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Story 노순호 동구밭 대표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동구밭은 천연 비누를 제조해 판매하는 소셜 벤처다. ‘발달장애인의 꿈의 직장’에 도전한다. 일을 통해 얻는 것은 높은 연봉도, 권력이나 명예도, 자리도 아니다. 이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모였다”고 말한다. 가치 있는 선택을 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다른 길’을 여는 실험이다.2017년 12월 7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1가의 한 상가 지하에 위치한 동구밭 팩토리는 밀린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동구밭 팜(Farm)에서 직접 가꾼 텃밭 작물을 재료로 천연 비누를 만드는 중이다. 저온에서 1000시간 이상 숙성을 마친 비누가 작업대 위로 올라왔다.
일은 분업에 의해 착착 진행됐다.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특화하는 작업 방식이었다. 대표부터 인턴사원까지 손을 놀리는 이는 없었다. “비누 중앙에 스티커를 붙여주세요.” 팀장의 새로운 업무 지시가 떨어지자 수건으로 비누를 다듬던 한 가꿈지기(동구밭에서 발달장애인을 부르는 호칭)가 상품으로 나갈 수 있는 비누를 골라 작업을 시작했다.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은 비교적 난이도 있는 업무에 속한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고 있었다. 작업복에도 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누를 싸는 포장지에는 직원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에 이름을 적어 ‘비누 각치기 마스터’, ‘비누 포장 마스터’, ‘비누 커팅 마스터’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상품의 출처를 밝히는 ‘얼굴’ 역할을 한다. 땀의 가치와 마스터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장 한쪽 벽면에는 ‘HSE(안전·환경·보건)’, ‘5S(정리·정돈·청소·청결·습관)’ 등의 수칙이 적혀 있다. 점심과 저녁 사이 때마침 갓 만든 꽈배기 한 봉지가 도착했다. 달달한 빵 냄새가 허기를 자극할 만도 했지만 누구 하나 작업을 멈추는 이가 없었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규칙은 이곳에서 중요한 작동 기재”라며 “간식도 예산에 맞춰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각자 일을 마친 후에 먹는다”고 설명했다.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 것도 하나의 업무 훈련으로 보고 있다.
잠시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든 동구밭 구성원들은 유난히 밝은 에너지를 풍겼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컴퓨터 앞에서 엑셀 작업을 하던 팀장은 “가꿈지기 덕분에 일은 고돼도 많이 웃는다”고 말한다.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에 마음은 풍요로운 직장이다”라고도 했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목표로 하지만 건강한 조직의 틀을 깨지 않도록 때로 속도를 늦춘다. 이곳에서 일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남보다 앞서 달리지 않아도, 함께 오래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직원들도 그 레이스에 동참한다. 대기업 임원 출신의 ‘선수’도 있고, 비누 장인으로 통하는 공장장, 또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마케터와 디자이너 등이 서로 손을 맞잡는다.
“이곳에 오는 목적과 상황과 처지는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꼽자면 행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라고 노 대표는 말했다. 일터에서의 행복에 도전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경쟁과 견제, 감시의 대상이 아닌 생존 공동체의 동반자로 바라볼 때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다.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들이 주는 가치는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러져 행복한 조직을 만들어 가고, 건강한 커뮤니티가 만드는 상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의 삶의 변화까지 이끄는 세상을 꿈꾼다. 동구밭은 바로 그 감동을 판다.
최근 사회문제 해결을 통해 수익 모델을 만드는 소셜 벤처가 늘고 있습니다. 동구밭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입니까.
“저희는 발달장애인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일터와 환경을 만들겠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매년 7000여 명씩 증가하고 있는 장애가 발달장애입니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사회와 유리된 채 평생 혼자 지내게 되고, 취업을 해도 고용 근속 개월이 짧아서 실질적으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게 어렵습니다.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이 본연의 개성대로 비장애인과 함께 즐겁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동구밭 팜에서는 매칭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비장애인 친구를 사귀고 함께 텃밭을 가꾸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또 동구밭 팩토리는 ‘우리’라는 범주 안에서 평생직장을 갖기 위한 발판이 됩니다. 주요 상품으로 비누를 판매해 동구밭 팜과 팩토리를 확대시켜 발달장애인의 고용을 증진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월 매출 325만 원이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인 1명씩 고용하는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구밭이라는 이름은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발달장애인을 채용하는 다른 기업과 무엇이 다릅니까.
“가장 큰 차이점은 ‘보다 긴 근속 개월’입니다. 그래서 일터의 행복이 중요합니다. 성장이나 수익 자체가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자신의 개성대로 일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시스템으로 체계화하고 있는데, 발달장애 사원의 탄력 근무제, 효율보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 배치, 명령이나 지시 없이 함께 근무하는 조직문화, ‘빨리빨리’나 ‘적당히’가 없는 소통 시스템 등을 구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 10만 개 이상의 비누를 생산하면서 15명의 발달장애 사원이 낙오 없이 현재까지 성장해 오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꿈의 직장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동구밭의 나뭇잎 심볼은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나무줄기로 연결되는 것처럼 노동을 통한 건강한 관계가 발달장애인의 삶의 지지대가 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자는 뜻입니다. 국내 복지 지원의 경우 대부분 발달장애인의 고용 숫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동구밭은 건강한 노동과 사회적 관계성에 기초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회사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해라. 대학은 서울로 가라. 대기업에 취업해라. 그래야 행복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커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메커니즘에서는 선택받지 못하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더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발달장애인들은 매우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저 같은 경우 대학교 동아리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평소 생각이 무참히 깨졌습니다. 특히 발달장애인 세 명 중 두 명이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가 의미가 있을까, 여러 선택지가 있을 때 진짜 원하는 게 뭘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자율적으로 일하며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꿈의 직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발달장애인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동구밭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까. 발달장애인이 아닌 직원들에게도 꿈의 직장입니까.
“일의 의미는 시대와 세대에 따라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발달장애인 직원들 외에도 공장에 있는 반장님의 경우 대기업에서 상무까지 지낸 이력이 있습니다. 실장님은 오랜 기간 비누 제조 외길을 걸어온 전문가입니다. 팀장님은 사회복지사로 오래 일하다가 동구밭에 합류했고, 대학을 갓 졸업한 직원 중에는 소위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한 분도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니어와 주니어 등이 서로 다른 이유로 모였고, 각자 장점도 단점도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모였다는 겁니다. 물론 같은 연봉을 받는다면 비장애인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구조라서, 대표로서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가정을 꾸린 제 입장에서 볼 때도 일을 선택할 때는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이나 권력, 자리가 일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소셜 벤처들을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가끔 ‘왜 이 누추한 곳까지 와서 일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가치와 자부심이라는 키워드가 나옵니다.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부모 세대에는 일이라는 게 평생직장의 개념이었지만, 저희 세대에는 나만의 커리어를 쌓아 간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젊은이들이 첫 커리어를 쌓는데 동구밭과 같은 소셜 벤처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입니다. 이 분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가치 있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조직이라고 평가하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동구밭은 3년 전인 2015년 1월 설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항상 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기에, 지금 있는 것도 버릴 각오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단순한 비누로 볼 수 있지만, 이 비누 하나를 만들기 위해 5만 개가량의 비누를 버려야 했습니다. 처음 젊은 직원들끼리 일했을 때는 사소한 것으로 다투는 일도 많았습니다. 지금 동구밭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들이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합니다. 사무실에서는 주로 젊은 직원들이 기획이나 마케팅, 판매를 담당한다면 가꿈지기들이 일하는 공장에서는 반장님과 실장님, 팀장님의 지휘 아래 생산 계획을 짭니다. 무리하게 작업량을 늘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공장에서 합니다. 못하겠다고 하면 일정을 미룹니다. 그렇게 하니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이 됐습니다. 출근 시간은 9시인데 반장님 같은 경우 8시에 나오십니다. 처음에는 서로 출퇴근 시간을 놓고 이견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합니다. 매일같이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지만 조직 내부의 면역 체계가 있어서 병이 나기 전에 내부적으로 소통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게 변화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에게 배우는 점도 많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통해 영리 활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회사를 꿈꾸는 만큼 성장에 대한 고민도 많을 텐데요.
“우선 발달장애인에게 동구밭은 일자리에 있어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월급은 안 줘도 되니 일을 하게 해달라’는 문의도 적지 않습니다. 저희도 인턴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간이 만료되기 일주일 전부터 계속 ‘저 오늘 잘한 거 맞죠. 실수한 것 없죠’ 하며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 혜택이 적은 게 아닙니다. 그분들은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도 카페에서 금세 나오고 제빵 기술을 배워도 또 금세 인쇄 교육을 받는 냉혹한 현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도 모두 채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동구밭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 정책의 초점이 노동을 통한 ‘삶의 설계’에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고, 저희와 같은 ‘작은 변화’를 꿈꾸는 기업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장도 커지고, 또 소비자의 인식도 더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의 꿈의 직장을 위해 누군가는 더 센 업무 강도를 감당해야 하는, 결론적으로 행복하지 못한 직장이 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최근 출시한 ‘설거지 비누’와 같이 소비자에게 더 유용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체질 개선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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