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 갑질 논란, 다시 쓰는 리더십
[한경 머니 = 김선화 에프비즈솔루션즈 대표·경영학 박사]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그 여동생의 ‘갑질’ 문제로 여론이 뜨겁다. 왜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이번 일은 가정교육과 잘못된 승계 절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국내외 명문 기업들의 자녀 교육 방식과 승계 프로세스를 통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 인성교육이 승계의 첫걸음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린시절의 경험은 성인이 됐을 때 의사결정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일에 대한 태도나 습관, 가치관, 사람들과의 관계 등은 어린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기 때문이다. 좋은 리더가 될지 나쁜 리더가 될지는 이미 가정교육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자녀들의 어린시절은 한창 바쁜 시기로 자녀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가정교육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정교육은 자연스럽게 어머니 몫이 된다. 그런 만큼 가정교육에 있어 어머니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주 최부자 가문에는 가족들이 대대로 지켜오던 ‘육훈’이라는 가훈이 있었다. 그들이 500년 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최혜진의 <경주 최부자 500년의 신화>에는 ‘육훈’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다섯째 규정이 눈에 띈다. 그것은 ‘며느리는 시집올 때 은비녀 이상의 패물을 가지고 오지 마라. 그리고 3년 동안 종과 똑같이 무명옷을 입어라’ 하는 규정이다. 부잣집에서 왜 며느리에게만 그렇게 가혹한 요구를 한 것일까. 집안을 지속적으로 번창시키기 위해서는 새 며느리를 교육시키는 것이 자녀 교육에 앞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며느리가 겸손하고 절약하는 품성을 가져야 자녀들을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자란 가질수록 겸손하고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뽐내며 남을 무시하며 우쭐거리는 졸부 기질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잘못된 교육에 기인한다. 결국 집안에서 어머니가 건전한 사고를 가져야 자식이 건전한 행동을 하는 법이다.
해외 장수기업들 역시 자녀들이 어린시절 올바른 인성을 갖도록 훈육하고 부모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려 노력한다. 스웨덴의 대표 기업 발렌베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가족기업이다. 이들의 자녀 양육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장승규의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가의 신화>에는 그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자녀를 양육하는지 소개하고 있다. 발렌베리가의 후계자들은 일찍부터 자신이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의식하며 자란다.
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는 아이들과 함께 숲을 거닐면서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들려준다. 휴가철이든 아이들을 동행한 출장 중이든 빠뜨리지 않는 중요한 일상이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사업적 감각을 체득할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이 중시하는 또 한 가지는 바로 ‘검소함’이다. 가령 여름에는 정원의 잡초를 뽑고 가을이면 갈퀴질을 하는 등 집안일을 거들게 하며, 형이나 언니의 옷을 대부분 물려 입고, 용돈을 받으면 상당 부분은 저축하게 한다. 모든 아이들을 검소하고 엄격하게 키우는 가운데,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자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자라게 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장수기업들은 자녀들이 어린 시절 좋은 인성을 갖고 겸손하며 남을 배려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결국 그것이 부와 명성, 그리고 기업을 지키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 자녀의 기업 참여 기준을 마련하라
창업자가 후계자에게 경영권과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은 단기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생 동안을 준비해야 하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승계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자녀의 어린시절 태도 형성기에 이미 시작된다.
이때는 가정에서 인성과 성품을 기르는 시기로, 한마디로 말하면 경영자로서의 ‘떡잎’을 만들어주는 때다. 그리고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안팎에서 밑바닥부터 실무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을 키우며 관리자로서 훈련 받고, 이후 기업가정신과 전략 마인드를 겸비한 경영자로서 성장하는 일련의 장기적인 프로세스다.
주의해야 할 것은 능력이나 재능이 없는 자녀들이 기업에 참여하고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관리자가 된다면, 이는 회사 경영에도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계자 선정에 관한 기준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기업에 참여하는 데에도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특히 3세대가 되면 가족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므로 가급적 3세대가 기업에 참여하기 전에 ‘가족고용규정’의 기준을 명확히 해서 혼란을 막는 것이 좋다.
해외의 성공한 장수기업들은 대부분 가족고용정책을 갖고 있다. 이는 유능한 후계자를 확보하고 가족 갈등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미래를 계획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밑바닥에서부터 훈련시켜라
본격적인 후계자 훈련은 보통 자녀가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때부터 자녀들은 기업 안팎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하는데, 회사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게 하기보다는 다른 기업에서 먼저 경력을 쌓고 들어온 뒤,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후계자는 기업 밖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관리 시스템을 배우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 가족기업에서 일하게 될 때 중요한 인맥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측면으로든, 회사 밖에서의 경험은 후계자에게 필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는 후계자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기업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무런 경험도 없이 기업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렇다면 설령 외국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일반 직원들처럼 기본적인 실무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무를 통해 잘 준비된 후계자만이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녀들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급여나 업무 수행 방식, 업무 범위 등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후계자와 직원들이 상호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다. 만일 가족이라고 해서 더 많은 급여나 혜택을 받는다면, 또 실력이 없고 경험이 부족한 데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직원들은 박탈감과 함께 회사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다.
후계자가 직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업무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후계자가 직원들과 좋은 신뢰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회사 운영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 권력을 사용하기보다 권위를 쌓아라
후계자가 기본적인 실무를 익히고 나면, 그다음은 리더로서 능력과 자질을 계발할 차례다. 대부분의 후계자는 기업 내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리더에게 필요한 권력(power)과 권위(authority)를 갖게 된다.
후계자는 오너의 가족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업 내에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권위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임직원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 다른 회사에서의 성공 경험, 지역사회에서의 리더십 경력, 고객의 니즈에 대한 철저한 이해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후계자가 직원들에게 권위를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권위와 신뢰를 얻으려 하기보다 오랜 시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리더로서 역량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권력을 주면서 권위까지 물려주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많이 있다. 권력을 줄 수는 있지만, 리더로서 필요한 권위는 오랜 시간 임직원들과 일하며 신뢰를 쌓을 때 얻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녀라는 이유로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한 후계자가 조직 내에서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위험하고 기업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가족경영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모든 가족들이 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업은 3대를 못 가 실패하지만 어떤 기업은 건강한 기업으로 수세기, 심지어는 1000년 이상 존속한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가문에 달렸다.
가족기업에서 가족은 경우에 따라 기업에 해가 될 수도 있고 주요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가족 갈등이 극심하고, 자질이 부족한 구성원이 경영에 참여한다면 이는 기업의 부채 항목이 되고, 결국 장기적으로 기업이 쇠락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협조하고, 능력 있는 가족이 기업에 헌신한다면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 된다. 이처럼 가족은 기업 성공의 원인이 될 수도,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