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의 대표주자인 카카오뱅크의 고객 수가 지난 7월 말 기준 633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올 상반기 기준 경제활동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수치로 1호 인터넷은행 케이뱅크 고객 수를 더하면 전체 고객 수는 700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의 수신과 여신도 각각 8조6000만 원, 7조 원으로 불어나 지방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이들 인터넷은행은 지난해 4월(케이뱅크)과 7월(카카오뱅크) 출범 직후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케이뱅크는 출범 100일 만에 가입자 40만, 예금·대출 1조 원을 돌파하며 그 해 목표치를 달성했고, 이후 석 달 만에 문을 연 카카오뱅크는 오픈 첫날에만 24만 가입자를 모으며 기존 은행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365일, 24시간 편리한 예·적금 가입은 물론 4~6등급 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낮은 대출금리가 인기 요인이었다. 무엇보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은 카카오뱅크 흥행의 일등공신이었다. 인터넷은행의 초반 돌풍은 기존 은행의 모바일뱅킹 전략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은 유사한 기능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합하는 한편, 편의성 개선 작업에 나섰다. 또 금리 경쟁력을 높인 비대면 전용 상품도 속속 출시하며 인터넷은행을 새로운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새로운 플레이어가 업계 전반의 혁신을 불러오는 ‘메기효과’다.
그러나 인터넷은행의 인기는 올해 초를 기점으로 급격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주요 지표의 증가세가 일제히 둔화되는 데 이어 급기야 예·적금 증가율이 시중은행 디지털뱅킹에 역전당하기도 했다. 출범 초기의 개점 효과가 일부 희석된 것이 주된 원인이지만, 인터넷은행만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카카오·케이뱅크의 상품과 서비스가 기존 은행 상품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출범 이후 반년 만에 각각 800억 원, 1000억 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설령 기존 은행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혁신적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수익성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인터넷은행의 지속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카오뱅크 대출 고객의 70%가량이 1~3등급 고신용자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인터넷은행의 역할론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 이는 1·2금융의 사각지대인 중금리 시장 활성화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도 어긋난다. 카카오뱅크는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올해 1월 한시적으로 출시한 전월세보증금대출 고객의 소득별 현황을 분석, 발표하기도 했다.
7월 말 기준 전월세보증금대출 약정액은 4320억 원으로 월평균 720억 원씩 늘어났고, 연소득 5000만 원 이하이거나 빌라, 다가구주택, 오피스텔 등 아파트 외 서민 주거와 관련된 고객 비중이 62.1%로 나타났다. 이 중 64%는 소득 2500만 원 이하 또는 빌라, 다가구주택 등 주거용 주택 대출로 분석됐다. 카카오뱅크 측은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통해 서민들의 안정적인 주거 자금 마련에 기여하고 금리 및 수수료 등의 금융 비용과 시간 비용까지 더 절감해주는 상품으로 혁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 ‘네이버뱅크’ 등장?…시중은행들 긴장
이처럼 인터넷은행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국내 핀테크(FinTech) 산업에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정책적 이슈가 급부상 중이다. 정부 여당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4%)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제는 인터넷은행의 혁신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로 꼽혀 왔다.
특히 케이뱅크의 경우 출범 초기 내놨던 일부 상품이 조기에 동나면서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일부 주주사의 증자 거부로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그나마 카카오뱅크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소유와 경영을 완벽히 분리해 놓은 현행 규제하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혁신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에서는 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 인터넷은행의 혁신 움직임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카카오뱅크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체 신용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혁신 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2020년에는 중장기 성장 발판 마련을 위한 기업공개(IPO) 계획도 내비쳤다. 정부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은행과 ICT 기업 간 합종연횡과 함께 금융권 판도 변화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 지난해 인터넷은행 인가 과정에서 탈락한 인터파크가 일찌감치 재도전 의사를 밝힌 가운데 당시 인터파크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SK텔레콤, NHN엔터테인먼트, 현대해상 등도 잠재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금융권은 네이버의 참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카카오뱅크가 주력 플랫폼인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급성장해 온 만큼 국내 1위 포털 업체의 참여가 가져올 파급력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미 인터넷은행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KB국민은행(카카오뱅크)과 우리은행(케이뱅크) 외에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도 컨소시엄 구성 과정에서 주주사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현실이 될 경우 지난해 참여하지 않았던 정보기술(IT), 유통 대기업들도 대거 출사표를 던질 수 있다”며 “기존 은행들 역시 경쟁사의 합종연횡을 지켜만 보기에는 힘든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정부 여당으로서 적잖은 부담이다. 정의당을 비롯해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금융노조 등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 움직임과 관련해 “규제 생태계를 파괴하는 입법 시도”라며 “결국 거대 자본의 은행 소유를 위해 물꼬를 터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