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편견 깨고 ‘건강한 옷’ 신화 열다
인터뷰/ SG송가그룹 송석자 회장 & 이준 대표

[한경 머니=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천연염색 의류는 고루하다’는 편견이 깨진 건 SG송가그룹(이하 송가그룹) 사무실 입구에서부터였다. 꽃에서 온 붉은빛, 풀에서 비롯된 초록빛이 스며든 천연 원단의 고운 자태를 보고서다. 30년간 여성복 디자인을 해 온 엄마의 솜씨에 마케팅을 공부한 아들의 감각이 더해지자 전통 산업인 천연염색도 혁신의 블루오션 비즈니스가 됐다.

“이런 천연염색 옷도 있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문을 연 천연염색 의류 매장 ‘얀제이’. 매장을 둘러보는 손님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천연염색이라고 하면 흔히 생활한복 등 예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얀제이에는 모던한 디자인과 세련된 천연염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데일리 룩, 오피스 룩 등 각종 여성 의류들이 즐비하다.

천연염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가격대를 합리적으로 책정해 3040 젊은 세대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브랜드 ‘얀제이’는 사실 이준 대표의 모험이다. 이 대표는 “얀제이는 송가그룹이 전개하는 젊은 브랜드다. 론칭을 하자마자 ‘신선하다’는 업계와 소비자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 시작이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디자이너 어머니와 마케터 아들의 ‘도전’

송가그룹은 모자(母子)가 함께 이끌고 있는 천연염색 여성의류 전문 기업이다. 2세 경영이라고 하면 부모세대가 일군 가업을 자식이 이어가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송가는 조금 다르다. 패션디자이너인 어머니 송석자 회장의 천연염색에 대한 깊은 조예와 탁월한 디자인 솜씨에 경영을 전공한 아들 이준 대표의 톡톡 튀는 비즈니스 감각이 덧입혀진 동업의 형태에 가깝다.

어머니 송 회장은 패션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6년 패션회사인 ‘삐에르송’을 설립해 남대문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30여 년간 여성복을 만들어 왔다. 소재에 관심이 많아 당시에도 최고급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는데,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대만 등지에서도 대량 구매해 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언젠가부터 기성복도 예전만 못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던 차에 천연염색이 떠올랐다.

빠르게 입고 버려지는 ‘인스턴트식’ 의류가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보다 건강하고 가치 있으며, 친자연적인 옷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화학염료 옷이 아닌 천연 원단과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천연 염료로 원단을 물들이는 천연염색은 공정이 까다로운 데다 수요가 많지 않아 젊은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는 분야. 남들이 ‘사양산업’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천연염색에 뛰어드는 건 말 그대로 너무 큰 리스크를 안아야 하는 도전이었다.

“천연염색은 대량 생산을 할 수가 없어 사업적으로 보자면 한계가 분명한 영역이에요. 그래서 전통 문화를 계승하던 장인들조차 점차 그만두는 추세죠. 저는 기존에 하던 패션업을 지속하면 편하게 돈을 벌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주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도전하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얻는 편이거든요. 또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편안하고 건강한 옷, 자연 그대로의 옷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오랜 꿈이 있었지요.” _송석자 회장

천연염색 연구와 예술 작품 활동만 하려고 했던 송 회장에게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한 건 아들 이 대표였다. 호주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외식, 유통 등 사업을 두루 경험한 그는 “한국에 들어와 어머니의 뒤를 잇고 싶다”고 깜짝 선언을 했다. 송 회장은 “내심 바랐지만 평소 자녀 교육의 모토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해주자’는 것이었기에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속내를 전했다.

그렇게 모자는 천연염색에 ‘올인’했다. 에너지가 넘치기로 유명한 송 회장은 24시간을 쪼개 전국을 누비며 천연염색을 연구하고 업계 장인을 발굴한다. 얼마 전에는 천연염색으로 유명한 인도를 다녀왔다.

“인도는 면 소재 천연염색이 유명한 나라예요. 핸드메이드로 염색하는 공장을 견학했는데, 가족들이 다함께 작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히말라야산에서 직접 채취한 꽃과 뿌리를 말리고 갈아서 염료로 사용하는 그 정성에 감동받았습니다. 저희가 국내에서는 천연염색 선두 업자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_송석자 회장

송가그룹의 천연염색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패션 디자인을 오랫동안 해 온 송 회장은 염색을 할 때도 어떤 컬러와 어떤 디자인에 적용해야 할지를 본능적으로 생각한다. 천연염색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디자인 공부를 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송 회장은 이 업계에서 ‘대모’로 불린다. 송가어패럴에서 전개하는 ‘송가혼’이나 ‘얀제이’의 디자인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대표는 해외 비즈니스와 마케팅 담당으로, 전통의 가치와 모던한 감각을 컬래버레이션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해외 시장을 둘러보며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고 혁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채색 일색이던 천연염색 원단을 밝고 화사하게 만들어 3040 젊은 소비자들도 입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도 그다.

“천연염색 옷은 장점이 많아요. 자연에서 추출한 염료로 물들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유익하고 편안하죠. 원단 안에서 발수가 돼 세탁을 자주 안 해도 되고, 아토피나 피부병이 있는 사람들은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어요. 게다가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사람의 정서를 차분하게 해줍니다. 건강과 자연주의적 가치가 강조될 미래엔 천연염색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죠.” _이준 대표
천연염색 편견 깨고 ‘건강한 옷’ 신화 열다
◆1세대 아집 내려놓으니 가족경영 술술

오랫동안 혼자서 이끌어 오던 회사에 아들이 투입이 되면서 송 회장은 고민이 깊어졌다. 2세 경영으로 가업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고무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집에서 모자 관계로 대면할 때와 사업장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만날 때 역할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원칙을 정했다.

“가족경영을 훌륭하게 하려면 윗세대가 변해야 해요. 세상의 변화 속도가 무섭도록 빠른데 옛날 생각을 하며 나만의 길을 고수하면 발전이 없죠. 1세대들은 특히 자신을 낮추고 아집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너보다 훌륭하니까 너는 내 말을 따라라’는 식의 일방적 소통이 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합니다. 또한 비즈니스 전쟁터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 저희는 서로의 영역을 무척 존중하죠.”

이 대표는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일 텐데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며 “오히려 가족으로 대화할 때는 허심탄회하게 힘든 일과 고민을 충분이 이야기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해외에 천연염색 가치 전달…“선구자 될 것”

송 회장은 얼마 전 2018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에서 창조경제발전공헌대상을 수상했다. 30년간 열성적으로 패션 외길인생을 걸어 왔으며, 국내 전통 산업을 창조적으로 키워낸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실을 다져왔다면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에요.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산업’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커지면 인재 양성 쪽에 노력을 기울이고 싶어요. 세계적으로 수백 년 된 명품 기업들이 가치를 인정받는 데는 그들만의 장인정신과 고집스러움이 있듯 우리에게도 사명감이 있습니다. 전통 문화를 계승해 사람들에게 천연염색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첫 번째고, 천연염색으로 제작한 친자연적인 의류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그다음입니다.” _송석자 회장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해 온 이 대표 역시 어머니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쌓아올릴 자신감을 내비쳤다. 올해 송가어패럴의 매출 목표를 30억 원으로 세웠다.

“글로벌 전시회나 박람회를 가보면 글로벌 바이어들은 한국만의 독특한 색감과 천연 소재에 무척 큰 관심을 보입니다. 친환경은 앞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에 천연 소재에 대한 니즈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고 있죠. 회장님께서 발자국을 찍으셨으니, 저는 그 길을 뚜벅 뚜벅 걸어 나가 더 많은 길을 만들고 싶어요.” _이준 대표
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