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미얀마)=정채희 한경비즈니스 기자] NH농협은행은 국내 금융사 가운데 해외 진출 후발 주자로 꼽힌다. 지난 2012년 ‘신경분리’ 이후에야 해외 진출이 가능했던 탓이다. 농협은행은 한국에서 쌓은 ‘농업 특화 서민금융’을 강점으로 농업 비중이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미얀마는 이러한 농협은행 해외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다.
한바탕 퍼붓던 빗줄기가 그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전 10시. 미얀마 양곤 신시가지 노스다곤 타운십에 자리한 소액대출회사(MFI)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은 농협 최초의 해외 현지법인이다. “오늘이 마침 대출 실행 날이에요. 우리 영업사원들이 유치한 고객들이 대출금을 직접 받아가는 날이죠.” 김종희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장은 매주 금요일마다 이러한 풍경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 최대 400명, 현지 고객으로 북새통
상업은행에서 일반 고객의 여·수신 서비스가 가능한 한국과 달리 미얀마는 상업은행이 기업의 여·수신 서비스를 맡고 MFI가 서민 대출을 담당한다.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 보니 돈 빌릴 곳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글로벌 비정부기구(NGO)가 MFI 형식으로 서민금융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MFI는 담보대출 없이 신용대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신용 보강 차원에서 연대보증을 받고 대출해준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도 대출자 5명이 서로 보증(인적연대보증)을 하는 신용대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날 온 200여 명의 고객들은 시 외곽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로, 5명씩 짝을 지어 방문했다. 비대면 채널이 대세가 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양곤시 외곽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이이레이(33) 씨는 연 30%가 넘는 고금리 때문에 대출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지인의 소개를 받고 농협파이낸스미얀마를 찾았다. 이이레이 씨는 “대출금리 조건이 다른 곳보다 좋다”며 “직원도 친절하고 서비스도 더 낫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서민 대상 대출금리는 매우 높은 편이다. 일반 MFI의 금리는 연 30%(월 2.5%)이지만 사금융은 월 10%로 연 120%가 넘는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 역시 다른 MFI처럼 연 30%의 금리를 채택하고 있지만 농업 관련 대출은 24%로 우대하는 차별화 정책을 쓰고 있다. 강신우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부법인장은 “농협만의 특성을 살려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다”며 “특히 농업 관련 대출은 ‘애그리론’이라고 해서 일반 금리보다 낮게 받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 농업 비율 36.1%, ‘농협금융’ 잠재력 충분
NH농협은행이 미얀마에 첫 발을 들인 것은 2016년 말이다. 농협은행은 2012년 3월 경제 사업과 신용 사업으로 분할해 지금의 1중앙회·2지주사(경제·금융) 체제로 바뀐 후에야 해외 지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후발 주자여서 시장 개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농협은행은 ‘농협’만의 강점이 통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장소 선정에 공을 들였다.
“이미 다른 금융사들이 여럿 진출해 포화상태인 나라가 많았어요.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금융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고 진입 장벽도 낮았던 미얀마를 선택했습니다.” 강신우 부법인장은 “농업 국가라는 점에서 농협은행의 정체성에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미얀마는 서비스업(41.6%) 다음으로 농업(36.1%)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해외시장 개척이란 미션을 가진 농협은행이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인 셈이다. 금융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높았다. 인구수 5148만 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1374달러, 실질경제성장률 6.7%로 성장 잠재력도 충분하다.
사업모델로는 MFI를 선택했다. 시장 진입이 쉬운 서민 대상 소액금융 사업으로 농업금융의 강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강 부법인장은 “미얀마는 금융사 이용률이 매우 낮은 편인 데다 실질적인 서민금융사 역할을 MFI가 하고 있었다”며 “앞으로 MFI의 성장 여력이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미얀마 MFI 고객 수는 346만 명(추정치), 전체 인구의 약 4.3% 수준이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2016년 12월 문을 열고 이듬해 1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미얀마 내 MFI 수는 170여 개, 이 중 한국계 금융사가 11개에 달한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후발 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이어갔다. 농업 관련 대출에 한해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서비스 혜택을 늘렸다. 또 채널 확장 전략을 통해 소액대출 시장에서 영토를 빠르게 늘렸다. 현재 양곤주에만 9개 지점이 영업 중이다. 현재 직원 수는 181명인데 김 법인장과 강 부법인장을 제외한 179명 모두가 현지인이다.
‘농심(農心)’을 잡으면서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본점 1곳에서만 일주일에 많게는 400여 명의 고객들이 농협파이낸스미얀마를 찾고 있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의 7월 말 기준 고객 수는 3만4200명, 대출 잔액은 71억4000차트(약 56억 원)다. 건당 대출 금액 30만~50만 원으로 달성한 실적이다.
◆ 올해 흑자 전환 예고…네트워크 확대
영업 3년 차에 들어선 농협파이낸스미얀마의 올해 목표는 ‘흑자 전환’이다. 강 부법인장은
“지난 5월부터 월간 단위로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며 “올해 9월 말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농협만의 차별화 전략을 바탕으로 미얀마 농업 금융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다. 주요 전략은 2가지다. 먼저 농기계 할부금융 등의 특화 상품 출시다. 김 법인장은 “농협에는 농우바이오, 농협사료, 농협케미컬과 같은 농업 관련 계열사들이 많다”며 “향후 계열사들과 협의해 미얀마의 농업 성장을 발전시키고 우리도 성장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네트워크도 강화할 계획이다. 미얀마의 경제 중심지인 양곤주를 넘어 에야와디주로 지점망을 확장한다. 올해 에야와디주에 모두 5개 지점이 문을 연다. 중장기적인 목표는 전국망 구축이다.
‘농협’ 특유의 사명감도 있다. 한국에서 다진 ‘농업금융’을 토대로 미얀마의 성장에 일조한다는 포부다. 김 법인장은 “1961년에 설립된 농협은 한국의 고리채 개선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여해 왔다”며 “한국에서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얀마의 금융환경과 농업 생산성에 기여하며 상생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종희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장.(왼쪽), 미얀마 양곤 노스다곤 타운십에 자리한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 외관. 4층 객장에서 현지 고객들이 대출 약정 설명을 듣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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