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채윤 식료연구가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먹는 게 만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만큼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만난 이 사람, 이채윤(51) 식료연구가의 인생 스토리와 그가 오랜 연구 끝에 얻은 건강한 식생활 노하우를 소개한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역시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덕담은 “올해도 건강하자”일 것. 그러나 올해도 이 바람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바꿔야 할 것이 ‘식이요법’이다. 먹는 것에서 건강이 시작된다는 신념 아래 식료 연구를 파고든 이채윤 식료연구가는 “올바른 식생활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좋은 재료와 알맞은 조리 방법에 있다”며 “좋은 음식으로 병의 치료를 돕고 병을 예방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식료 연구 활동은 물론, 포슬린 아트 강사, 스튜디오 오픈키친 대표, 각종 강의 및 봉사활동으로 바쁜 이 연구가의 일상을 따라가 봤다.식료연구가란 직함부터 생소합니다.
“식료란 음식물의 다양한 성미와 작용에 따라 각 장부에 작용해 치료 효과를 얻는 식이요법(食餌療法)의 일종입니다. 한의학 이론을 기초로 음식조리학, 영양치료학, 영양위생학, 식물본초학, 약물본초학 등을 종합해 음식이 가지고 있는 성질과 효능, 영양소와 미량 원소가 인체에 미치는 작용과 질병의 치료와 예방 효과를 연구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음식에 약물을 조화롭게 섞어 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뿐만 아니라, 몸을 보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수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하는 응용의학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이 분야를 파고든 계기가 있나요.
“어린 시절부터 워낙 몸이 약해서 자랄 때 음식을 매우 신경 써서 먹고 자란 편이었어요. 거기에 손맛 좋으신 친할머니 영향으로 요리하는 것도 참 좋아했죠.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먹었던 좋은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식재료를 찾다 보니 YMCA에서 주관하는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소비자 유기농 운동에 합류하면서 식재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어요.
동시에 동물복지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때가 벌써 25년 전 일이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식료 연구에 몰두한 계기는 10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건강을 챙기면서였죠. 처음 병원에서 어머니가 말기 암 3개월 선고를 받으시고, 치료가 불가하다는 소견에 가슴이 무너졌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어머님을 보필해드리고 싶어 수소문한 끝에 대체의학으로 치료하는 선생님을 찾게 됐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식이요법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환자가 사는 날까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제가 원래 뭐든 ‘이거다’ 마음먹으면 두말없이 실행하는 편이거든요. 식재료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바로 관련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선재사찰요리 정규과정을 배우면서 음식을 이해하게 됐고, 식재료에 대해 더 파고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원광디지털대 한방건강학과 과정을 4년 동안 이수한 뒤, 한의학과 약선(藥膳) 관련 활동을 하다가 식재료로 사람의 병을 예방하는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에서 식품 치료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2년간 실험실(lab)에서 연구 실험 활동도 하면서 저만의 데이터도 많이 구축했어요. 현재는 석사 논문을 쓰고 있고요.”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나요.
“제일 인상 깊었던 식재료는 짙은 보라색의 야생당근이에요. 산에서 자생하는 당근이라 거의 재배가 안 되죠. 옛 문헌에도 본디 자생하는 당근색은 짙은 자색이라고 기록돼 있어요. 지금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당근은 네덜란드에서 개량한 오렌지색 당근이고요. 아무튼, 야생당근을 복원해보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와서 각종 실험을 해보니, 야생당근에 함유된 항산화물질이 어마어마하더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굽고, 찌고, 튀기는 등 조리 과정을 거치면서 대개 식재료들의 항산화물질이 다소 감소하기 마련인데, 야생당근은 어떠한 조리 과정을 거쳐도 보존이 되더라고요. 정말 좋은 식재료인 셈이죠. 다만, 이걸 재배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해서 대규모 상업 재배까지는 이뤄지지 않았죠.”
식료 연구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시던데요.
“일주일에 두 번, 저희 집에서 포슬린 아트(porcelain art)를 강의해요. 포슬린은 독일의 마이센 도자기를 의미해요. 유약을 입힌 백자 그릇에 그림을 그려내는 도자 공예의 형태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생활자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포슬린 아트죠. 꽤 관심이 갔던 분야라 독일 마이센에서 관련 수업을 공부했죠. 현재 제가 진행하는 수업은 소수 정예로 이뤄져서 함께 수업도 하고, 각자 싸 온 음식들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기도 해요. 그리고 1년에 2회 정도는 카투사 부모 모임인 ‘팸데이’ 일을 하고 있고요. 주한 미군 병사들에게 엄마의 집밥을 먹게 해주고픈 한국 부모들이 마음을 모아 2015년부터 일종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죠. 회를 거듭할수록 반응이 좋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전에는 스튜디오 오픈키친도 운영하셨죠.
“네. 한 달에 한 번 특정 주제를 갖고, 음식을 만들고 함께 온 손님들과 음식을 나누는 수업이었어요. 그때도 소수로 운영했는데, 제자 중에 손석희 JTBC 사장님도 있었죠.(웃음)”
어떤 수강생이던가요.
“요리에 관심도 많으시고, 무엇보다 손재주가 참 좋으셨어요. 제일 훌륭했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스튜디오 오픈키친이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였죠.” 최근 좋은 식재료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지금 유기농이라는 것은 진정한 유기농으로 보기 힘들어요. 사람의 인분을 삭혀 발효시키고, 비료 주고 그런 방식으로 키우는 곳은 지금 거의 없죠. 대부분 닭의 분뇨를 수입해서 비료로 사용하는데 다 유전자변이 콩이나 옥수수를 먹고 자란 닭들의 분뇨예요. 다행스러운 것은 여러 농민들 중에서도 진정한 유기농을 추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의 소비자가 돼주는 것도 힘이 돼요.
결국, 앞으로 가장 믿을 만한 건 자연순환농법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스위스 등 식문화가 발달된 북유럽 국가를 방문하면 변두리에 있는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도심에 있는 레스토랑 근처에도 텃밭이 있어요. 그만큼 신선한 재료를 쓰다 보니 자극적인 간을 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건강에도 좋아요. 우리나라도 그런 시스템들이 전반적으로 도입돼야 합니다.”
방송에서 이른바 ‘가성비’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식생활에 ‘가성비’라는 말을 붙이는 걸 싫어해요. 좋은 음식에는 그만한 대가를 줘야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오히려 가성비란 말을 붙여서 자극적인 맛과 신선하지 못한 재료로 대접하는 음식은 좋은 식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방송에서 그런 걸 권유하듯이 앞 다퉈 방송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요. 좀 더 먹는 것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자극적인 ‘맛’에만 맹목적으로 주목하기보다 음식의 재료에 집중하는 식문화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제가 지금까지 고민했던 생각과 축적한 지식을 정리해서 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강연 활동을 해볼 생각입니다. 직접 만나는 기회를 넓히고자 해요. 또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오늘 먹은 식단을 통해 정말 잘 먹고 있는지를 컨설팅해주고 싶어요.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먹는지도 알려줌으로써 ‘건강한 식재료’로 ‘잘 먹는’ 문화를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은 바람입니다.”
이채윤 연구가는…
선재사찰요리 정규과정 수료
한국전통주연구소 마스터과정 수료
한국약선연구원 약선설계사 자격취득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식품치료 전공
스튜디오 오픈키친 대표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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