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 셀프 연임 비판 ‘한 목소리’
여기에 최근에는 금융당국 수장들이 잇달아 경영 개입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신(新)관치’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다. 단초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입으로부터 시작됐다. 최 위원장은 2017년 11월 말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는 은행권의 지배구조 특성상 다른 일반 회사와도 구분이 된다”며 “제2금융권과 달리 CEO 선임에 영향을 미칠 특정 대주주가 없어 해당 CEO가 본인의 연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문제 삼으면서 “CEO가 자신의 연임에 유리한 쪽으로 이사회를 짜고 있다”며, “유력한 경쟁자를 솎아내 자신이 연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도 했다. 이럴 경우 CEO 유고 시 즉각적인 경영 승계가 어려워 경영 공백이 장기화할 수 있는 만큼 중대한 귀책사유라고 꼬집었다.
‘설마’ 했던 금융권의 분위기는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강경 발언이 더해지면서 신관치의 확증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최 원장은 2017년 12월 초 임원회의에서 금융지주 CEO의 경영 승계 절차가 허술하다는 점에 적극 공감을 표한 뒤, 이후 열린 언론사와의 조찬간담회에서는 작심한 듯 ‘셀프 연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2018년부터 주요 금융지주사의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본격적인 검사에 착수한다는 계획과 함께 지배구조 전반을 다루는 법률 개정 의지도 내비쳤다.
검사 대상은 KB금융지주를 비롯해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등이다. KB금융의 경우 노사 대치 상황에서 2017년 11월 윤종규 회장의 연임이 결정됐고, 농협금융 역시 2017년 4월 별다른 잡음 없이 김용환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역시 취임 2년 차를 앞두고 있다. 반면 하나금융의 경우 오는 3월 김정태 회장의 3연임 논의를 앞두고 있어 금융당국의 집중 검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당국은 표면적으로 금융지주 전체를 겨냥한 듯 보이지만 실제 칼끝은 하나금융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나금융 이사회 의장이 관치 금융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도 이런 정황이 반영됐다. 여기에 하나금융의 경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인사 전횡 논란에 휩싸인 바 있으며, 얼마 전에는 일부 사외이사가 대주주로 있는 업체와 물품 거래 정황이 드러나 해당 사외이사가 전격 사퇴하기도 했다.
최 원장과 김 회장의 ‘껄끄러운 관계’도 뒷말을 낳고 있다. ‘민간 출신’이라는 이례적 타이틀을 갖고 있는 최 원장은 다름 아닌 하나금융 사장 출신으로 과거 김승유 전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 퇴진 이후 김정태 회장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 자리에서 물러나 ‘보복성 검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최근 김 회장이 “전직 임원들이 음해성 소문을 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언급한 대목도 심상치 않다. 최 원장은 “자신이 그렇게 허술해 보이냐”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의구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실한 승계 절차는 제도 탓? “글쎄”
다만 일각에서는 최 원장의 경우 5년 가까이 하나금융에 몸담았던 만큼 주요 금융지주가 갖고 있는 적폐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 논란과 부실한 승계 프로그램도 비단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의 ‘현직 프리미엄’은 수십 명의 후보 풀(pool)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일쑤였고, 지배구조법에 준해 마련한 모범규준 역시 승계 절차의 정당성을 보장받는 도구로 활용돼 온 게 현실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승계 절차까지 강제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이나 사외이사 선임에 회장을 제외시킬 경우 이사회의 권한이 막강해져 자기 권력화의 모순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는 관치 등 외부 압력에 노출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KB금융이 과거 어윤대 전 회장 시절 ING생명 인수를 둘러싸고 경영진과 이사회 간 극한 대립을 겪은 것도 이사회 내부의 권력 암투에서 비롯됐으며, KB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에서 촉발된 ‘KB사태’ 역시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이사회의 구조적 폐단을 드러냈던 사건이다. 당시 이사회는 임영록 전 회장 편에 서서 사태를 수수방관하다가 당국이 회장 해임을 권고하자 부랴부랴 임 회장에게 비수(?)를 꽂았다. 이후 이사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현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일괄 사퇴했다.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 제한이 ‘만 70세’로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후계자 풀을 드러내 놓고 운영할 경우 임원들의 눈치 보기와 줄서기 문화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과거 관치의 그늘에서 줄 대기 문화가 극심했던 우리은행이 2인자 격인 수석부행장직을 없애고 부문장 체제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뚜렷한 후계 구도가 문제가 된 사건도 있다. 과거 ‘신한사태’는 라응찬(신한금융 전 회장)-신상훈(신한금융 전 사장)-이백순(전 신한은행장)으로 이어지는 그룹 내 서열이 오히려 내분사태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더욱이 현재의 금융사 지배구조법이 KB사태와 신한사태를 반면교사로 오랜 고민 끝에 마련된 만큼, 금융당국이 직접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규제 도입에 따른 기회비용과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 역시 승계 절차 등 국내 금융지주의 지배구조의 경우 영미식 모델에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혼란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특히 CEO의 연임 여부는 임기 중 경영 성과에 따라 결정될 수 있도록 오히려 금융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며, 당국은 사후 관리감독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CEO의 독단 경영 우려와 ‘셀프 연임’ 논란 등의 경우 ‘대리인 문제’가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결국 금융지주의 소유구조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영화 과정에서 새롭게 도입된 우리은행의 집단경영 체제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들의 정제되지 않는 구두 개입이 신관치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고 있다”며 “현재의 미흡한 지배구조를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로만 접근할 경우 논란의 종착역은 ‘관치 금융’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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