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러시아 노래를 번안한 것 정도로 알고 있었던 이 노래는 러시아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난 밤 배 안 바(bar)에서 바텐더가 들려준 얘기는 좀 다르다. 실은 라트비아의 노래란다. 리가 태생의 작곡가 라이몬즈 파울스가 만든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Dāvāja Māriņa meitenei mūžiņu)’이 원곡. 1981년 라트비아의 한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에서 아이야 쿠쿨레와 리가 크레이츠베르가라는 가수가 불러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백만 송이 장미’라는 가사는 없다. 외세에 휘둘려 온 라트비아의 고난을 노래한 것이다.
‘로엔그린’, ‘니벨룽겐의 반지’, ‘탄호이저’로 유명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크리스마스 캐럴 ‘소나무야(Oh, Tanenbaum)’가 작곡된 곳도 리가다. 바그너는 무척 힘들고 어렵던 시절 리가에서 2년 동안 살며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영감도 리가에서 받았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는 생전에 리가에 대해 “리가는 나의 음악의 철학적 동기를 완성해준 곳이다”라고 말했다.
몽타주 기법의 전설이 된 영화 <전함 포템킨>. 흰 제복을 입은 러시아 차르의 군인들이 민중들에게 발포했을 때 총에 맞은 여인의 손에서 떠난 유모차가 오데사 계단을 굴러 내려가고, 총질을 하는 군인들과 유모차가 교차 편집된 장면으로 유명해진 영화다. 나중에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영화 <언터처블>에서 오마주를 해 더욱 신화가 된 이 영화의 감독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도 리가 출신이다. 그의 예술혼은 구소련이 아니라 리가에서 만들어졌다.
라트비아 리가. 아직 많이 낯설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는 라트비아 리가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았다. 또 리가는 알게 모르게 유럽의 예술사에서 조용히 한 일이 많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게 많은 곳이다. 왠지 신비한 동화 한 편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는 중세의 도시. 북유럽의 아침에 2500명의 승객을 태운 북유럽의 대형 여객선 바이킹라인이 리가 항구로 깊숙이 들어간다. [리가 전경]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전날 밤 바이킹라인이라는 대형 크루즈를 타면 다음 날 아침 오전 9~10시경 리가 항구에 도착한다. 리가는 발트 3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발트 3국에 진출할 한국의 대기업들도 다 리가에 지사를 두고 있는 산업 도시이기도 하다.] [리가는 원래 성채 도시다. 그러나 전쟁과 지진 등으로 성벽들은 모두 허물어졌고 도시의 동쪽 토르냐 거리에 있는 성벽만 복원이 된 것이다.] [과거 리가 성벽에는 모두 25개의 문이 있었다. 현재 복원된 성벽에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인 스웨덴문은 1621년 스웨덴이 라트비아를 지배했을 때 만든 것이다. 이 문에는 슬픈 전설이 남아 있다. 당시 리가 여인은 외국 남성을 만나는 것이 금지됐다. 그런데 한 여인이 스웨덴 병사와 이 문을 통과해 몰래 만났다. 그러다가 발각됐고, 문의 벽에 갇혀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도 자정에 이 문을 통과하면 여인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피지배의 역설로 태어난 건축 예술
리가라는 도시가 세계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01년이다. 독일 브레멘의 대주교인 알베르트가 지금의 리가 항구인 리가만에 상륙하면서 리가의 역사가 시작됐다. 12~13세기에 시작된 한자동맹 시대 독일의 발트해 무역 거점이 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리가는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인 ‘마리나가 준 소녀의 인생’에서 힘겹게 그렸던 라트비아의 기구한 인생이란, 독일에 이어 폴란드와 스웨덴, 그리고 제정러시아와 구소련까지 라트비아가 겪었던 그 길고 처절한 피지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히 반복되는 피지배의 역사는 리가에게 고통만을 줬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유럽의 문화 수도’라고 불릴 만큼 찬란한 중세와 근세의 건축 예술이 고스란히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피지배의 역설이다.
독일이나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의 부자들은 리가에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놓고 살았다. 누가 지배를 하는지와는 상관없었다. 그 부자들은 그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호사스러운 건축 예술을 만끽하며 살았고, 그것이 지금에 와서 리가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준 것이다.
바그너가 리가에서 산 1837년부터 1839년까지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불성실한 시기였다. 바그너는 리가에 흠뻑 빠져 살았지만 단 한 곡도 쓸 수 없었다. 아름다운 여배우 민나와 결혼도 했지만, 아름다운 부인과 아름다운 도시는 그에게 영감만 줄 뿐 곡을 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빚에 쫓겨 리가를 도망쳐 파리로 간 후 바그너는 리가에서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음악적 영감으로 되살아나 곡들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리가의 구시가를 돌아다니며 예술성 가득한 건물들을 보면 바그너의 고백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바그너가 리가에서 살면서 보던 풍경들은 중세 건축의 파노라마였다. 리가 구시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구시청사 광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블랙헤드 길드’ 건물이다. 1330년대 미혼의 길드 상인들의 회합 장소로 만들어졌다. 이들이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은 성 마우리티우스가 북아프리카 사람이라 전당의 이름도 블랙헤드가 됐다.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이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완전히 파괴됐다. 리가가 당시 구소련과 독일 간 주요 전투지 중 하나였던 탓이다. 1995년 재건축을 시작해 2000년 리가 탄생 800주년을 기념해서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바그너의 영감을 끌어낸 리가 거리
리가가 동화 같은 도시인 이유 중 하나가 블랙헤드 길드 앞에 있다. 이 광장의 한편에는 1년 내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는데, 세상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는 표시다.
리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1510년 겨울, 리가의 길드 회원들이 그 자리에 갖가지 장식을 한 전나무를 세웠다고 한다. 북유럽의 긴 겨울을 흥겹게 보내기 위한 생각이었다.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세운 거대한 장식된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때 흥겨움의 절정을 이루고, 1월까지 리가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크리스마스트리는 기독교 전례상 대림절인 크리스마스 4주 전부터 성탄 시기가 끝나는 ‘주님 세례 축일’인 1월 중순까지 세워 놓는다. 바그너가 크리스마스 캐럴인 ‘소나무야’를 블랙헤드 길드 앞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작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이 광장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그너가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곳은 구시가의 중심가인 카리츄 거리의 대길드와 소길드 등 부유한 상인들의 건물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재밌는 건물 하나가 있다. 일명 ‘고양이 집’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 거대한 저택의 주인은 부유한 리가의 상인이었다. 그는 독일 상인들의 조직인 대길드에 가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독일 상인들은 돈만 많고 경망스럽다며 리가의 상인을 받아주지 않았다.
화가 난 리가의 상인은 자신의 집 꼭대기에 엉덩이를 대길드로 향한 고양이 조각을 달아 그들을 조롱했다. 그런데 나중에 대길드 건물이 라트비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장이 됐다. 이 리가의 상인은 고양이를 돌려놓았다. 라트비아 필의 연주를 잘 듣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블랙헤드 길드. 건물 중앙 상단에 있는 시계는 체코 프라하의 천문 시계보다 시대가 앞선다. 이 시계를 만든 사람의 눈을 빼서 다른 곳에 이런 시계를 더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프라하의 천문 시계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리가 구시가의 골목들은 고풍스러운 중세와 아르누보의 근세 분위기가 적절히 조절돼 아름다움이 특화되는 느낌이다.] [고양이집. 독일인의 대길드와 라트비아 토착민의 소길드의 갈등을 잘 설명해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당시 라트비아가 독일이나 스웨덴 등에 핍박받았던 역사를 설명하는 유산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블렉헤드 길드가 있는 구시청사 광장에는 1년 365일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진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전나무 크리스마스트리로 바뀌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의 향연
리가의 거리는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행복감이 든다. 곳곳에 보이는 꽃 노점상이며, 아름다운 자수로 만들어진 수공예 소품 가게, 1221년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어 오히려 진심을 의심케 만드는 오래된 카페. 그런데 이런 것들 중에서도 가장 눈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리가 거리 곳곳을 수놓고 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누보’라는 용어는 공교롭게도 미국과 영국에서 쓰는 표현이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기마르(Guimard) 양식’이라고 부르고, 독일의 명칭인 ‘유겐트 양식(Jugendstil)’이 더 보편적인 건축 양식으로 불린다. 아르누보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한 건축 양식이나 고딕 등 독일에서 일반화된, 말하자면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한 건축 양식이다.
그러다 보니 아르누보는 역사와 전설, 또는 신화에 기반을 둔 유럽의 일반적 건축 양식들과 달리 흔히 건물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 등 자연의 식물, 역동성이 드러난 동물이나 인물 등을 건물에 부조하면서 직선보다 곡선을 강조한 탐미적 입장의 건물들을 만들어냈다. 19세기 후반에 유럽 일부와 미국, 영국 등에서 전성기를 이뤘던 아르누보의 수명은 길지 않아 불과 10~20여 년을 구가했지만, 그래도 건축 시기가 오래되지 않아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들이 많은 편이다.
리가는 그 유럽에서도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의 박물관과도 같다. 중세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은 구시가에서도 아르누보 건물들은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구시가를 벗어나서도 리가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은 향연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하일 에이젠슈테인이라는 위대한 예술 건축가가 있다. 그런데 건축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 앞서 언급한 <전함 포템킨>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아버지다.
아버지와 아들의 예술혼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발현됐지만 예술이라는 같은 항목으로 묘하게 리가를 수놓고 있는 것이다. 구시가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추앙받는 리가. 참 많은 이야기를 품었을 것 같은 이 도시는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나면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는 읊조림이 묘하게 도시의 이미지와 어우러진다. 데자뷔처럼. [현대 건축물 중에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낼 때 종종 아르누보 양식이 쓰인다. 하지만 정작 아르누보 양식은 역사가 가장 짧은 편이고, 유럽에서도 오래 사용되지는 않았다.] [성베드로 교회. 바로크 양식의 루터교 교회다. 13세기에 처음 지어졌다. 종탑의 높이는 123m에 이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리가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여느 유럽의 도시들처럼 리가의 곳곳에는 거리의 화가나 연주자를 볼 수가 있다. 이들은 상당히 높은 예술 수준으로 북유럽에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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