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밝았다. 새해 첫날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갈망하면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과 바다로 찾아가거나 요즘에는 마천루 옥상까지 올라간다. 특히 2018년은 나라 안팎의 대형 악재와 경기까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우리 국민이 겪은 고통이 심했던 만큼 새 희망을 기원하는 마음은 그 어느 해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기해년 첫날부터 어둡다. 2018년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휘둘렀던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마찰이 미완성 과제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미·중 간 무역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아르헨티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일정대로 유예 기간을 거치고 있지만 기대와 달리 더 강경해지고 있다.
미·중 간 무역 마찰이 햇수로 3년째를 맞는 2019년에 가장 우려되는 것인 세계가치사슬(GVC)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세계 교역과 경기를 좌우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탄성치(세계교역증가율÷세계경제성장률)에서 GVC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처럼 대외 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타격이 예상된다.
경기 순환상으로는 2019년에는 지난 2009년 2분기 이후 10년 동안 지속돼 왔던 세계 경기 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고 침체 국면에 진입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세계은행(WB), 경제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세계 3대 예측기관은 2019년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그 폭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일수록 더 크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3대국 경기는 2018년 3분기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진단과 예측에 있어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받는 OECD의 복합경기선행지수(CLI)를 보면 3대국 모두 2018년 4분기 이후 ‘100’을 밑돌고 있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면 경기가 침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경기는 ‘2020 대선’ 직전 분기인 2019년 4분기에는 1.6%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전후 최장의 호황 국면은 다음 회복 기회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 어렵게 2%대에 진입했던 유럽과 일본 경제 성장률도 1%대로 퇴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성장했던 세계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 가장 우려되는 것이 ‘애프터 쇼크(after shock)’ 혹은 ‘애프터 크라이시스(after crisis)’ 문제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 소득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여건에서 ‘빌리기는 쉬어도 갚기를 주저하는’ 빚의 속성상 단기간에 줄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많은 기관이 2019년에 가장 경계해야 할 변수로 꼽고 있는 애프터 쇼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로버트 워더머, 데이비드 위더머, 신디 스피처가 공동 출간한 <미국의 버블경제>라는 책에서 미국 경제는 부동산, 주식, 민간부채, 소비지출, 달러, 정부부채라는 6개의 버블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애프터 쇼크의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가는 세계 경제의 지속 가능 과제인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게 한 구조가 얼마나 변화(paradigm shift)됐는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의해 주도돼 왔으나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와야 애프터 쇼크의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다.
세계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민간소비는 일시적인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보다 임금이 지탱해줘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각국의 일자리 창출 노력 등으로 양적 고용지표인 실업률은 속속 떨어지고 있지만, 노동생산성, 임금상승률 등 지속 가능한 민간소비를 지탱할 수 있는 질적 고용지표의 개선 추세는 여전히 미약하다.
국수주의와 이기주의 움직임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가 간 협력과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2019년 출발부터 카타르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한다. 곧이어 3월 말에는 2016년 6월 이후 2년 이상의 난항을 끝내고 영국이 유럽연합(EU)을 공식적으로 떠난다. OPEC와 EU는 50년 이상 역사를 갖고 있는 공동체 모임이다.
신흥국은 인구 대국인 인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나아지리아까지 합쳐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새 정부 구성을 위해 선거를 치른다. 2019년 4월에 치르는 인도 선거에서는 2014년 집권 이후 연평균 성장률 7% 이상의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의 연임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달 치러지는 인도네시아 대선에서는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의 연임은 낮은 경제 성과와 금융시장 불안으로 난항이 예상된다. 가장 관심이 큰 중국 경제는 미국과의 무역 마찰 부담에다 과다 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 등 3대 회색 코뿔소 문제로 2019년 성장률이 6%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기관은 내다보고 있다. ◆‘슈퍼 달러’ 시대 도래할까
1994년 이후 21년 만에 재개돼 지난 3년 동안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던 미국과 다른 국가와 따로 노는 ‘대발산(Great Divergence, GD)’이 2019년에는 더 확대될 것인지 아니면 축소될 것인지도 국제 간 자금 흐름과 달러 가치, 각국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 움직임과 관련해 예의 주시해서 지켜봐야 할 변수다.
미국 중앙은행(Fed)는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2014년 10월 말 양적완화(QE) 종료에 이어 이듬해 12월부터 금리를 인상해 오고 있다. 출구전략이란 금융위기로 흐트러졌던 비정상 국면을 정상 국면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푸는 것’보다 ‘회수하는 것’이 더 어려운 통화정책 관행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같은 시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고 양적완화 시한을 연장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도 빼놓지 않았고 그 후 필요할 때마다 실행에 옮겨 왔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행(BOJ)도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도입해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달러 정책도 출범 초 약달러 정책은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2018년 3월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취임 이후 강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 신흥국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2 루빈 독트린’이라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18년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국가가 많을 정도로 신흥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8년 3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 그해 6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터키 등 중동 국가, 그해 9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 가지 기대해볼 만한 건 Fed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Fed가 추가로 금리를 올려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되면 미국과 신흥국 모두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슈퍼 달러 시대를 초래했던 GD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 갈라파고스 함정 벗어나야
2019년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한국과 같은 대외 환경에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지 못하면 세계 흐름에는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갈라파고스 함정이란 세계 흐름과 동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사례는 의외로 많다. 정부의 역할이 세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으나 한국은 2019년도 슈퍼 예산이 상징하듯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 대비 ‘소득 주도 성장(성장과 분배 간 경계선 모호)’, 제조업 정책은
‘리쇼오링’ 대비 ‘오프쇼오링’, 기업 정책은 ‘우호적’ 대비 ‘비우호적’이다. 규제 정책은 ‘프리 존’ 대비 ‘유니크 존’, 상법 개정은 ‘경영권 보호’ 대비 ‘경영권 노출’, 세제 정책은 ‘세금 감면’ 대비 ‘세금 인상’, 노동 정책은 ‘노사 균등’ 대비 ‘노조 우대’로 대조적이다. 명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부 정책 결정과 집행권자의 의식과 가치가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이 악화되는 점이다. 국가신용등급이 정체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는 선진국 예비명단에서 탈락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재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과 자금도 들어오지 않거나 빠져 나간다. 주한 외국 기업 단체는 각종 규제 강화 등으로 경영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연일 비판하는 가운데 실제로 철수하는 외국 기업이 늘고 있다. 2018년 내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은 매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같은 해 9월 중순 이후에는 순매도 금액이 5조 원에 이른다.
우리 기업과 돈, 그리고 사람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2018년 국적 포기자가 3만 명이 넘는다.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도 국내보다 해외에 투자하는 것을 더 선호하고 실행에 옮기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금융사도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모아서 글로벌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3대 공동화 현상’이다. 특정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과 돈, 그리고 기업이 몰려들어야 한다. 도넛처럼 핵심 중심부가 비어 있으면 대내외 변수에 취약하고 경기가 쉽게 불안해지는 ‘천수답 경제’가 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함께 세계 양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019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2.3%까지 내려 잡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수장으로 한 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급선무는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세계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1기 경제팀과 마찬가지로 ‘시간만 지나면 되겠지’ 하면서 경제정책과 운용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삶은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그때는 제2의 외환위기다.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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