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늙어 간다는 것
RETIREMENT
 ● Longevity [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석좌교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당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나이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사는 분을 만나는 것은 장수 연구의 큰 목적 중 하나였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더 잘하고 당당해야 하는데 체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줄어든다는 신체적 이유 외에도,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돼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을 흔히 보면서 당당하게 늙을 수 있을까 탐색해본다.

강원 정선군 북평면 남평리 마을에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을 채근하는 백세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이윤영 할아버지와 장순란 할머니 부부는 단아한 양옥집을 곁에 두고도 허름한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양옥집이 불편한데 다가, 소 먹이용 쇠죽을 끓이려면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필요해서 당신 나이 94세 됐을 때 스스로 설계하고 서까래 구들을 직접 놓아 지었다는 것이다.

장 할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묻자 “옛날에는 더러 싸우기도 했지만 요새는 싸울 일도 없어” 하며 당신이 해보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렇게 비뚤어진 짓은 안 했어”라고 큰소리쳤다. 필자를 집 뒤로 이끌고 가서 자신이 직접 패서 쌓아 둔 장작더미를 가리키며 “저것 다 내가 했어” 하며 자랑했다. 장수 비결을 여쭙자 “그저 밤낮으로 움직여야 해”라고 말했다.

움직여야 장수한다는 이 할아버지의 철학은 확고했다. 버려진 강변 모래밭을 사서 나무를 심기 시작해 근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지를 혼자 이루었고, 재산을 아직도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개인으로 이만한 원장(園莊)을 이루어 가진 사람 흔치 않을 거야”, “세상 살아가는 데는 경험이 제일 중요해. 내가 그 경험을 가르쳐 주고 싶어”라며 자랑을 그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한다며 무엇이 행복인 줄을 몰라. 행복은 마음이 편안해야 해” 하며 인생철학을 강론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우리 일행에게 이 할아버지가 던져준 “젊은이들, 하면 된다는 말을 꼭 명심하게”라는 소리가 귀에 아직도 쟁쟁하게 들린다.

백세인 박태동 할아버지는 깨끗한 차림에 단정한 모습으로 맞이해주었다. 박 할아버지를 수발하기 위해 서울에서 찾아온 손녀에게 물었다. 박 할아버지는 걱정을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살며, 다 큰 손녀인 자기에게 지금도 용돈을 준다고 했다. 아들에게서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박 할아버지는 성격이 강해서 당신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지금도 허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양말을 신기거나 일어서고 앉고 할 때도 허락을 받지 않고 했다가는 야단이 나며, 집안 대소사를 모두 보고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할아버지는 어른으로서의 위상을 절대 놓지 않는 당당함을 백세가 넘도록 견지하며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백세인 조사를 하면서 교육을 제대로 받은 백세인이 별로 없어 실망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학교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체념하면서도 더러 예외적인 분을 만나면 반갑고 전연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교육의 효과가 특별한 차이를 일으킬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백세인의 교육과 기개

경북 문경시 산양면 신전마을의 백세인 고삼석 할아버지는 고(高)씨 집성촌 500년 역사에 최장수 어르신이라며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고 할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했고 텃밭에서 콩이나 고추 등의 농사를 직접 하실 만큼 근력이 있었다.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신문은 안경을 쓰지 않고 볼 만큼 시력이 좋았다. 고 할아버지는 스무 살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대륙과의 교통이 가능해지자 중국으로 건너가 청춘을 보냈다.

“젊어서 안 해본 것 없어! 화류계 생활도 해보았고.” 자신만만한 할아버지의 태도에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지금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중국 샹하이, 뻬이징, 쏘련, 구라파 한번 휙 돌고 싶어”라고 했다. 스케일도 웅장했으며 기개가 대단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를 펴보려는 할아버지의 태도는 움츠러드는 젊은 노인들(?)에게 던지는 경구 그 자체였다.

고 할아버지에게 가장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해 묻자 “다 죽고 없어. 친구들이 다 죽고 말았어” 하며 말소리를 낮추었다. 실은 자식 앞에서 몇 년 전 떠나버린 둘째 부인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지금도 정제에서 들어오는 것만 같아” 하며 울적해했다. 자식보다 그래도 살을 맞대며 살았던 부인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러더니 “수(壽)는 다 정해진 거야. 백 살 넘게 산다는 것, 약 먹어서 되는 게 아니야” 하며 달관한 모습이었다. 울적해진 고 할아버지를 위로할 겸 노래를 청했다. 조금 멈칫하더니 우렁차게 목청을 높였다. “두만강 푸른 물에…” 한 곡 또 부탁하자 거침없이 “신고산이 우르르…” 하며 타령을 불렀다.

이와 같이 젊은 시절 개인이 혼자서 마을을 이루어 지금도 동네 어르신으로서의 당당함과 책임감을 느끼며 백세를 사는 분,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집안 대소사며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백세인, 백 살 넘게 살았어도 여전히 세상을 누비며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분들은 분명 새로운 노화의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령에 상관없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인간으로서 당당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분명하게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