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소농의 시대 행복과 건강을 짓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정광하(38), 오남도(41) 씨. 이 젊은 부부에게 ‘적정’이라는 두 글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적정 규모의 농사는 유유자적한 시골살이를 위한 일종의 작은 테두리다. 그들의 자연주의 라이프는 농사만 짓는 삶은 아니다. 논과 밭 그 너머의 지대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부부 농부를 만났다.
꽃비원 입구에‘꽃비원의 작은 상점’이 있다. 정광하(왼쪽), 오남도 부부.
꽃비원 입구에‘꽃비원의 작은 상점’이 있다. 정광하(왼쪽), 오남도 부부.
“꽃비원 라이프는 한 마디로 ‘가꾸는 삶’입니다” 농부 오남도 씨는 말했다. 가꾼다는 건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다. 꽃비원 농장도, 부부와 일곱 살 난 아들 원호 군의 단란한 일상도 더불어 가꾸고 싶다. “그냥 돌보는 게 아니라 뭔가 아름답게 만들어 간다는 뜻도 있는 것 같아요.”

충남 논산 연좌읍에 자리한 꽃비원은 과수원이면서 ‘꽃비가 내리는 과수 정원’이다. “시골의 어떤 공간이든 천천히 우리의 손이 닿아 더 멋있어지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꽃비원이라 하고 허허벌판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배와 사과, 미니 사과가 주요 과실이면서 제철 채소를 비롯해 약 90여 종의 작물을 다품종 소량 생산하고 있다.

4월에 찾은 과수원에선 배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농약을 쓰지 않아 다양하게 자라난 풀 사이로 식용 허브 차이브와 민들레가 눈에 띈다. 모든 나무마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꽃이 진 후 비로소 열매가 되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그 단면을 포착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것도 부부의 일상적 풍경이다.

“아이를 네 살 때까지는 농장에서 키웠거든요. 아기띠 하고 콩 심고 같이 일하면서 유모차 끌고 그랬어요. 한쪽에서 놀고 저희는 농사를 지었어요.” 세 식구가 함께 일구고, 한 줌씩 손으로 만들고 행복한 시간이 깃들어 있기에 이곳에선 풀 한 포기도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6년간 농사를 지었다. 꼬챙이같이 작은 묘목들을 심고 열매가 열리길 기다렸다. 그 사이 그들이 써내려 가는 자급자족 농가 라이프에 공감하는 도시의 팬들도 늘어났다. 건강하게 재배한 농산물을 받아보길 원하는 소비자들이 꽃비원의 문을 두드리면서 제철 농산물을 모아 담은 ‘꾸러미’를 운영하고 있다.

급기야 부부의 모습에 감흥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인근으로 모이기 시작해 이른바 ‘시골에꽃친’(꽃비원 친구) 그룹이 형성됐다. 꽃친 1호부터 5호까지 각자의 직업을 가지면서 텃밭 등을 가꾸거나 자급자족 농사를 준비한다. 손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좋아하는 하나의 취향 공동체로 서로 다른 재능(도자기, 요리 등)을 살려 동네에서 재미난 놀 거리를 만들고 있다.

누구라도 한번쯤 상상했지만 실현하지 못하는 한적한 공간에서의 느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자급자족’, ‘다품종 소량 생산’, ‘소농’. 꽃비원에서 즐겨 사용하는 세 개의 키워드다. 부부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시골에서 산다.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어찌 보면 단순한 것 같은데, 꽤 다른 방향성을 가진 선택이었다.
봄날의 꽃비원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민들레와 차이브가 올라오는 계절이다.
봄날의 꽃비원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민들레와 차이브가 올라오는 계절이다.
인터뷰 중인 정광하 씨의 뒤로 트랙터와 배꽃이 보인다. 배의 품종은 감천배다.
인터뷰 중인 정광하 씨의 뒤로 트랙터와 배꽃이 보인다. 배의 품종은 감천배다.
[자급자족 농가 ‘꽃비원’] 부부, 미국 대신 시골서 ‘반농반X’로 살다
왜 하필 한국의 시골이었나?
대학에서 같은 과 연상연하 커플로 만나 결혼을 한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시골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고 한다. 직장생활은 서울과 미국에서 했다. 정광하 씨가 미국의 한 농산물 유통 회사에 취업을 하면서 오남도 씨도 미국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직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시골도 아닌 한국의 농촌으로 귀농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내랑 비슷한 생각이 있었는데 어떤 분들은 시민권 얘기도 하시면서 아깝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것 또한 아이의 선택의 몫으로 남겨뒀어요. 앞으로 저희 자녀 세대는 외국에서 나가 공부할 기회가 더 많은 텐데 굳이 처음부터 경험하게 해줄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아이가 커서 도시에 살고 싶다면 나가겠죠. 대신 어릴 적 시골의 경험, 시골 생활의 감수성은 물려주고 싶었어요.” 정광하 씨

꽃비원이 남다른 건 도시에 있는 소비자와 적극적인 소통을 하는 데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농사 일기를 올리면서 시작된 일이다. 오 씨는 “작물들을 다양하게 재배할 때도 처음에는 둘이서 베란다에 조금씩 심었던 것들인데, 물론 대부분 실패했지만 싹이 나오면서 자라고, 또 먹게 되는 과정이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많이 소중하고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며 “도시 장터 마르쉐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우리 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둘 다 농대를 졸업하긴 했지만 농사는 지어봐야 아는 거거든요. 처음 농사를 시작하면서 어딘가에는 기록을 할 필요가 있어서 정리를 시작했어요. 오늘은 감자를 심었다. 싹이 얼마큼 나왔다. 수확을 했다. 얼마나 거뒀다. 이런 것들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농사짓는 느낌이 든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저희가 밭에 있는 걸 캐서 요리를 즐겨 해 먹는데, ‘이런 것들이 제철 채소구나’ 관심을 가지고 보시고, 반대로 저희 농산물로 요리를 하신 것들을 공유해주시면 그걸 보고 또 저희가 해 먹고 했어요.” 정광하 씨

흔히 농사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인내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의 풍경을 가꾸고 소비자와 꾸준히 소통한다는 게 쉬운 접근은 아닐 것이다. 정 씨는 “땅을 사고 밭을 일구는 농사의 시작은 같았을지 몰라도 끝은 조금 다를 것 같다”며 “농산물을 재배해 돈을 버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다면 특화된 특정 작물을 재배하거나 시설 재배로 생산량을 끌어올렸을 것이다”라고 한다.

부부에게는 수익보다 자립이 실질적인 화두다. 처음부터 시골생활이 좋아서 내려왔고 자급자족을 위해 다품종 소량 생산의 방식을 택했다. 또한 다품종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기존의 유통 구조 시스템이 아닌 직거래의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과거 직장생활과 비교할 때는 둘이 벌던 것을 한 명이 버는 셈”이라며 “어떻게 보면 버티고 있는 거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라고 오 씨는 강조했다.

“처음에 시골 왔을 때는 주변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씀도 하셨지만 저희가 고민한 것은, 다른 데 가서 다른 사람의 돈을 버느니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돈을 벌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목화를 심어서 리스를 만들어 장터에서 팔기도 했는데 사실 목화의 열매가 딱 솜으로 변한다는 게 그 과정을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어서 심기 시작한 거예요. 겨울에는 원호를 재워 놓고 남편과 함께 목화대를 꺾어서 리스를 만들거나 만드는 법으로 수업을 하기도 했고, 남편은 나무를 깎아서 버터나이프나 잼 스푼 같은 도구들을 만들어 마르쉐에 나가 판매하기도 했어요.” 오남도 씨
제철 채소를 비롯해 약 90여 종의 작물을 재배한 후 '꾸러미'로 만들어어 도시 소비자들에게 전달한다.
제철 채소를 비롯해 약 90여 종의 작물을 재배한 후 '꾸러미'로 만들어어 도시 소비자들에게 전달한다.
수입은 직장생활의 절반, 만족도는 두 배
농업과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반농반x의 삶이 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자연주의 라이프를 강조하는 킨포크 라이프가 있다면, 일본에서 주창된 반농반x는 농사에 올인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꽃비원의 방식이 그렇다. 흙을 만지는 것 이외에 요리를 하거나 물건을 만드는 게 부부의 취미이자 관심사다. 꽃비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또 다른 자립의 방식을 고민해 나간다.

“시골에서도 도시생활을 포기 못하는 일들이 있어요. 월급도 생각나고 삶도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잖아요. 시골에서 소농으로 자립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정광하 씨

꽃비원 꾸러미는 1년 정기 배송 서비스인데, 고품질을 위해 지금은 20가구로 줄여 유지하고 있다. 그때그때 채취할 수 있는 것들을 재배해서 보내고, 회원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똑같이 100번의 택배를 보낸다고 봤을 때 우리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10명에게 10가지 품목을 보내는 것이 1가지 품목을 100번 보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고.

“꾸러미 식구들은 계속 안부 문자도 보내주시고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나 농작물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세요. 연 50만 원의 비용을 받으면서 시작이 되지만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고 그 안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형태예요. 우리가 정성스럽게 기른 농산물을 누가 소비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남도 씨

올해 6월 중에는 꽃비원 키친도 정식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귀농 3년 차가 됐을 때 농사를 더 늘리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테이블 두 개의 작은 식당을 열었었는데, 꽃비원을 알고 찾아오시니까 재료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올해는 농장 투어나 팜스테이 같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신 선택한 농촌 마을, 젊은 부부의 시골살이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물론 주변에서 귀농에 대해 물어보면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말리는 편이에요. 저희는 여러 라이프스타일이 맞아서 선택한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여기 와서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바람이 불면 계획했던 모종 옮겨심기를 못해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많이 단련이 되고 있고 느긋해졌어요. 도시에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으니까 돈을 많이 벌어도 그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봤을 때 저희는 200%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과 같은 활동들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부부 웃음)”
돌잔치 대신 '흙이 키운 아이' 꽃비원 사진전을 열고, 꾸러미 식구들을 초대했다.
돌잔치 대신 '흙이 키운 아이' 꽃비원 사진전을 열고, 꾸러미 식구들을 초대했다.
[자급자족 농가 ‘꽃비원’] 부부, 미국 대신 시골서 ‘반농반X’로 살다
올해는 특히 꽃비원 키친, 농장 투어, 팜스테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올해는 특히 꽃비원 키친, 농장 투어, 팜스테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꽃비원이 소농으로 즐겁게 사는 법
1 농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수익에 두지 않는다.
2 스토리텔러가 돼 도시 소비자와 친구의 관계로 꾸준히 소통하고 교류한다.
3 농사에 조바심이 나더라도, 가족농으로 감당할 수 있고 농사의 재미를 잃지 않는 선에서 적정 규모를 유지한다.
4 농사만 있는 삶이 아닌 농사 이외의 다양한 기획들(농장 체험, 요리 교실 등)을 하며 농부 이외의 기획자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