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흔히들 ‘종교의 성지’라고 불린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가 모두 이스라엘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성지’로도 불린다. 한국 경상도 면적의 이스라엘은 국토의 70%가 사막인 척박한 나라다. 1948년 건국해 수많은 전쟁을 치러 왔지만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금액 기준 2018년 전망치로 3737억 달러다.
인구는 884만여 명으로 세계 96위에 불과하지만 GDP는 세계 33위에 해당한다. 1인당 GDP는 4만2115달러에 달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12명이나 된다. 고용인력 1만 명당 과학기술자 숫자가 140명으로 85명인 미국이나 83명인 일본보다 크게 앞선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은 미국 나스닥에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많이 상장돼 있다. 이스라엘에는 2017년 기준 7600개의 스타트업이 있다. 1인당 창업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상품도 한둘이 아니다. USB 플래시 메모리는 이스라엘에서 처음 나왔다. IBM 개인용컴퓨터(PC)에 사용된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레이저 키보드, 바이러스와 암 억제 효과가 있는 인터페론 단백질, 인터넷 전화 바이버, 전자사전 및 통역도구인 바빌론 등도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스타트업 국가로 성장한 7가지 비결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미국의 인텔은 지난해 3월 무려 153억 달러를 들여 이스라엘의 자그마한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인수했다. 당시 인수 금액은 이스라엘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모빌아이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비전테크놀로지 과학자인 암논 샤슈아 이스라엘 히브리대 컴퓨터공학 교수와 사업가인 지브 아비람이 1999년 공동 창업한 기업이다.
샤슈아 교수는 컴퓨터나 카메라, 센서 등으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과 읽어낸 정보를 재구성하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텔아비브대를 졸업한 샤슈아 교수는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MIT에서 인공지능(AI)과 인지과학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땄다.
모빌아이의 직원 수는 600여 명에 불과하다. 2016년 매출액 3억5816만 달러, 영업이익 1억2094만 달러밖에 되지 않지만 모빌아이의 기술력은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어 왔다. 모빌아이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한다.
ADAS는 차량에 부착된 센서가 물체를 인식해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장치다. ADAS는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 기술이다. 세계 완성차 브랜드의 90%가 모빌아이의 ADAS를 활용한다. 인텔이 모빌아이를 인수한 것은 자율주행차 시장에 적극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다.
자율주행은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기술이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한 만큼 향후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기술 발전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자율주행차 개발 기업들은 대부분 2021년을 전후해 상용차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2035년엔 자율주행차가 2100만 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20개 자동차 제조사들이 2022년 9월부터 출시하는 모든 신차에 ADAS를 기본 사양으로 장착하기로 했다.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자율주행차의 똑똑한 눈(모빌아이)과 뇌(인텔)가 결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12월 300만 달러를 투자해 이스라엘 스타트업 옵시스의 지분 9.7%를 인수했다. 옵시스는 라이더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라이더 센서는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부품으로, 레이저를 목표물에 방사, 사물과의 거리 및 물체의 특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포르쉐는 지난해 7월 최신 기술 트렌드와 다양한 인재 확보를 위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노베이션 오피스를 설립했다. 포드도 자율주행차 기술을 선점하겠다며 머신러닝 기업인 이스라엘의 SAIPS를 인수했다. 다임러와 제너럴모터스(GM)도 이스라엘에 연구·개발(R&D)센터를 열었다.
이스라엘에는 완성차 기업이 없다. 거리에 다니는 차량 모두가 수입 차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선 모빌아이 같은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배출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또 500여 개의 자율주행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국가(start-up nation)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후츠파’ 정신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당돌함과 뻔뻔함이라는 뜻인 후츠파 정신은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이스라엘인 특유의 도전정신을 말한다. 인근 중동 국가들과는 달리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스라엘 국민들은 도전정신과 창업 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 위험해도 끝까지 시도하는 후츠파 정신이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국가가 된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탄탄한 창업 지원 시스템이다. 이스라엘에선 창업했다가 실패하는 20대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다. 한국이라면 창업에 한 번만 실패해도 재기가 어려워 회사에 취직하거나 다른 길을 찾지만 이스라엘은 다르다. 여러 번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뒤엔 탄탄한 창업 지원 시스템이 한몫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 기업이 각각 40%, 60%씩 지분을 출자해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벤처캐티털인 요즈마그룹을 들 수 있다. 요즈마그룹은 요즈마 펀드를 운영해 전 세계 바이오 및 정보통신기술(ICT)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예루살렘 벤처파트너스와 아워크라우드 등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고 초기 투자에 앞장서는 벤처캐피털들이 이스라엘에는 수두룩하다.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100% 투자금으로 운영된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법적 의무만 성실히 수행했다면 개인이 부담을 지지 않는다. 벤처캐피털은 한 회사에 대한 투자가 실패해도 다른 업체의 성공에서 돌아오는 이익으로 충당한다. 또 창업 기업에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기술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예비 창업자를 위한 트누파 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원 시스템을 갖췄다.
셋째, 우수한 인적자원과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를 갖춘 클러스터를 들 수 있다.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실리콘 와디’가 있다. 실리콘 와디는 텔아비브 중심의 이스라엘 동부 해안 지역 정보기술(IT) 클러스터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에는 8개의 연구중심대학과 53개의 단과대학 등 총 61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박사학위는 연구중심대학에서만 수여된다.
이스라엘의 모든 대학은 기술 이전 회사를 가지고 있다. 대학의 연구 결과를 세계에서 처음 상품화한 것도 이스라엘이다. 와이즈만 연구원은 1959년 기술 이전을 위한 ‘예다(히브리어로 지식이라는 뜻)’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을 통해 지금까지 수십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히브리대는 1964년 ‘이숨(히브리어로 실행이라는 뜻)’이라는 기술 이전 회사를 설립했다. 이숨은 53년간 9820개의 특허와 2750개의 발명을 통해 얻은 880개의 라이선스를 기업에 넘겼다.
넷째, 군 경험을 들 수 있다. 특히 군대가 인재를 길러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맡고 있다.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의 모든 국민은 고교 졸업 후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군은 입대하는 병사들에게 창업의 핵심 자질인 리더십, 팀워크, 위기상황 돌파 능력 등을 집중 교육한다.
‘탈피오트(talpiot)’는 히브리어로 ‘최고 중 최고’를 뜻하는 이스라엘 과학기술 엘리트 장교 육성 프로그램이다. 매년 최상위권 50명의 고교 졸업생들을 선발해 히브리대에서 3년간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 사이버보안 등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이수시켜 6년간 군 복무를 하게 한다. 이 부대 출신들이 창업한 수많은 벤처들은 글로벌 기업에 고가로 팔려 나갔고,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도 수두룩하다.
사이버 정보를 담당하는 시모네 메타임(히브리어로 8200이라는 뜻) 부대의 경우 보통 4000여 명이 지원해 1차적으로 400명으로 압축된다. 이들은 다시 6개월간 테스트를 통해 최종 20명이 선발된다. 이 부대는 20개월간 훈련을 마치고 최고의 과학기술 교육을 통해 전문가로 육성된다. 이들은 사이버 위협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대응할 방법을 익힌다. 군대를 마치면 대학에서 연구를 심화시키고 창업에 나선다. 이스라엘 군대는 젊은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국가적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다섯째, 소프트웨어(SW) 중심의 컴퓨터과학(CS) 교육을 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92년 국가교육위원회 주도로 SW 중심의 CS를 정규 과목으로 만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ICT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자는 것이었다. 1994년 고교 과정부터 총 5단계(1단계에 90시간) CS 교육이 시작됐다.
1~2단계는 컴퓨터의 기초, 프로그램과 논리 등으로 구성된다. 3단계는 간단한 프로그램 제작 등 실습이며 4~5단계는 데이터 처리, 사이버 보안 등 고급 과정이다. 물리, 화학 등 다른 과학 선택과목도 5단계까지 수강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 한 학년 10만여 명 가운데 절반인 5만여 명이 CS를 3단계까지 배운다. 상위 15%는 5단계까지 듣는다. 고교 졸업생 중에서만 SW를 자유롭게 다루는 인재를 매년 1만여 명이나 배출한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은 2010년부터 중학교 단계에서도 CS 교육을 시작했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밍보다는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해 로봇을 이동시키는 수업 등 학생들이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해주는 교육이다. 전국 200여 개 중학교 가운데 올해 50여 개가 CS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했다. 군 복무 이후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창업이나 취업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CS 교육에서 비롯된 셈이다.
여섯째,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작고, 이슬람을 믿는 주변국들과는 공식적인 관계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창업 순간부터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한다. 내수로 기반을 다진 뒤 해외로 나간다는 다른 나라들의 스타트업들과는 반대의 전략을 시도한 것이 글로벌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생태계 조성도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은 이스라엘에서 신생 기업을 위한 창업 보육 시스템이나 창업 촉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곱째, R&D의 연속성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전체 산업 R&D 정책은 경제산업부의 수석과학관실이 총괄한다. 수석과학관(차관급)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6년 임기를 보장받으며, R&D 정책 시행과 예산 배분에서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수석과학관실은 5명의 헤드를 포함한 170여 명의 전문평가위원단을 운영한다. 전문평가위원단은 모든 R&D 과제를 평가한다. 이스라엘이 강소국(强小國)이 된 것은 이런 비결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