한 편이다. 이미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운영 중인 우버(Uber)는 지난 2013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정부 규제를 이유로 2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2018년 말 기준 우버의 기업가치는 12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소득 주도 성장과 함께 혁신 성장을 경제정책의 양대 축으로 삼고 있지만, 혁신 기술을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갈등에 가로막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핀테크 산업 역시 금산분리 규제 등으로 인해 헛바퀴만 도는 형국이다. 국내 최대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자리매김한 카카오뱅크의 경우 문을 연 지 1년이 넘었지만 기존 은행의 인터넷뱅킹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소유 규제(은산분리 원칙)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는데, 출범 1년이 다 돼서야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개정됐다. 증권 거래 앱(카카오스탁) 역시 비대면 투자일임계약이 금지됐다가 겨우 조건부 허가를 받은 상태다. 이런 규제 리스크는 핀테크 확산 속도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인 언스트앤영이 발표한 ‘2017년 핀테크 도입지수’에서 한국의 핀테크 이용률은 3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70%에 육박하는 중국(6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인도(52%)는 물론 브라질(40%), 멕시코(36%)보다도 낮다. 반면 세계 핀테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지난 2008년 일찌감치 비금융 회사의 금융사 설립을 허용했고, 2014년부터는 비금융사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도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혁신 기술 상용화를 위해서는 해외 시장부터 공략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양대 포털 업체인 네이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온라인 기반 대출, 증권보험 및 투자 상품 판매, 가상화폐거래소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해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진출도 계획 중이다. 앞서 언급된 5G 역시 이미 상용 전파가 송출됐지만 마땅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반면 중국 화웨이는 5G 원격 수술 솔루션을 개발해 시범 서비스에 나서는 등 중국 정부의 기술 굴기를 주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석유’라 불리는 데이터 산업 역시 갈 길이 멀다. 현재 국내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정부의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데 이마저도 이용자로부터 사용 동의를 받아야 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최근 들어서야 가명 정보를 사용자 동의 없이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왔지만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박상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정보연구본부장은 최근 열린 ‘아시아 미래 AI포럼’에서 “AI 시장은 승자 독식인데 사용자 데이터를 차지하는 기업이 시장을 차지한다”며 “그런데 한국은 어렵사리 모은 데이터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기술 혁신들이 쏟아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기에 성공의 지향점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경제지인 이데일리의 ‘목멱칼럼’을 통해 “국가는 효율 성장의 단순계를 지나면 혁신 성장의 복잡계로 들어서게 된다”고 지적하며 “효율 성장은 단순한 기계적 과정이다. 성공은 좋은 것이고 실패는 나쁜 것이다.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 성장은 창조적 파괴 과정이다. 성공의 기댓값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조적 파괴’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미래에 이뤄야 할 성공 키워드를 정한 뒤 이를 완성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깨어 나가는 상당한 실패와 노력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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