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칼라 SC그룹 투자전략·자문 총괄대표
# 영국에 본사를 둔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알렉시스 칼라(Alexis Calla) 글로벌 투자전략·자문, 포트폴리오 관리 총괄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그룹 차원에서 수립한 투자 철학을 전 세계 고객 및 전담 매니저(RM)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지난 6년여에 걸쳐 수립된 SC만의 특별한 투자 철학에 대한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진행 한용섭 편집장 | 정리 공인호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저성장·고령화에 따른 자산 가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금융사들의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서비스도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의 등장은 과거 부자 고객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의 대중화를 한걸음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WM 서비스로는 상위 0.1%의 초우량 고객들의 투자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뒤따른다. 글로벌 금융그룹인 SC가 오랜 시간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 수립한 투자 철학을 전 세계 고객들과 공유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지난 5월 방한한 알렉시스 칼라 투자전략·자문 총괄대표는 SC그룹의 투자 철학을 직접 고안하고 설계한 장본인이다. 지난 2010년 SC그룹에 입행한 칼라 대표는 그룹 내에서 WM 비즈니스를 위한 자문 업무를 수립·이행하는 한편, 모든 투자자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글로벌투자위원회(GIC) 의장으로서 SC은행의 투자 전망을 수립하고 투자 아이디어 개발, 상품·지역·자산군별 투자 리스크와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사실상 전 세계 프라이빗뱅킹 담당 IA(Investment Advisor)가 칼라 대표의 지휘하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칼라 대표는 SC만의 투자 철학을 고안한 배경에 대해 “과거와는 달리 아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함”이라며 “투자를 포함해 인간의 모든 판단과 생각에는 편향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글로벌 투자 전략에 접목시킨 SC만의 투자 철학이 어떠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다음은 칼라 대표와의 일문일답.
한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 무엇인가요.
“SC그룹 차원에서 수립한 투자 철학을 론칭,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첫 론칭 국가인데, 무엇보다 투자 철학에 대해 한국 직원들과의 긴밀한 논의 과정이 있어 왔다는 게 주된 배경이 됐습니다. 저의 시각도 반영됐죠. 한국은 매우 창의성이 넘치고 디자인, 기술 측면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는 나라죠. 더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은 SC의 투자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투자 철학을 공개하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객과의 ‘신뢰’입니다. 다수의 금융사는 투자 대상(what)만을 공개하고 있고, 소수는 투자하는 대상과 어떻게(how) 투자하는지를 공개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왜(why)라는 부분의 정보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들과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죠. 물론 다른 금융사처럼 투자 철학이나 프로세스는 ‘블랙박스’로 남겨 두고 결과만 공개해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투자 프로세스를 개선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바로 ‘인지적 오류’입니다. 저희 고객들 모두 투자 결정 과정에서 인지적 오류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을 사례로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죠. AI는 트렌드와 패턴 분석에서 탁월해 금융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AI는 변곡점을 발견하는 데 취약합니다. 반대로 편견과 편향을 내재한 인간은 패턴과 추세를 찾아내는 일에서는 오류를 범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모일 경우 변곡점을 인지하는 데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SC가 투자 프로세스 개선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이 때문이죠.”
SC만의 투자 철학에 담긴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저희 투자 철학의 첫째 기둥은 ‘시각’의 차별화입니다. 갈수록 복잡하고 진화하는 금융시장은 시장참여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의사결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통찰력만으로는 시장을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둘째 축은 ‘의사결정’의 중요성입니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시장과 기업들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고, 특히 기관투자가의 경우 정보 습득에 제한이 거의 없습니다. 정보 싸움을 넘어 이제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죠.
셋째는 ‘다양성’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현상에 대한 인식부터 사고방식, 의사결정의 프로세스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저희는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전문가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넷째는 ‘리소스(자원)’ 활용입니다. 현재 SC는 수많은 나라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은행으로 이미 방대한 규모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축적된 정보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편향에 대한 경계’입니다.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답을 내야 할 때 편견과 편향 때문에 인지적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런 본능을 인지하고 고쳐 나가는 일 역시 보다 나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현지화’의 중요성입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투자자들을 만나 왔는데 결국 투자라는 것은 딱딱한 공식이라기보다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중앙에서 결정된 투자 계획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각 나라 고객의 특수성에 맞춘 ‘상향식(bottom up)’으로 전략을 수정해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금융시장의 변화만큼 의사결정의 속도를 중시하는 분위기도 있는데.
“고객들의 수요에 부합해 투자 프로세스도 빠르고 기민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개인들의 의사결정이 지나치게 빠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노벨상 수상자 다니엘 켄만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두뇌는 두 개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데 ‘시스템Ⅰ’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본능적 의사결정이고, ‘시스템Ⅱ’는 논리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당연히 실수는 시스템Ⅰ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의 투자 프로세스는 이런 성급함을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성을 도입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죠.
예를 들어 ‘미국 주식에 투자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시스템Ⅰ의 답은 미국 시장에 대한 단편적 성과와 전망일 것입니다. 반면 우리의 프로세스는 미국뿐 아니라 미국 대비 한국 주식의 성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찾고 많은 의사결정과 논의를 거치게 되죠. 이런 과정은 시스템Ⅰ보다 훨씬 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왔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 왔습니다.”
투자수익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둔다는 의미인가요.
“의사결정 관리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네요. 의사결정 관리를 철저히 하되 충분히 빠른 시간 안에 투자 프로세스를 정립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저희의 투자 철학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인지적 실수를 줄이려는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나라의 주식에 투자 결정을 내릴 경우 사람들은 해당 주식에 대한 긍정적 내용의 편향적 정보만을 수집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이런 실수가 저희의 투자 프로세스를 통해 관리됩니다.
의사결정 과정에 관한 유명한 학설이 있는데 개개인의 실수는 구성원의 오류가 되지만 다양성이 결합되면 그룹의 의사결정 오류는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같은 이유로 저희는 전문가 의견의 절충점을 찾는 과정인 컨센서스를 도출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세스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만들어 온 6년간의 결과가 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얻기까지 수많은 학계 논문을 참조했고 금융뿐 아니라 심리학, 신경과학, 생물학까지 의사결정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투자 프로세스를 만들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WM 분야에서 20년의 경력을 갖고 계십니다. 한국 시장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굉장히 세련되고 선진화된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파생시장의 경우 액티브하고 혁신적인 상품이 많습니다. 뮤추얼펀드 등 증권업만 보더라도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을 이룬 나라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간 형성된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죠. 일례로 한국 투자자들은 외환(FX)을 리스크 분산을 위한 헤지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초과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데 말이죠. 개인들의 경우 투자수익에 대한 조급함과 국내 주식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점도 부정적 단면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문화적 차이도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초와 달리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녹록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해 12월을 돌이켜보면 대다수 전문가들은 유토피아적 전망에 취해 있었죠. 저희는 당시의 낙관이 지나쳤다고 판단했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전망이 오히려 현실감 있게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장 사이클 전반을 봤을 때 아직 상승 랠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의 조정 과정은 미니 사이클로 보입니다. 우선 미국과 유럽 등의 경제지표가 양호한 데다 달러 강세도 점차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머징마켓 역시 여전히 좋은 투자 기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처럼 시장의 의견이 다양한 현시점이 이전보다 좋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투자 측면에서도 긍정적 시그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 한국 주식도 좋지만 글로벌 주식에도 관심을 둬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가져가길 권해드립니다.”
남북 화해무드 조성 등 하반기 한국 시장에 대한 전망도 부탁드립니다.
“남북한에는 높은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정학적 분단은 한국 시장의 오랜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작용해 왔죠. 지금의 갈등 해빙 조짐은 궁극적으로 한국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크게 줄이는 요인이라고 봅니다. 다만 시장에 대한 전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한국이 처한 또 다른 위험요인인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즉각적인 효과는 물론 이후 2, 3차의 부차적인 파생효과에 대한 판단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 SC는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시나리오별로 접근하고 있는데 높은 확률뿐 아니라 낮은 확률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습니다.”
자산관리 시장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데 SC만의 강점을 소개해주신다면.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투자 철학과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SC의 고객들은 자신만의 ‘패밀리오피스’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본인이 제안 받는 투자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운용되는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둘째는 인지적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정보입니다. 대다수 국내 금융사의 경우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전문가가 한정돼 있어 인지적 오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SC에는 다양한 나라의 많은 전문가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방문 이후 앞으로의 일정은.
“앞으로 수개월간 아시아 고객 및 IA들과 투자 철학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고객 및 직원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에는 홍콩,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도 우리의 투자 철학을 소개하고 공유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투자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집에도 심혈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기술 발달과 맞물려 우리의 투자 철학을 고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스템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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