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아닌 ‘멋진 선배’ 되는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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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좋은 약을 처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즉 건강 행동 변화를 잘 도와주는 의사가 정말 명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우리 마음엔 자유에 대한 욕구가 있어 아무리 좋은 권고라도 외부에서 변화를 요구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저항이 일어난다.

환자가 금연을 하도록 목청이 터져라 “담배 더 피면 큰일 나세요”라고 의사가 이야기하면 세게 권고한 만큼 담배를 덜 피워야 할 텐데, 의사가 세게 권고할수록 담배를 더 피더라는 황당한 결과가 있다.

행동 변화는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이슈인데, 부모가 자식을, 리더가 구성원을,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말로 쉽게 행동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나도 내 말로 내 행동 변화가 잘 안 일어나는데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진심 어린 나의 권고가 상대방에겐 피곤한 자극일 수 있다.

한 직장인의 사연이다. “꼰대를 욕하는 제가 점점 꼰대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내가 신입일 때는 말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처럼 부하 직원에게 잔소리가 늘어요. 이렇게 말하면 꼰대 같아 보일까 봐 참으면서도, 제가 싫어하는 상사처럼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게 변해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내 조언에 큰소리로 “잘 알겠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후배를 볼 때면 ‘내가 잘 살고 있고나’ 하는 뿌듯함이 찾아온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강렬한 후배의 긍정적 반응에 깔려 있는 진실은 ‘그만 좀 해라 지겹다’일 수 있다. 선배의 잔소리에 대한 빠르고 강한 긍정적 반응이 잔소리를 효과적으로 멈추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소통 기술임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뇌 안에 ‘시간은 없고 할 말은 많다’란 유전자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후배 입장에선 잔소리이지만 선배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하우를 알리고픈, 그래서 우리 인류의 생존을 지속시키고픈 거룩한 욕구가 담긴 조언이 잔소리인 셈이다. 본능은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후배일 때 잔소리가 싫었던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후배한테 긴 조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미워하면서 닮을 수 있다.

직장 선배의 잔소리가 너무 싫다고 의식적으론 생각하지만 선배를 미워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에 무의식적으로는 선배를 동일시하면서 닮게 된다. ‘나는 부모가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행동을 자신도 부모가 되니 하고 있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선배가 될수록 잔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그러나 배고프다고 다 먹으면 비만이 오듯 지나친 잔소리는 후배는 물론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고민이 좀 필요하다.

<어른의 의무>는 야마다 레이지라는 일본의 만화가가 10년간 일본 사회의 유명인 200명을 만나 인터뷰하던 중 마음으로 존경할 만한 어른, 즉 인생 선배들의 공통점을 찾게 됐는데 그 내용을 담은 책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난 척 하지 않고 어린 사람을 우습게보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꼰대가 되지 않고 자기 나잇값을 하는 존경받는 ‘어른의 의무’를 3가지로 제시했는데, 불평하지 않기, 잘난 척 하지 않기, 기분 좋은 상태 유지하기다.

불평하지 않기: 내 삶의 고민, 속상함을 누군가에게 불평하는 것, 공감 소통이고 힐링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선 상당한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는 일이다. 친한 친구나 배우자, 아내, 부모에게 불평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안아줄 여유와 힘이 있을 때다. 그러나 후배란 이유로, 삶에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고 합리화하며, 자신의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이런 선배를 만나는 후배의 마음엔 조언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지루함, 짜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음도 지치게 된다. 에너지를 뺏는 선배를 진심으로 따를 후배는 없을 것이다.

잘난 척 하지 않기: ‘내가 너희 때는 말이야’ 하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선배, 인기가 없다. 후배에게 잘난 척 하는 선배 마음엔 사실은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고 책에선 이야기하는데 그럴 수 있다. 그 열등감을 위로받고 싶어 후배에게 잘난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세대는 그 세대만의 역할과 장점이 있다. 후배가 한심해 보이는 것은 진짜 한심한 것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그 새로운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적응력이 떨어지는 선배이고 도태되기 쉽다. 후배라도 서로 배우는 자세가 지속 성장에 더 중요한 소통의 자세다.

기분 좋은 상태 유지하기: 감정은 전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저자는 내 기분이 실제 좋지 않더라고 후배를 만날 때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선배의 의무라고 한다. 선배도 사람이고 인생 빡빡한데 너무 어려운 요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후배들은 그런 선배를 따르기에 내 주변에 좋은 후배들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생기는 보상을 얻게 된다.

잔소리 많은 꼰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그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지만 멋진 선배가 되기 위해선 제법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