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ket List in Art

우리는 흔히 이탈리아 피렌체를 ‘르네상스 예술의 보고(寶庫)’라 부른다. 피렌체에 가보면 이 말이 하나도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연 핑크색의 중세 건물들이 즐비한 이 도시에는 우피치 미술관을 비롯해 아름다운 성당과 수도원, 오래된 저택마다 인류의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예술작품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만약 일평생 피렌체에 딱 한 곳만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꼽겠다.
글·사진 함혜리 미술 칼럼니스트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프레스코화로 가득한 산마르코 수도원.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프레스코화로 가득한 산마르코 수도원.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사실을 알리는 것을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라고 한다. 이 순간은 그리스도교가 정착한 5세기 이래 서구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우피치 미술관에도 시모네 마르티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수태고지>가 소장돼 있지만 지금까지 본 모든 <수태고지>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을 받은 작품은 산마르코 수도원의 <수태고지>다. 그리고 이 작품을 그린 이가 바로 프라 안젤리코(1387~1455년)다.

프라(Fra)는 수도사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으로 ‘형제’라는 뜻이고, 안젤리코(Angelico)는 ‘천사 같은’이라는 뜻이니 ‘천사 같은 수도사 형제’가 되겠다. 본명이 구이도 디 피에트로인 그는 청년기에 채색 삽화가로 도제 수업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23세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됐다. 훗날 피에솔레에서 수도원장까지 지냈을 정도로 신심이 두터웠던 그에게 그림은 기도의 행위, 신앙생활의 실천이었다.

채색 필사본과 제단화로 명성이 드높았던 그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된 산마르코 수도원의 장식화를 맡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산마르코 수도원은 현재 산마르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지만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본래 실바네스트리 수도회 소유였던 것을 1436년 도미니크수도회가 사들여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재건축했다. 1434년 피렌체의 옛 귀족들에 의해 추방됐다가 돌아온 코시모는 청빈함을 내세운 도미니크 수도회를 적극 후원함으로써 차별화된 문화 코드를 만들고자 했다.

메디치궁을 지은 건축가 미켈레초가 1437년부터 재건축 공사를 시작해 16년 만인 1452년 지금의 수도원 건물이 완성됐다. 프라 안젤리코는 49세이던 1436년부터 1445년까지 9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벽화와 회랑, 수도사들의 독방에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었다.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과 같은 당대의 기술과 수도사로서의 경건함과 신실함, 신학적 지식을 담아 수도원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성당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소박한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정원을 둘러싸고 아치가 이어지는 산안토니오 회랑이 눈에 들어온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 첼라(cella)라고 하는 수사들의 독방이 줄지어 있는 2층에 도착한 순간 마주하게 되는 벽면에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미술사 책에서 도판을 통해 수없이 봤던 그 <수태고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매혹적이고 섬세한 작품을 보는 순간 온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쿵!’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다른 작품들과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천사의 얘기를 들은 마리아는 천사에게 ‘반문’하지만 곧이어 뜻에 ‘순종’하는 아주 짧고도 중요한 순간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리는 가브리엘의 자상한 표정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내 “말씀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이 극적이다.
프라 안젤리코, 피렌체가 품은 최고 걸작 <수태고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황금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추는 가운데 천사와 마리아 모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부드러운 선과 은은한 색상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다. 아래 층으로 내려가면 <수태고지>에서 그림의 배경으로 묘사된 작은 안뜰이 있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수도사들은 원죄 없이 잉태가 이뤄지는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미로 표현한 이 그림을 보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복도를 따라 2층에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42개의 독방에는 각기 다른 성서의 이야기를 담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방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는 번호가 적혀 있지만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성서의 순서가 아니다. 1번 방에는 부활한 예수를 처음 발견한 마리아가 손을 잡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잡지 마라”라고 말하는 장면, 2번 방에는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슬퍼하는 장면을 그린 ‘애도’, 3번 방에는 또 다른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수도사들의 방에는 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이 있을 뿐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장면, 그리고 그 방에서 프레스코화를 보며 긴 시간 동안 기도하고 묵상하던 수도사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훌쩍 떠나 있는 것 같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외에도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유명한 그림과 희귀 고서들이 전시된 유럽 최초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수도원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를 위해 북쪽 회랑 끝에 마련한 특별 기도실(39번 방)에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던 화가 베노초 고촐리가 1442년에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역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러 화가들이 즐겨 다룬 주제다.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를 드림으로써 예수가 구세주임이 만천하에 공인되는 것을 상징한다.

특별히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피렌체에서 선택받은 가문, 존경받는 가문이 되고 싶었던 메디치가 사람들이 동방의 현자들을 수호성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앞일을 예언할 정도로 선지자적인 사람들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었던 1월 6일 주현절 행사를 후원하기도 했다. 고촐리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27년 뒤 메디치궁 예배당에도 <동방박사의 행렬>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그렸다.

메디치가에서 주관한 피렌체의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모였던 아래층 수도사들의 식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미술사가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다른 구성을 비교할 때 많이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이다.

수도원 2층에는 아름다운 도서관도 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는 명예까지 안고 있는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직접 쓰고 그린 희귀 고서와 필사본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은행업을 확장시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반귀족·친서민 행보로 피렌체 시민들이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붙였을 정도로 존경과 지지를 받았던 그는 막강한 부를 정치·외교적 입지를 다지는 데 사용했을 뿐 아니라 예술과 학문 융성에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는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둔 비잔티움제국의 동방정교회의 화합을 위한 종교회의(1438~1439년)를 피렌체에서 주재했다. 이 회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의외의 성과를 남겼다. 회의에 왔던 비잔티움제국의 종교 지도자들과 인문학자들은 메디치가의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필사본 등 희귀한 고서를 코시모에게 선물했다. 코시모는 산마르코 수도원을 개축하면서 도서관을 만들어 희귀본을 소장하고 연구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서관을 개방했다.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이 있게 된 배경이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방은 고독 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수행의 공간이다. 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 외에 아무것도 없는 방의 유일한 장식은 성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려진 프레스코화뿐이다.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방은 고독 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수행의 공간이다. 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 외에 아무것도 없는 방의 유일한 장식은 성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려진 프레스코화뿐이다.
함혜리 저널리스트는…
30여 년 신문사 기자 경력의 아트 앤 컬처 전문 저널리스트. 서울신문 파리특파원과 논설위원을 거쳐 문화부 선임기자로 미술을 담당했다. 저서로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아틀리에, 풍경>, <미술관의 탄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