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섹스 할 수 있을까요?”
“처음 암이라고 의사에게 들었을 때 눈앞이 아득했지요. 그때는 내가 살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남편과 부부관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만약 그런 소릴 했다면 의사와 남편은 내가 섹스에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르죠.”
4년 전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아 자궁, 난소를 다 제거했고, 방사선 치료 등 항암 치료를 받은 후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다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 암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게 됐지만 성욕도 전혀 안 생기고, 질이 너무 건조해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부부관계를 할 수가 없어요. 남편과 부부관계가 없어진 후로는 관계가 멀어지고, 지금은 남과 다를 바가 없어요. 우린 금슬 좋은 부부였는데, 섹스가 없어지니까 처음엔 암 치료에만 신경 쓰자던 남편도 얼마 전엔 이혼 이야길 꺼내더라고요.”
“나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던 남편이기에 나이도 젊은 남자를 평생 섹스도 못 해줄 텐데, 내 생각만 하며 잡아 두기 어려워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며 그녀는 마음 아파했다.
암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인 질병이다. 암 발생률은 2012년 이후 매년 6.1%씩 증가하고 있으며, 2015년 새로 발견된 암 환자는 약 21만5000여 명으로 유방암, 전립샘암, 췌장암 환자가 많아지는 추세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인 82세까지 생존할 경우에 암에 걸릴 확률은 35.3%라니 10명 중 3명은 암 선고(?)를 받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암 환자가 돼도 치료법이 향상되고, 조기 진단이 많아져서 치료를 잘 받으면 살아날 생존율 또한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에서 2015년의 5년 상대 생존율은 70.7%에 이른다고 하니 ‘암’이라는 확진을 받았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대체로 암이 확진되면 그 진행 정도에 따라 수술과 방사선, 호르몬 등의 치료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성 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기능 자체를 잃게 되는 것이다. 특히 유방, 전립샘, 질, 자궁, 난소, 고환, 음경 등 성 기관에 암이 생기면 성기능에 장애를 겪게 되기 쉽다. 유방암인 경우 절제를 하고 재건술을 했더라도 보디 이미지가 망가지며, 유방이 성적인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여성에게 유방은 성기라 불릴 정도로 성적 흥분과 만족에 깊이 연관된 기관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여성의 성적 만족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또 자궁이나 난소를 적출하는 경우도 성욕이 감퇴되거나 없어지고, 질 건조, 위축 현상이 일어나 삽입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섹스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경우 전립샘암 수술로 인해 사정 능력을 잃거나 사정 중 약간의 소변이 함께 배출되기도 한다.
◆항암 치료와 성적 소통
암은 무자비하고 무서운 병이다. 일단 암이라 확진을 받으면 환자도 의사도 수명 연장이 가장 시급한 목표이고, 그 외에도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치료는 얼마나 아플지, 아이들은 누가 돌볼지 등 걱정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섹스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일반적으로 섹스에 대해 사람들은 말하기 어려워한다. 환자들은 더욱 그렇다.
의사들은 종양의 크기를 줄이고 전이를 막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에 환자의 섹스는 우선순위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수술과 항암 치료들에는 발기부전이나(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질 수축, 건조, 통증 등의 끔찍한 성적 부작용이 따라온다. 또 전신쇠약감, 피로로 인한 기능 저하와 성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 치료, 고환 및 난소 제거 수술은 성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환암 환자는 성욕 감퇴와 발기부전을 겪으며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 생각하고, 자궁암 환자는 ‘자궁이 없다’는 상실감과 삽입 시 수반되는 통증 때문에 섹스를 거부하게 되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좌절한다.
또한 ‘사랑을 받지 못해 걸린다’, ‘성생활이 문란한 사람이 걸린다’는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시선 때문에 암에 걸린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쉬쉬’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암이 완치되고,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리 쉽지 않다. 죽을힘을 다해 암과 싸우는 환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배우자의 다정한 관심과 응원, 지지가 필요하지만, 해가 갈수록 암 환자와 배우자의 관계는 건조해지고, 애정관계가 사라질 위험이 크다.
실제로 자기 때문에 건강한 배우자가 섹스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염려해 먼저 이혼을 제의하는 사람도 있어서 암 치유 기간 동안에 헤어지는 부부가 많다. 암 환자의 배우자들도 상대가 죽을병에 걸려 병과 싸우고 있는데, 섹스 생각이나 제의를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섹스 중에 배우자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성욕이 사라진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미국에서도 암 생존자 중 60% 이상이 장기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성생활 문제로 고통을 받지만, 의료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은 20%도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섹스는 단순히 감각적인 쾌감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배우자와 친밀감을 쌓아 가고, 결속감을 느끼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서 자존감을 키우는 데 섹스만 한 소통 방법이 없다.
삶의 질에서 섹스가 차지하는 부분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섹스는 질과 음경의 삽입이나 피스톤 운동이 전부가 아니다. 또 환자와 배우자는 섹스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쓰다듬기, 애무, 마사지, 함께 손잡고 TV 보기, 자위해보기 등 섹스의 다른 방법에 대해 함께 노력해보고 무엇보다 애정을 전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의료 관계자들이 암의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치료들이 환자의 성적·애정 문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에 관련해 조언이나 도움을 준다면 환자와 그 배우자는 한결 수월하게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윤활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여성이 질 삽입 깊이를 조절할 수 있는 체위에 대한 정보나 발기부전 문제를 개선해줄 비아그라나 시알리스 혹은 음경주사제, 뮤즈 같은 요도좌약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또 배우자의 심리 상담 및 고충을 듣고 조언해줄 수 있다면 말이다. 삶의 즐거움은 단순히 수명 연장에만 있지 않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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