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부동산 사용설명서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초강력 규제를 담은 ‘9·13 부동산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태풍의 눈’에 들어갔다. 격랑에 휩쓸린 부동산 시장에서 내 집은 어떻게 지켜야할까.

“소강상태입니다. 대책이 나온 후 첫 주말에는 시장 상황을 조사하러 다녀간 고객이 몇 있습니다. 이번 주(9월 17일)부터는 전화 문의도 뚝 끊어졌습니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H공인 관계자

“양쪽 다 조용합니다. 매수·매도 문의 모두 없습니다. 가격 변동도 없고요.”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D공인 관계자

정부의 9·13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서울 주택 시장은 관망세로 접어들었다. 매도자는 급하게 팔아야 할 이유가 부족하고, 1주택자는 팔고 나서 다른 곳으로 갈아타기도 어렵고, 매수자는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심리가 팽배하다.

초강력 규제, 양극화 잡을까
[big story] 태풍 속 부동산, 자산관리 방향타는?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대출 규제를 들고 나온 ‘9·13 주택안정방안’의 골자는 투기 세력 근절이다. 서울 및 수도권(광명, 하남 등) 일부 조정대상지역에서는 2주택 이상부터 다주택자로 간주하고, 1주택이라도 고가 주택에 대해선 세율을 높였다.

예를 들면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 이상일 경우 시가 합산 30억 원(과표 12억 원)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종부세는 현재 550만 원에서 1271만 원으로 2배 이상 껑충 뛴다. ‘돈줄’도 틀어막는다. 1주택자라도 서울에서 ‘한 채 더’ 사는 경우의 대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자녀 분가, 부모 봉양 등 예외). 유주택들의 청약 시장 진입도 사실상 차단됐다. 청약가점제는 물론 추첨제의 경우도 무주택자에게 대부분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대책은 집값을 올리는 투기는 막고, 실수요자는 적극 보호하겠다는 취지다”라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문재인 정부 들어 8번의 부동산 대책 중 가장 강력한 대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무리 ‘초강력 대책’이라고 해도 규제 일변도로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조세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집값이 오르는 원인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넘치는 것인데, 핵심은 누구나 살고 싶은 지역에 시의 적절하게 공급하고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는 것이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절반은 수도권에 산다. 전체 가구 5142만3000명 중 2552만 명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해마다 가중되고 있다.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더 강화되는 분위기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9·13 부동산대책 직후 ‘이제는 값싼 주택 여러 개 보유하지 말고 정말 비싼 한 채만 보유하세요’, ‘전세 살면서 가장 좋은 곳 전세 끼고 무대출로 사려고 하는 데 이런 경우 제한되는 거 없겠죠’와 같은 글들이 잇따라 올라온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빅데이터 기반의 아파트 정보 사이트인 ‘부동산지인’에서 2017년 8월부터 2018년 8월 말까지 전국 아파트 가격의 상승률을 분석해본 결과, 서울은 19.5%나 상승하며 독주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기간 부산은 –9%, 울산은 –7.7%, 충북은 –4.4%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의 다주택 규제 강화와 대출 규제 등은 임대료 인상으로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똘똘한 한 채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격동의 부동산’, 이상과 현실 사이
#.강남에 있던 A사가 경기 고양으로 이전했다. 강남에 살던 직원들, 인근 과천이나 분당 지역 등에 살던 사람들도 출퇴근 때문에 일산으로 상당수 이사했다. 몇몇은 출퇴근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강남에 눌러앉았다.

이후로 10년이 흘렀다. 고양시 주택 가격과 강남, 분당, 과천 등지의 집값은 상당한 격차가 벌어졌음을 누구나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회사 직원들은 같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성실히 살았는데, 주택 선택으로 인해 노후 생활에는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

정민하 부동산지인 대표는 전 국민이 부동산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정 대표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거나 투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가장 큰 자산인 주택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흔히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다”라고 얘기한다. 실수요가 아닌 투기 수요를 견제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심교언 교수는 “엄밀히 얘기하면 대한민국에서 실거주 목적만으로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거주 목적이라면 주택이라는 건물의 속성상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가상각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실거주 목적이라도 주택의 가격이 어느 정도 상승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사기 마련이다. 재테크 목적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켜야 할 부동산, 버려야 할 부동산>의 저자 김종선 씨는 ‘평생 살 집은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주택 구입의 위험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 미래가치가 없는 집을 덜컥 구입하거나 조정기에 섣불리 집을 처분하고 마는 식의 행동을 보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자산인 집을 지키기 위해, 집에 좀 더 솔직해져야 할 이유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보면, 부동산에 대한 담론이 유독 뜨거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다. 중산층 상당수가 부동산을 빼면 가진 재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전체 자산 가운데 실물자산 비율은 4분의 3(74.4%) 수준이었다. 금융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5.6%에 그쳤다.

서울 집값, 거품은 얼마나
[big story] 태풍 속 부동산, 자산관리 방향타는?
지난 7월 이후 서울 및 일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광풍이 몰아치면서 거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기 부동산 컨설턴트인 아기곰은 “현재 용산과 강남, 송파 등 일부 지역이 고평가된 부분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 지역의 경우 2006년에서 금융위기 직전의 버블 수준에 아직 못 미치지만, 올 들어 거품 지수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다만 서울 전체적으로는 저평가된 곳이 여전히 많아 서울 집값의 상승 여력이 남았다고 봤다.

그렇다면 거품은 어떻게 측정할까. 주택의 저평가, 고평가를 알아보는 방법은 있을까. 부동산 시장은 수요와 공급, 정책과 심리적 요인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장이라 지표만으로 100% 진단은 불가능하다. 분석을 토대로 실제 현장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택 연구자들은 흔히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부동산 시장의 버블 판단 지표로 활용한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PIR는 11.2배로 홍콩(19.4), 베이징(17.1), 상하이(16.4), 시드니(12.9), 밴쿠버(12.6)보다는 낮고, LA(9.2배), 런던(8.5배), 뉴욕(5.7배) 등보다는 높았다. 전국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서울에 한해 위험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PIR의 주택이나 소득의 기준이 연구마다 제각각이어서 기관마다 상반된 분석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기곰은 우리나라 주택 구매자들이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의 상승률을 살펴볼 것을 권했다. 부동산 상승기를 맞아 A지역과 B지역이 각각 30%, 10% 올랐다고 치자. 언뜻 보면 A지역의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아기곰은 “만일 A지역이 해당 기간 생활환경이 눈에 띄게 개선됐고 B지역은 낙후된 환경이 지속된 경우라면, A지역보다 B지역이 상대적으로 버블 상태일 수 있다”고 했다. 통상 전세 가격은 실제 거주 가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전국 전세 가격 상승률 대비 해당 지역(아파트)의 전세 가격 상승률을 확인하고, 매매 가격 상승률 역시 전국 평균과 비교해보면 ‘버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전세 가격 상승률은 평균 대비 하락하거나 제자리걸음인데, 매매 가격 상승률만 치솟고 있다면 거품 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똘똘한 한 채’ 열풍으로 부동산 상승장에서도 지역별, 아파트별로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정민하 대표는 “서울같이 집값이 치솟는 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는 아파트가 있고, 집값이 주춤한 지방에서도 오르는 주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 시장의 특징을 기차에 비유했다. 맨 앞칸 열차가 출발해야 다음 둘째, 셋째 칸 열차도 움직일 수 있다. 만일 맨 앞칸 열차가 달리기를 멈춘다면, 뒤칸도 멈출 수밖에 없다. 주택 시장도 같은 원리로, 해당 지역의 대장 아파트가 상승을 이끈다는 논리다. 동력이 오래가지 못한다면 비인기 아파트는 상승 기회가 아예 오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조정기에는 수요가 많지 않은 구축이나 인프라가 미흡한 아파트는 조정 폭이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면적별, 연식별 가격이 가장 높은 아파트가 해당 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블루칩’일 가능성이 높다”며 “거래량과 함께 매년 가격상승률을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빅스토리 부동산 사용설명서 기사 인덱스]
- 01 태풍 속 '부동산' 자산관리 방향타는
- 02 전문가좌담 "규제가 부른 집값 폭등, 공급으로 풀어야"
- 03 '좀비부동산' 대신 '슈퍼부동산' 잡아라
- 04 '9.13'대책 이후 투자전략 새판 짜기
- 05 부동산 규제 시대, 안전한 투자법은
- 06 부동산 관리의 만능키 ‘신탁’
- 07 절세 위한 부동산 증여 A to Z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